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사연이 있어

EP.비행일기_호주

by 꼬마승무원

"내 아들에게 절대 더 이상 술을 주지 마. 나랑 약속할 수 있지?"

"네, 그럴게요! 다른 크루들에게도 전달하겠습니다."

최근에 다녀왔던 호주 비행. 그라운드(비행기가 아직 이륙하기 직전)에서부터 외향적인 성격으로 내게 말을 붙이던 흑인 남자 승객이 계셨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뒷좌석에는 그의 동반인으로 보이는,말이 많은 그 승객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흑인 남성분이 계셨다.

나를 포함해 모든 승무원들은 그가 그라운드에서부터 술에 이미 취기가 올라온 상태임을 전혀 몰랐다. 그만큼 그는 술냄새도 풍기지 않고 너무 멀쩡해보였다. 그렇게 그라운드에서 그 남자는 내게 본인의 동반인은 큰형님이며,본인들은 남아공에서 왔다부터해서 수다를 떨었다. 그러면서 그와 동반인은 그라운드에서 위스키를 요청했고,나는 그들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안전하게 이륙 후 다시 위스키를 요청하는 말 많은 남자를 보면서 나는 느꼈다. '아, 술에 취했다.' 왜냐면 그의 목소리가 굉장히 컸기 때문이다.

밤 비행이라 식사보다는 잠을 요청하는 승객들이 많았던 비행인지라, 소음에 있어서 굉장히 예민하게 일해야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술에 취해 데시벨이 컸고,그는 자리에 똑바로 앉기보다는,뒤돌아서는 본인 뒷좌석에 앉은 큰 형님과 말을 나누기에 바빴다. 그렇게 그는 다시 내게 위스키 한 잔을 더 요청했고,나는 알겠다고 하고서는 빠르게 갤리로 들어갔다.

그 순간,큰 형님이라고 하시는 분이 갤리로 나를 따라서 들어오셨고,내 어깨를 툭툭 치셨다. 놀라서 뒤돌아보니,그는 내게 말했다.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말처럼. 절대 동반인에게 술을 주지 말기로 약속하자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에 있던 사무장님과 다른 크루들에게 그와 함께한,술에 취한 동반인의 마음 아픈 속사정에 대해 말해주었다.

"저 놈이 나한테 큰 형님이라고 했죠? 사실 나는 저 사람의 아빠에요. 사실 이전 우리의 연결편이고 이전에 다른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 저놈이 최근에 이혼을 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기댈 곳이 없어서 요즘 술을 많이 마십니다. 이전 비행에서도 꽤나 많이 마셨는데...괜찮아 보였는데 아닌 거 같네요. 정말 미안합니다. 대신 저 놈한테 술 주지 마세요. 약속해요.

제가 잘 관리할게요."

그의 숨겨진 속사정을 듣고서는 다들 안타까운 마음을 작은 탄식과 함께 표현했다. 그러면서 아빠라는 분의 약속을 지키겠다면서,말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한 뒤,서비스를 위해 그를 자리로 되돌려보냈다.

그렇게 가슴 아픈 이별을 했고,누군가에게 토할 곳이 없으니 술에 의지한 그의 속사정을 들으니 참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마다 숨겨진 속사정,사연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자면서 약속을 했을 것이다. 허나 본인들의 약속,기대와는 정말 다르게 다가와버린,와장창 기대를 깨버린 잔혹한 현실이었다. 이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을 잊고자 술에 취한 그는 또 다른 사랑과 여자를 만나야한다는 외로움과 압박때문이었을까? 그는 나를 마주치는 내내 눈이 예쁘다,피부가 예쁘다 등등 손목을 잡거나 팔을 쓰다듬거나 등의 표현을 했다.

이미 그의 속사정을 듣고보니 참 안타까운 마음인지라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그만하라고 정색하면서 말하기가 애매했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안고,남자 승무원들에게 부탁해서 저 승객만은 너희들이 응대해줄 수 있겠냐며 부탁했다. 그렇게 다들 잘 알겠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고,시간이 흘러 그렇게 술에 취한 그 승객은 영화를 보면서 잠에 빠졌다. 그렇게 그는 깊은 잠에 깨고난 뒤에는 딱히 별 말없이 정말 조용하게,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최종 목적지에 무사히 그의 큰 형님,아버지와 함께 잘 내렸다.

외항사승무원으로 일하면서,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정말 세상사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구나와 더불어 드는 생각. 바로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각자에게는 말 못 할 비밀과 사연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이다.

참, 외항사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내가 겪고 싶지 않아도 겪게 되는 사람 군상과 사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 일은 사람을 참 힘들게 만들기도하지만,사람을 그만큼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부디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그가 술보다는 건강한 방법으로 사랑과 이별의 아픔이 서서히 무뎌지고,멀어지기를 바란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과 사람으로 잊혀진다는 말이 그에게는 딱 들어맞게,더 좋은 인연을 만나기를 멀리서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든 것에는 인연과 때가 있어. 사람도, 회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