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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보다 젊은 크루들이 많은 이유

EP.비행일기

by 꼬마승무원

"너 몇살이야?"

"나? 맞춰봐."

"음..00살. (땡!) 0*살? (땡!) 어 그러면 &^살?"

"응 맞아."

"세상에. 너 진짜 어려보인다."

"그래? 고마워. 근데 너도 나이에 비해서 어려보여. 내가 볼 땐 본인 나이보다 굉장히 어려보이는 크루들이 참 많은 거 같아."

모든 서비스가 다 끝나고나서 쉬는 시간에 크루들은 심심하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으로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나이이다. 아무래도 대화의 물꼬를 트기에 제일 만만한게 나이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서로의 나이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면서, 그리고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매번 많이 느끼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크루들이 참 많다는 것. 특히나 부사무 장, 사무장처럼 직급이 높은 사람들한테서 동안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보여지는 직업 중에 하나이다보니 안 꾸밀래 안 꾸밀 수가 없다. 좀 더 피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직업으로서 체력의 중요도도 한 몫하다보니 운동을 꾸준히 하는 크루들도 많다. 때문에 승무원이라는 직업 타이틀을 벗어나서 본인 또래 집단에서 비교한다면, 당연코 승무원으로서 일하는 사람들이 뭔가 눈에 확 들어오고 띄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이전에 장비행에서 만난 남자 사무장님. 사번이 높기도 높았지만, 그는 은퇴를 바라보는 시점이 이제 2년 밖에 안 남았다며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덧없음에 대해 브리핑룸에서 크루들에게 말의 물꼬를 틀었었다. 사무장님이 은퇴하기까지 2년 남았다고 말하자마자 모든 크루들이 놀라면서 동안이라면서 다들 한 마디씩 건넸었다. 그러다 멋쩍으면서 허허, 빈말이라도 고맙다며 웃던 그가 생각난다.


이후에 워크 포지션으로 인해, 어쩌다보니 사무장님과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이륙 준비를 마치고 비행기가 붕 날아올라 안전벨트 착용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시간이 남아 사무장님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물론 굳이 말을 안 건네도 되었지만, 괜히 멋쩍은 침묵의 시간이 너무나도 불편했기에 차라리 말을 건네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더 나았다. 해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나이에 비해서 동안인 비결이 있는 지에 대해서 수줍게 웃으면서 물어봤다.

그러자 마치 사무장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본인의 동안 비결에 대해서 줄줄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단 나이가 먹었어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꼭 스트레칭을 하지. 몸의 근육을 쭉쭉 피는 거야. 나이가 먹을 수록 굳어지는 근육을 푸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 해서 비행 전에 스트레칭을 간단하게 하고, 비행이 끝나고 호텔 방에서도 나는 스트레칭을 해. 격한 운동은 못해. 이미 나이가 많아서 뼈가 부러지고 쉽게 다치면 비행을 누가 책임지겠니. 하하.

그리고 숨쉬는 방법도 중요하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코로 숨을 내뱉는 거 혹시 들어봤니? (네 들어봤어요.) 그래. 그걸 난 실천하려고 해. 비행을 하기 전이든, 중간이든 말이야. 특히 화가 나거나 예민해져있을 때 아주 효과적이야. 어쩌면 내가 동안인 이유는 화를 덜 내서 그런거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 이 직업이 주는 이유지. 그건 바로 나만의 시간, 즉 ME-TIME이 있기 때문이야. 유니폼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면 나는 승무원 로이스이자 사무장 로이스란다. 그리고 해외 레이오버를 가면 승무원으로서 그냥 내가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너희처럼 즐긴단다. 하지만 승무원으로서 일을 다 하고 비행이 끝나 유니폼을 벗고, 내 가족들에게 돌아가면, 난 더 이상 승무원 로이스가 아닌 남편 로이스, 아빠 로이스, 아들 로이스가 된단다. 즉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또 다른 역할이 주어진 거지. 무슨 뜻인지 알겠니?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러니 다른 직업을 가진 내 친구들보다도 나는 더 많은 온전히 나만 생각하고,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 (Me-time)을 즐길 수 있는 거고, 그러니 내 어깨에 짊어진 다른 책임감들과 나만의 타이틀에서 잠깐은 벗어날 수 있는 휴식시간이 많다는 것이란다. 이게 바로 이 직업이 주는 동안의 비결이야."

그의 말을 듣고보니 참 일리있고 맞는 말이구나 싶었다. 아빠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딸로서, 아들로서의 또 다른 책임감과 이름에서 벗어나 오로지 본인을 위한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 승무원인 셈인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지겹도록 왔다갔다한 해외 레이오버이지만, 잠깐의 여유 시간 동안이라도 나만 생각하고,본인을 위한 시간을 보내니 더 없이 이 직업이 에너지를 주나 보더라. 또 아무래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젊은 사람들이다보니, 함께 일하고 부대끼면서 오는 젊고 파워 있는 에너지가 그들에게서도 더 느껴지고 다가오다보니 동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안인 외모만큼이나 생각도, 마인드도 굉장히 동안이셨기에 다들 편안하게 일할 수 있게 해준 좋으셨던 사무장님. 비록 해당 비행이 끝난 지 시간이 좀 흘려버렸지만, 해당 비행이 끝나고 느낀 점은 여전히 마음과 머릿 속에 남아져있다. 그건 바로, 보톡스나 피부 시술 관리처럼 외적으로 꾸며서 오는 동안의 효과보다는 본인의 마음가짐,내면의 튼튼함 그리고 여유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로 인한 동안의 효과가 제일 중요하고 크다는 것이다. 뭐, 물론 유전이라든지 돈의 힘에서 오는 동안도 무시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마 굳이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확신할 수 있다. 내면이 튼튼하고, 본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 사람들이 여유가 흘러나오고 이것이 좋은 에너지만 끌어당기고 만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지니 얼굴도 펴지고 동안의 힘도 나오는 것이겠다.

이상, 언제나 동안으로 보이고픈 오늘이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에 적는 일기를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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