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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Aug 27. 2024

돈 크라이 마담. 유얼 더 베스트 크루

EP.비행일기_이탈리아 밀라노 비행 

크루들은 안다. 언젠간 트레이닝을 받다가 울거나 비행을 하다 울거나 한다는 사실을. 그것이 사람 때문이든 개인 사정 때문이든. 어찌되었든 한 번쯤은 운다고 하더라. 

나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MBTI 에서도 F가 80퍼센트가 넘는 사람. (요즘에는 T로 가는 중... 이때는 마음여린 F였던 히히쓰...)사담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2번을 혼자서 봤는데, 어찌나 2번 내내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끅끅거리면서 울었으니 T 성향이 짙거나 울음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허... 참..’ 하고 어이없어 하실 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밀라노 비행은 나의 첫 Long Haul Flight 이었다. 즉, 처음으로 가는 12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이었다. 아직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툴렀던 나의 첫 밀라노 비행에서 제목에서 눈치 챘듯이, 처음으로 울어버렸다. 그것도 손님 앞에서 말이다. 썅. 왜 울었냐고 물어본다면, 손님 때문이다. 왜? 손님이 극대노해서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물론 내가 잘못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터뷸런스 (불안정한 기류)로 인한 흔들림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먹다 남긴 커피, 와인이 섞인 음료가 손님의 바지에 쏟아져버렸었다. 밀라노에서 싱가포르로 13시간은 가야했던 손님은 빡쳐서 극대노하셨다. 


밀라노로 떠나는 비행은 두 가지로 나뉜다. 밀라노로 직항해 3일정도 쉬었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비행과 밀라노로 직항해 쉬었다가 다음 날 밀라노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바르셀로나로 셔틀 비행을 갔다가 바로 다시 밀라노로 도착해서 쉬었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 이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당시에 나는 바르셀로나 셔틀이 있던 비행을 갔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잘 출발해서 다시 밀라노로 랜딩하기 30분 전, 갑자기 기내가 터뷸런스로 흔들렸다. 트레이를 들고 열심히 랜딩 전에 승객들이 먹다 남긴 음료와 컵들을 치우는데, 흔들리는 기내에 중심을 잡기도 힘든 와중에 주변에 있던 승객들이 여기저기 손을 뻗어 나의 트레이에 음료와 컵들을 두었다. ‘이거 위태로운데...’ 라고 생각하던 순간, 예상치도 못하게 다른 손님들이 먹다 남긴 커피와 와인, 음료가 한 중년 싱가포리안 여성 승객의 바지에 쏟아졌었다. 너무 당황했던 나는 바로 트레이닝 때 배운대로 죄송하다 사과드리며 빨리 갤리에서 티슈들을 가지고 와 닦아드리며 연신 죄송하다며 괜찮으신지 물어봤다. 갈아입으실 옷이 있는지 여쭤봤지만, 그녀는 이미 잔뜩 성난 목소리와 얼굴로 이미 큰 카고백에 있다면서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대셨다. 바로 나는 상사들에게 보고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나의 부사무장이 진짜 찐 천사였다는 점. 엄마처럼 그녀는 바로 그 손님에게 다가가 능숙하게 갤리 뒤 편 화장실로 화난 승객을 안내해주고 임시방편의 조취를 취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서서 연신 그 손님께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사과드렸다. 죽을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16시간은 있어야하는데, 찝찝하게 있기 싫다면서 소리를 질렀다. 부사무장에게 그녀는 네 부하가 한 짓 좀 보라면서 두 번째 손가락으로 나를 연신 가리키며 화를 냈었다. 하도 뭐라고 소리를 질러대니 주변에 있던 이탈리아 남자 승객들이 이탈리아어와 잘 하지도 못하셨던 영어로 그 승객에게 ‘헤이 마담, Calm down. (진정해). It could be happened. She already apologized to you.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이미 사과했잖아.) 라며 뭐라고 말해주셨다. 그럼에도 그녀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내 이름 배지를 찍어갔었다. 그러면서 나는 네가 한 짓을 용서할 수 없다며 회사에다 바로 네 이름표랑 해서 다이렉트로 컴플레인을 걸어버릴 거라며 초짜에게는 아주 어마무시한(?) 경고 및 협박을 하며 자리로 돌아갔었다. 


순간 벙찌고 내가 정말 죽을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참으려고 해도 참아지지 않던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하도 뭐라고 하니 나중에 부사무장에게 들었는데, 갤리 바로 앞 쪽에 앉아 계셨던 싱가포리안 중년 남자 승객이 그녀에게 귓속말로 


“ 저 여자가 너무 무섭게 그러던데, 나는 저 친구가 너무 기분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저 여자가 컴플레인 거는 것 커버칠 수 있도록 VOC (보이스 오브 커스터머, 일명 고객리뷰)에 너희 칭찬 적어줄게. 그리고 저 여자 승무원, 정말 열심히 일했어.” 


라고 말했다 했단다. 캡틴이 이제 착륙하니까 자리로 돌아가라고 안내 방송했을 때, 울음을 참으면서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가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뒤, 바로 옆 공간에 숨어 들어갔다. 천사였던 부사무장이 나에게 달려오더니 나를 꼬옥 엄마처럼 안아주셨다. 아직도 근의 이름과 그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울컥한다. 이렇게 예쁜 얼굴에 눈물 흘리면 못생겨진다면서 울지 말라고 꼬옥 안아주시던 그녀는 정말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있어서 참 감사하면서도 평생 잊지 못할 존재이다. 그녀가 안아주자마자 나도 모르게 꺽꺽 소리내면서 울었다. 그러면서 내리는 승객들에게 인사는 해야 했기에, 벌겋게 상기된 눈과 얼굴로 땡큐를 연신 외치면서 인사했다. 그러던 중에, 뒤에 앉아서 화난 승객에게 뭐라고 말했던 이탈리아 남자 5명이 한 명씩 나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안아주면서 어설펐던 영어로 “Madam, don't cry. You are the best. You are kind. We saw your hard working. (아가씨, 울지 마요. 당신은 최고에요. 당신은 친절하구요. 당신이 열심히 일한 거 우리는 봤어요.) 라 말해주면서 내리셨다. 


정말 감사했다. 그냥 당시에는 감사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나머지 승객들에게도 보여졌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민망했다. 일이 끝나고 다시 밀라노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사무장님을 포함해서 다른 모든 크루들이 괜찮다면서 그 손님을 욕해주면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나를 안아주었다. 네가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걸 아니까 괜찮다면서.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면서. 모든 크루들이 운이 좋게도 천사였었다. 속상해서 호텔에 돌아가서는 그냥 잠만 잤었다. 밥도 안 넘어갔었다. 그 이후로는 매 비행에서 항상 음료를 쏟거나 하지 않는지 매 순간 긴장하면서 일했고, 일하는 중이다. 이젠 어느 정도 짬빠가 쌓여간다고, 내가 핸들하지 못할 것 같으면 당당하게 승객들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요청한다.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는 아직 음료를 쏟는 일은 없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냐구? 약 3주정도 뒤에, 역시나 회사로부터 메일이 날아왔었다. 내용은 ‘너가 있던 비행에서 이 손님이 컴플레인을 걸었는데, 내용 한 번 읽어보고 자세하게 우리한테 알려달라고’ 말이다. 근데 웃겼던 것이, 나는 당연히 그 승객 컴플레인의 화살은 나로 향하고 있겠거니 예상했었다. 근데 웬걸. 그녀의 컴플레인 내용은 내가 아닌 온통 나를 도와주셨던 부사무장에 대해서 쓴 것이었다. 부사무장이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넘는 경험을 토대로 그녀에게 해 준 임시해결책에 대해서 말이다. 당황했다. 어라 이게 아닌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내 나름대로 잘 해결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 메일로 말했다. 우리 부사무장은 정말 크루를 가족처럼 챙겨주시는 사람이고, 얼마 안되는 비행에서 이런 사람을 만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나로 인해서 그녀가 곤란에 빠지는 건 나는 절대 원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런 뒤, 따로 회사로부터 메일은 받지 않았다. 잘 해결되었으니 넘어 간 거겠지?


아무튼... 비행을 하면서 별의 별 인간들을 다 만난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극대노하거나 못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지만 또 모르지... 사람은 언제나 실수하기 마련이고, 중요한 것은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 이니깐 말이다. 밀라노 비행 이후로 그 천사 같던 크루들과 부사무장은 만난 적이 없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 비행하고 싶은 건 물론이고 그녀를 통해 많이 배우게 된 내 인생에 있어 어떻게 보면 소중한 비행 경험이었다. 나도 언젠가 밑 사람들에게 엄마처럼, 가족처럼 소중하게 대하고 포옹해주는 그런 사람이, 그런 크루가 되겠다고 다짐한 그런 소중한 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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