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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Aug 27. 2024

He..lp ! H..elp!

EP.비행일기_호주 브리즈번 비행

 크루들마다 좋아하고 원하는 비행은 다 다르다. 호주 비행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 대부분 인도승객들이 많다) 많고, 웬만하면 Full flight이기 때문에 힘든 비행 중에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는 호주를 참 좋아한다. 아직까지는... :)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괜찮고. 아 물론, 승객들의 요구가 매우 많기는 하다. 


일반 승객들이 탑승하기 이전에, 몸이 불편하시거나 이동이 불편하신 분들 우선으로 탑승을 지상직원들의 안내 하에 먼저 도와드린다. 오늘 전달하는 에피소드의 나이 지긋하신 여성 어르신은 스리랑카에서 오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동이 정말 어려우셨기에, Asiel Chair (기내용 좁은 복도 전용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이었다. 그리고 이 비행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 때 생긴 일이다. 


거동이 어려우신 그녀는 내가 담당하던 구역의 승객이었다.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콜 버튼을 눌러달라고 말했지만, 영어도 잘 구사하지 못했을 뿐더러 손에 힘이 없으셔서 콜 버튼 누르시는 것도 버거우셨다. 그래서 그냥 그녀에게 혹시 화장실이나 뭐든 필요하시면 제가 여기 자주 이동 할 테니까, 저 보이면 손 잡아달라고 말했다. 바디 랭귀지와 쉬운 단어로 말씀드리자 그녀는 소녀처럼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부르셨다. 다가가니 To..Toeil...let (화..화장실..) 이라고 말하셨다. 아, 화장실! 바로 도와드리겠다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 화장실로 안내해드렸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그녀를 보고 이제 문을 닫고 잠가드리려는데, 갑자기 그녀가 나의 팔을 딱 잡더니만 He..lp.. Help..! (도와줘...!) 라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너무 놀라서 " "Eh? oh, Do you any assistance? (아? 아,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라고 하면서 화장실 안으로 같이 들어갔었다. 문을 잠가드리니 다름이 아니라 볼 일 보시는데 속옷을 내리는 것이 버거워서 속옷을 내려달라고 부탁하신 거였다.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볼일을 보실 수 있도록 속옷도 내려드리고 뒤돌아서 그녀가 볼 일을 다 볼 때까지 기다려드렸다. 다 됐다는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속옷과 옷 매무새를 다듬어드렸다. 손도 비누로 씻어드리고 핸드로션도 찹찹 발라드렸다. 로션 냄새 좋지 않냐며 웃으며 말씀드리니 땡큐, 땡큐를 연신 말씀하시던 어르신. 함께 자리로 이동해서 앉혀드리고 혹시 물이 필요하신 지 여쭤보니 괜찮다고 하시더라. 그러고는 그녀가 잠든 것을 보고 계속 나도 열심히 내 할 일을 했었다. 


시간이 흐른 뒤, 본국으로 내리기 전 그녀가 다른 승무원에게 화장실로 가시겠다고 요청했었다.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그녀를 화장실로 안내해드렸고, 역시나 그녀는 다른 승무원에게 똑같이 도움을 요청하셨다. 다른 승무원도 처음에는 당황하였고, 이에 나는 아까 내가 안에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해서 도와드렸으니, 내가 할게. 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그녀를 화장실 안에서 도와드렸다.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나에게 부사무장이 놀란 토끼 눈을 한 채로 다가오시더니 “Are you okay? (너 괜찮아?)” 라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응, 나 괜찮아. 왜? 라고 물어보니 다른 크루들이 말한 걸 들었다면서 네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지만 이미 지상직원들이 승객에게 다 화장실 사용 관련해서 말했을텐데... 네가 그런 뒤처리까지 할 의무는 없는데 참 대단하다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었고, 그런 도움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왜 나한테는 말 안했냐고 묻길래 굳이 나는 이런 거 말하는 거 안 좋아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니 부사무장은 나의 답변에 많이 놀라고 “What a kind crew! (친절하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마지막 일반 승객들이 내리고 난 뒤, 그녀를 지상직원에게 모셔다드렸다. 그녀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면서 감사하는 말을 연신 말하며 반갑게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참 뿌듯하면서도 무사히 잘 비행을 마쳤음에 감사한 비행이었다. 

 그 어르신은 스리랑카에 잘 도착하셨을라나? 나처럼 부디 다른 크루들도 그런 분들을 만나면 잘 도와드리기를 속으로 생각하면서 보낸 비행이었다. 승무원은 기내에서 소방관이 되기도 하고, 간호사가 되기도 하고, 웨이트리스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 요양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팔색조로 일한다. 예뻐 보이고 당당해 보이는 승무원의 겉모습만 보고 이내 실상을 알고 난 뒤, 혀를 내두르며 금방 그만두는 사람은 부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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