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비행일기
"오늘 비행은 어떠셨나요? 괜찮았나요?"
"응! 그럼! 나한테 너무 친절하게 잘해줘서 고마워! 사실 나도 한 10년 전에 너희 회사 승무원 인터뷰 봤었거든. 근데 아쉽게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었어. 근데 당시에 간절하고 처음으로 꿨던 꿈이었던 지라 여전히 아른아른거리네.
가끔도 후회된다고 해야하나."
"아 그런가요?! 어머. 회사가 소중한 인재를 놓쳤네요. 바보같네."
"하하하, 고마워! 나도 그 유니폼 입어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많이 힘들겠지만, 그 직업을 하고 싶어도 못 하고, 되지 못한 이들이 많으니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기를 바라! 네 이름은 꼭 기억할게. 고마워."
최근에 다녀왔던 턴어라운드 비행. 마지막 섹터로서 돌아오는 길. 착륙을 위해 준비하라는 기장님의 안내 방송에 맞춰서 승객들이 좌석벨트를 잘 했는지, 좌석 등받이는 올렸는 지 등을 확인하면서 내가 일하게 된 존의 비즈니스 승객들께 인사를 하던 중에 나눈 대화를 시작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너무나도 친절하게 나를 포함해서 승무원들에게 잘해주던 어여쁜 여성 분이셨다. 해당 국가에 휴가 차 놀러갔다고 말씀하시면서 친절하게 잘해줘서 고맙다면서 내내 반대로 내게 친절함을 돌려주시던 여전히 기억에 남는 승객이시다. 그녀는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도전할 수가 없는, 당시에 포기를 해버린 젊은 날에 꿨던 소중한 꿈이었던 승무원에 대해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고 말해주었다. 계속 도전하고 도전했으면 과연 됐을까 싶기도한다면서, 아마 이렇게 남는 후회와 미련은 당시에 본인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 같다고 말을 더했다.
비행기에 오르면 몸에 딱 맞아 매 비행마다 소화불량과 불편함을 선물해주는 이 유니폼. 살면서 겪어보지도 않은 하지부종과 무지외반증을 선물해주는 이 신발.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입고 싶어도 못 입는 꿈의 존재라는 것. 이미 30여번은 간 것 같은 국가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죽기 전에 가지 못할 나라라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사실 내가 항상 감사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인간인지라 너무나도 간사하게 이룬 것들에 대해서 감사함보다는 불편함이 더 다가오고있고, 이 직업의 장점과 좋은 점들보다는 나쁘고 안 좋은 것들만이 다가오는 요즘이었다.
여기는 시드니. 본국에서 시드니로 오는 비행의 브리핑룸에서 굉장히 사번도 높고 올해 은퇴를 앞두신 사무장님께서도 말하셨다. 우리가 밥 먹듯이 가고, 매번 지겹도록 나오는 이 로스터가 누군가에게는 꿈이자 값진 시간과 돈의 투자로 겨우겨우 올 수 있는 곳임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이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겪고 싶어도 다시는 못 겪는 순간일터이니 힘듦보다는 긍정적으로 해내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승객과 사무장님의 말을 듣고난 뒤, 오늘 이 일기를 쓰는데 참 생각이 많아진다. 되돌아보면 나도 이 유니폼이 입고 싶어서 그렇게 기를 쓰고 돌고 돌아 합격을 했었다. 이 직업이 꼭 해보고 싶어서 안정보다는 불안정감을 선택했었고, 한국보다는 외국을 선택했다. 시간이 흘러 점점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부러움이 내게는 당연한 것이 되고, 지겨움이 되어가는 요즘에 어쩌면 승객분과 사무장님이 건넨 말들은 지금까지 달려온 나를 천천히 되돌아보고, 현재의 나에 충실하며, 과거에서 달려와 현재를 만든 나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라는 채찍질로 다가왔다.
내일 다시 시드니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는, 유니폼을 입으면서 한번 더 지겨움과 한숨보다는, 좀 더 자부심과 나에 대한 사랑스러운 눈으로 마음을 다 잡고 잘 돌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