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닌 진심을 사는 승객들

EP.비행일기

by 꼬마승무원

최근에 다녀온 호주 멜버른 비행. 신기하리만큼 총 15명의 크루들이 있다면, 4명을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나와 한 번씩은 비행을 한 크루들인지라 반가웠었다. 1년이 넘어서 만난 크루들도 많았기에 다들 환하게 웃으면서 롱타임노씨를 시전했었다. 그렇게 반가운 마음이 듬과 동시에 든 생각, '역시 사람은 죄 짓고는 못 산다니까.'

브리핑룸, 사무장님께서 브리핑을 마무리하기 이전에 갑자기 크루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승객들은 비싼 돈을 주고 굳이 우리 항공사를 이용하는 걸까? 특히 비즈니스 승객들 말이야. 왜? 차라리 그 돈이면 저가 항공사를 타도 좋을텐데

왜 우리 항공사일까? 괜찮으니까 아무거나 던져봐. 이거에 대한 대답 맞춘다고 해서 뭐 내가 너희한테 돈을 더 준다거나 그러지는 않아."

그녀의 질문에 다른 크루들이 웃으면서 하나 둘 씩 답을 던졌다. 기내식, 회사의 명성, 승객들의 스케줄, 서비스, 안전 등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고 사무장님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맞아.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고 역시 나도 공감해.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우리 승무원들 때문이라 생각해. 공항에서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 왜 그럴까? 우리가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면 분명 승무원들은 본인들을 도와줄거라는 책임감 (Responsibility)와 의지 (Reliable)를 느끼기 때문이야. 좌석도 그렇잖아. 가족이 6-7명이나 되는 대가족들이, 지상 카운터에서 좌석 티켓을 받았어. 근데 확인해보니 가족들의 좌석이 뿔뿔히 흩어져있네. 그러면 탑승 전에 지상 직원에게 말하면 바로 해결되고 좋을텐데 왜 당시에는 말 안하다가 탑승하고나니까 승무원에게 말하는 걸까? 아, 물론 좌석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아서 흩어진지 모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야. 왜? 승무원들 때문에. 우리한테 말하면 본인들의 고충이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해결해줄 거라고 믿어서 그런거야. 그러니 물론 피곤하고 짜증나고, 도망가고싶겠지만, 우리를 그만큼 신뢰하고 믿고 의지하는구나하고 그 순간만큼은 화와 짜증을 조금만 삭히고 최대한 그들을 도와주면 좋겠단다. 결국 승객들이 비싼 티켓과 돈을 주고 우리 항공사를 선택한다는 것엔, 돈으로 서비스보다는 진심을 사는 것도 포함되어 있으니깐. 우리 모두 잘 할거라고 난 믿어."

유니폼을 입는 순간, 9*년생의 생년월인은 어떻고, 한국에서 태어나 $$와 %%씨의 장녀인 나는 사라진다. 개인의 내가 아닌, 회사의 내가 되기에 나의 행동과 언어, 그 모든 것은 회사를 대표하는 모든 것이 된다. 실제 나의 성격은 어리벙하고, 어리숙하고, 누군가를 도와주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니폼을 입는 순간 나는 프로페셔널하게 보여지고, 또 보여지도록 노력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니폼이 주는 힘은 대단하다.

실제로 출근 혹은 퇴근 중에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에게 "Excuse me" 라고 하면서 종종 걸음으로 걸어와서 이것 저것 물어보는 승객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 붙잡혀서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나면, 굳이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상 직원들이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무방한, 아주 간단한 질문들일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아닌, 승무원들에게 쪼르르 달려와서 물어보는 이유는 바로 사무장님이 말씀주신, 승무원들이 승객들에게 전해주는 무언의 강한 진심어린 책임감과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재밌는 것이, 다른 항공사도 아니고 우리 항공사 사람들을 보고 달려와 물어보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 말인 즉슨, 그만큼 우리 회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믿음이 높다는 것이고.

서비스 직에서 알바나 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서비스 이용자들이 왜 본인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건 바로, 당신을 믿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 중에 하나로서 바로 내 눈 앞에 보여지는 사람이니 이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응대해 줄 사람, 회사 윗대가리에게 말할 사람, 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의지할 사람이 당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무장님의 질문과 대답에 브리핑룸 내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래, 다른 항공사도 아니고 우리 항공사를 탄다는 건 그만큼 우리 승무원들에게 대한 무언의 더 강하고 끌리는 진심 어린 책임감과 믿음에서 비롯된 서비스를 사는 것이리라. 그런 승객들의 마음을 한번 더 상기했으니,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뿌듯함과 가슴 두근거리는 부담감을 안고 진심을 선물하는 나는 세계 최고의 항공사 승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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