EP.직업일기
"언니는 만약에 마지막 비행을 한다면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나? 어... 진짜 한번쯤은 썅년이 되고 싶어. 나를 짜증나게 하고, 못되게 구는 사람들한테는 그냥 대놓고 뭐라고 하고싶어. 그리고 대충 대충하고싶어.
아마 승객들 입장에서는 미친년이 되겠지?ㅋㅋㅋㅋ이 직업은 요행을 바라기가 참 어려워. 근데 마지막은 누구보다도 꾀순이가 되고 싶어."
"엄청난 패기의 승무원이 되겠닼ㅋㅋ 근데 뭐 어때. 내 마지막 비행인데. 내 꿈이다. 쌍년되기. 퇴사하는 승무원은 아무도 못 막아."
참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 직업은 다른 직업들보다도 '요행을 바라기가 참 어려운 직업'이라고 느낀다. 물론 승무원 준비생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요행을 바라는 순간 다른 사람들보다도 느리고 뒤쳐지는 내 스스로가 보였고, 제일 중요한 건 요행을 바라는 내 모습을 나를 1도 모르는 누군가가 알게 모르게 알게 된다. 즉 내 요행을 바라는 꾀부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타인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이다.
승무원이 되어 열심히 달려왔다. 그러고 뒤돌아봤다. 내 처음 비행을 시작했던 아기 시절과 이젠 얼추 걸어다니고 뛰어다니는 지금을. 시간과 세월이 흐른 만큼, 정직하고 우직하게 '비행'이라는 퀘스트를 하나하나 깨부셔나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속도도 빨라졌고, 사람들을 대하는 행동과 표정에는 여유가 생겼다. 이젠 이런 일이 생길 땐 어떻게 행동해야겠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편하겠구나하는 나만의 행동지침도 생겼다. 내가 요행을 많이 바랐다면, 그리고 바란 만큼 일을 했다면 그 아무리 언젠가 속도가 늘고 여유가 생긴다 할 지라도 더 오래 걸리고 더뎠을 것이다.
이처럼 어느 직업이든 '일' 자체만 본다면 세월이 흐르면 당연히 속도와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마치 생활의 달인처럼 말이다. 한 가지 일을 쭉 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되고, 스피드도 얻는 그런 여유. 근데 사람을 워낙 많이 다루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하는, '사람 중심'이 되는 이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일'에서 요행을 조금씩 부린다고해도, 참 사람이 중심이 되어버리는 사건 앞에선 요행을 부리기란 참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꾀부리고 일을 덜 하게 되는 것도, 귀찮아서 대충 대충하는 것도, 그 사람을 은연 중에 싫어하는 것도 고스란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행동, 표정, 마음, 에너지가 전달되어버렸다. 내가 정직하고 우직하게,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는 만큼 상대방도 은연중에 다 알고 있다. 다 느끼고 있다. 다 눈에 보인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통해서도 나는 느낄 수 있다. 아, 이사람 이제 곧 그만두나보구나. 일에 대한 열정이 없네. 아, 이사람은 이 일을 참 사랑하는구나. 아 이 사람은 아직 이 일이 서툴구나.
승무원 준비생 시절에도 느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간절하구나. 아, 이사람은 되겠다. 아, 이 사람은 이런 태도와 행동으로는 내가 볼땐 안 될 것같다. 아, 이사람은 일하고 나면 오래 못 하겟구나. 그렇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준비생 시절부터도, 지금도 그렇고 느꼈지만 참 요행을 바라기가 어렵다고 느낀다.
그런 요행을 바라고, 행동하는 것이 내가 승무원으로 마지막으로서 일하는 날에 하고 싶은 일이다. 남들이 보면 참 소박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워낙 정직하고 우직하게 일하면서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일해왔던 내가 그 날만큼은 오롯이 내 기분과 나만을 생각하면서 일하고 싶다. 이런 행동이 내겐 있어서 "썅년", "Bitch" 같은 행동이고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마치 금기의 생각과 행동이다. 하지만, 그 날만큼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보다, 나를 배려하고 하고 싶다는 나만의 소원 아닌 소원이 있다.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과연 내 마지막 날에 나는 쌍년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워낙 겁보라서 하하...내가 언젠가 마지막 비행을 하게되면 여러분들에게 말해주겠다. 내 마지막 소원 썅년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