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내 역대급으로 힘든 비행 중에 하나로 기록될 것이야,오늘 비행은."
"나도 마찬가지야. 와...사람들이 잠을 안 자네."
최근에 다녀왔던 터키 비행. 정말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비행인지라, 약 1여년 전에 떠나 지금까지 역대급 힘들었다고 판단했던 나의 1위 샌프란시스코 비행을 제치고 최근 명예의(?) 1위로 등극해버렸다.
분명 기내식 서비스 나간 지 얼마 안되었다.하지만 그들의 뱃속을 기내식이 품기에는 너무나도 빈약했나보더라. 서비스가 끝나고 약 1시간,아니 1시간이 뭐야,3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콜벨이 울렸다. 사방에서,그것도 마치 누가 먼저,빨리 콜벨을 누르는지 대회가 열린 거 마냥 말이다. 저기서 띵..여기서 띵..멀리서 띵...띠리띵띵... 얼마나 심했는 지 잠시 다른 클라스에 있다가 온 승무원 동료가 놀라서는 나와 나머지 동료들에게 "이거 뭐,콜 벨 계속 울리게 비행기 고장난거 아냐?" 라고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아직 힘이 남아있으니 종종 걸음으로 기내를 걸어가 승객들의 오더를 받으면,웃음을 지을 수 있다. 한창 오더를 받아서 맘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이 외우면서 종종 걸음으로 갤리로 향할 때,꼭 내 짧은 기억력을 시험하듯이 다른 승객들은 나를 붙잡고서는 이때다싶어서 본인들의 주문을 폭포처럼 쏟아붓는다. 혹은 본인들이 배고프니 간식이나 먹을 것이 없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또 다른 주문과 함께 다시 맘 속으로,머릿 속으로 나는 다시 주문을 외운다. 좌석 번호 99A...먹을 거...888H에는 커피...티...
이런 일들이 한 서 너번이 반복되면 모든 승무원들은 피곤함이 확 몰려온다. 시간이 점점 흘러서 계속되는 콜벨과 오더에 지치고,다리가 아파오고,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우리가 응당 해야하는 일임에는 맞지만,승무원도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 지었던 웃음도 시간이 흐르고나면 점점 사라진다. 가짜 웃음을 짓고 싶어도 이젠 지을 힘도 없어진다. 그렇게 표정은 자연스럽게 웃음보다는 무표정이 되어버리고,알겠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제목처럼,정말 힘들면 가짜 웃음 조차도 나오지가 않는다.
응당 승무원들은 항상 승객들을 응대할 때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대하는 것이 승객들과 일반적인 사람들의 대표적인 이미지와 생각이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기나긴 복도를 왔다 갔다하면 힘들다. 내 몸무게의 2배는 되는 카트를 끌고 열심히 서비스를 끝냈는데,여기저기 다시 걸어서 쏘다니면 다리가 퉁퉁 붓기 일수이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 지,입으로 들어가는 지 모른다. 그러니 힘은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 항상 웃어야하는 승무원들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게 된다.
나도 너무 짜증나고 힘들다보니,가짜 웃음따위도 안 나왔다. 무표정으로 알겠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서는,지나가는 길에 나를 또 붙잡고 귀찮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바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냐면서 단어와 말투는 상냥하지만 표정은 세상 무심하게 바로 비눗방울 터지듯이 말이 톡 쏘아져나왔다.
이런 내 스스로를 보고 속으로 문득 '아,이러다가 승객들한테 컴플레인 받겠는데. 괜히 무서워진다. 다시 끝 말에 가짜 미소라도 대충 지어보이고,포커페이스라도 유지해야겠다. 콜벨에 바로바로 응대하지 말고, 나 스스로 여유를 좀 찾고 응대하자. 먼저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다행히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보더라. 감사하게도 선임들이 먼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콜벨로 정신없고 힘드니 천천히 응대하고,바로바로 나가지 말자며 제안했다. 이미 우리들 다 표정이 썩어있으니까,우리 먼저 릴렉스하고 여유를 찾고 나가자면서 말해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머리며, 화장이며 다들 어디 한 데 맞고 온 것처럼 되어있어서 다들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탈한 웃음들을 서로 터뜨리면서,서로 음료들을 건네면서 마셨다.
다행히 평정심을 찾고 나서는,여유있고 조금 더 웃음이 가능한 서비스가 가능했고,그렇게 무사히 비행을 마치게 되었다.
비행을 하다보면,참 다양한 일들이 발생한다. 승객들은 모른다. 승무원들이 보기와는 다르게 뒤에서 해야할 일들이 많은 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어떤 승객들은 승무원들을 마치 '이때다.'인 듯 시녀처럼 부려먹는 사람들도 많다. 너희가 하는 일이 승객을 밥 주고 해주는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그럴 때,오늘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미친듯이 울리는 콜 벨에 응대할 때 필요한 것이 평정심이다. 이상하고 무례한 질문들로 승무원들을 당혹시키는 승객들도 많다. 갑자기 좌석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보상을 외치며 승무원들을 힘들게 하는 승객들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승무원 본인 스스로가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마인드 컨트롤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짧은 사이에 확 몰려오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필요가 승무원에게는 있는 것이다.
이렇게 나름 포커 페이스를 잘한다며, 기분의 높낮이가 극명하지 않은 나마저 Bitch Face를 만들게 해 준 오랜만의 터키 비행에 경의 아닌 경의를 표하면서 외친다. 너... 다시는 안 만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