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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Aug 27. 2024

이봐 꼴찌, 오늘 내 MVP는 너야

EP.트레이닝 일기

말 그대로 합격을 하고 기다림의 끝에 회사에서 준 비행기 티켓을 타고 이곳에 정착하러 가는 당일, 비행기를 타는 내내 왠지 모르게 현타가 왔었다. 

몸에 핏 되는 유니폼을 입고, 인사를 건네면 식사 안내를 하고, 왔다갔다 동료들이랑 같이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곧 내 미래였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느끼는 바로는 호텔리어, 미술관 데스크 업무들을 통틀어서 이 직업은 그나마 가장 업무의 시퀀스가 단순하면서도 그 어느 직업보다도 체력적인 강인함을 많이 요구하는 직업인 것은 확실하다고 느끼고 있다. 


음, 당시에 왜 현타가 왔을까? 곰곰이 고민해봤다. 내가 이 직업을 위해 준비하고 달려온 시간은 약 2년 10개월이었다. 이 기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었다. 얼마 없고, 자주 쓰지도 못하는 연차를 사용하겠다면서 아등바등 머리를 쓰면서 시간 내어서 면접을 보러 갔었고, 작은 희망 가득 안고 간 면접들에서는 계속되는 물거품 아래에 많이 지쳐갔었다. 합격의 순간은 정말 달콤하면서 순식간 이였다. 준비 기간 내내 상상했었다. 나는 내 자신이 합격하면 엉엉 울 거라고. 하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실제로 벙 쪄서 면접관에게 나 맞냐며 2번을 물어봤었다. 눈물은커녕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상당히 허무하기도 했었다. 믿기지가 않아서 정말 이게 맞나 싶었다. 이후 조이닝을 위해 계속되는 기다림에 지쳐갈 때 쯤, 회사에서 조이닝 날짜가 나왔고, 인생에 있어서 첫 독립을, 그것도 해외로 떠나게 된 날. 뭔가 이걸 하자고 내가 2년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울고, 불고, 난리를 쳤었구나... 라면서 지나간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세월의 흐름 속 허무함과 싱숭생숭함이 계속 맘속에 맴돌았었다. 


트레이닝 기간 동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실제로 상상한 승무원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정말 이 곳은 정글이었고,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들의 문화 속에 녹아들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영원히 안녕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본 시험이었는데 벙 쪄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방법을 헤매 1차 시험에 떨어지고 재시험을 보게 된 날. 정말 눈물을 콸콸 쏟아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신 차리고 재시험에 임했고, 다행히 합격했었다. 또한 실습 비행을 떠나기 전 치러지는 수업이 있었다. 하도 긴장을 많이 해서, 영어도 꼬이고 뭐든 것이 다 꼬였던 날이었다. 더군다나 첫 번째 조라 많이 혼나기도 했던 상황이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에 조용히 담당 인스트럭터가 나에게만 다가와 말했다. 

“나는 네가 누구보다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란 걸 안단다. 그리고 너는 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알고 있어. 너는 강해. 지금까지 수많은 시험을 통과해서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야. 하지만 네가 정말 이 직업이 하고 싶다면, 같은 조 중의 하나였던 전직 승무원 출신인 친구의 반만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한다면, 제발 다른 직업 찾아봤으면 좋겠다. 너는 여기에 맞지 않다는 거니까. 오늘 내 수업에 있어서 네가 최하위다.” 이 말을 듣고 눈물이 나올 것을 꾹 참고, 집에 돌아가 혼자 자기 전, 너무 많은 현타와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면서 밤을 지새웠었다. 정말 나는 여기에 맞지 않는 것일까? 내가 이 직업이랑 맞지 않는 데, 억지로 무리해서 온 것은 아닐까? 왜 다른 친구들은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못하고 뒤떨어지는 것일까? 자책도 많이 했었다. 마지막 최종 시험이 있을 때까지, 계속 머릿속으로 시험에서 이렇게 행동하겠다면서 비행 내내 많이 공부하고, 시험에 임하는 내 자신에 대해 상상을 하고, 주말마다 시간나면 계속 업무들을 정리하면서 해야 할 내용들을 숙지했다. 


시간이 흘러 졸업 전에 치러진 진짜 마지막 시험 당일.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노력했다만 계속 긴장상태였었다. 지금까지 모든 것들을 다 보여줘야지. 항상 최선을 다하는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최고로 노력했던 것 같다.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이 시험을 다 보고난 뒤, 한 강의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나에게 호되게 호통을 치던 인스트럭터가 말했다. 


“다들 정말 수고 많이 했다. 서로에게 잘했다면서 박수 쳐주자. 지금까지 봐 온 배치들 중에서 너희들이 제일 잘했다. 자랑스럽다. 저번에도 그렇지만, 오늘 마지막 시험에 있어서 나의 MVP를 꼽자면, 나는 ‘히히쓰’를 뽑겠어. 저번 수업 때, 사실 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 사이 실습 비행에서 누구보다도 많이 배우고 공부했던 것은 너야. 너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시험관들을 놀라게 했어. 그 동안 얼마나 노력했을지 안다. 정말 네가 자랑스럽다. 앞으로 너의 비행 생활이 기대되고 우리 나중에 비행에서 다 같이 만나자꾸나. 다들 고생했다.” 


반 친구들이 MVP로 내 이름이 불리자마자 ‘우와’ 하면서 박수를 쳐줬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눈가가 촉촉해졌었다. 그야말로 인간 드라마를 만들었다. 반 최하위에서 MVP라니 말이다. 마음고생 많이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다 눈 녹듯이 사라지는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졸업식, 졸업식 행사를 다 마친 뒤, 꽃다발을 들고 동기들과 함께 라인 인스트럭터를 찾아갔었다. 우리에게 축하한다면서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던 그의 눈길이 마지막에 나를 향했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 누구보다도 나는 네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마지막에 나를 참 놀라게 만들었다. 정말 고생 많았고, 나는 네가 제일 자랑스럽단다. 우리 나중에 비행에서 만났을 때, 네가 더욱 더 성장했을 모습에 기대된다. 축하한다고. 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트레이닝 기간 동안 나를 괴롭히고 모진 말들로 상처를 줬던 사람들이었지만, 인생에 있어서 감사한 사람들이고 인연들이었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준 장본인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힘든 시간도, 상처 많았던 날들도 내 스스로를 어떻게 해야 강하게 마음을 먹을 수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로 강해져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아등바등하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비행 내내 살아남고 있다. 영어 발음이 엉망이라느니, 느리다느니 하는 그런 상처 되는 환경 속에서도 말이다. 

내가 언제까지 이 직업을 하고 있을 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나 자신도 나를 모르는 날이 많으니까. 하지만 소중하게 얻은 꿈이기에 나는 결코 쉽사리 작은 바람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하게 알고 있다. 나는 강하니까. 혹시 모르지. 나중에 내가 승진을 해 힘들게 살아남은 후배들과 함께 비행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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