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우리 가족들 자체가 아침형 인간들인지라,어릴 적 부터 우리집은 주말이여도 아침 8시 30분이면 다들 눈을 뜨고서는 각자의 일과를 시작했다. 우리 막내 동생 빼고... 아무튼 개인의 성향과 더불어 우리 집안 가족 분위기 영향 덕분에,나는 자연스럽게 아침에 활동하는 것이 편한 인간이다. 현재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휴무 날에도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제 아무리 전 날에 시차가 많이 차이나는 미국이나 유럽을 다녀왔다고해도, 크게 영향받지 않고 나는 아침형 인간의 패턴을 하루면 회복한다.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인지라 그렇다.
중학교 때부터 항상 전교 5등 안에는 매번 들었던 나는 시험 기간만 되면 공부를 위해서 새벽까지 공부하고는 했다. 그런 뒤,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머리가 좋은 친구들을 뒤에서 따라잡느라고 고군분투하느라 새벽에 과외를 듣고 두 세시간의 쪽잠을 자고 등교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 첫 직업으로 나는 호텔리어를 선택했고,호텔에서는 교대 근무라는 특성으로 인해서 야간 근무를 하는 일이 많았다. 나의 근본적인 성향과 삶의 방향성은 아침형 인간이었으나,나의 주변 환경은 밤을 새는 경우가 많은 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절정으로 현재 나는 외국항공사 승무원이 되어서,전 세계의 다양한 시차를 경험하면서 밤낮을 가리지않고 일하는 중이다.
호텔 프론트에서 근무한 시절도 포함해서 외항사승무원으로 근무하는 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아직도 견디기가 힘들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야간 비행'이다. 남들이 잘 때 일하는 것이 참 아침형 인간으로서 제일 힘들다. 그 아무리 다양한 시차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승무원이라고 하더라도,햇수로 3년차인 나는 항상 힘들어한다.
교대 근무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직업을 해오면서 각 근무 시간의 패턴마다 장점과 단점이 참 극명하게 느껴진다. 호텔에서 야간 근무를 했을 때,가장 큰 단점과 힘든 점은 바로 졸음과의 싸움과 더불어서 술에 취한 사람들과의 언쟁,싸움이었다. 또한 하우스키핑이 없으니 객실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들을 다 내가 책임지고 수습해야하니 한 번 일이 터지면 크게 터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반대로 장점은 아무래도 응대하는 사람들이 적으니 낮 근무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승무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야간 비행은 잠과의 싸움이다. 서비스가 끝나고나면 승객들의 휴식을 위해 비행기 기내 조명을 끄는데, 그때 할 것도 없고 그러면 정말 졸음과의 사투가 시작된다. 초절정으로 기내 좌석벨트 표시등이 켜져서 크루싯에 앉게라도 되면,그야말로 감기는 내 두 눈과 제발 일어나라고 외치는 내 뇌와의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다툼이 시작된다. 그러다가 '띠링'하고 콜벨이 울리거나 좌석표시등이 꺼지는 소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헐레벌떡 놀라서 안 졸은 척 시전을 하고 빨리 갤리로 이동한다. 이런 야간 비행의 장점 역시 호텔리어 시절과 똑같다. 자는 승객들이 많으니 낮 비행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있고 조용하다는 것이다.
낮 비행은 대부분의 승객들이 깨어있다. 아무리 승객들이 다양한 국가에서 와서 각자의 시차가 다르다고 한들,낮 비행은 대부분이 깨어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서비스가 끝나도 뭔가를 요청하는 승객들이 많다. 이럴 때는 승객들의 콜벨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서도 띵,저기서도 띵하고 울리는 콜벨과 더불어서 기내 복도를 지나가는 나를 가만히 두기 보다는,꼭 붙잡고서는 이것 저것을 요청하고 해달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내 스스로가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나는 차라리 밤 비행보다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서 떠나는 낮이 포함된 비행을 더 선호한다는 것. 제 아무리 비행이 이른 새벽 5시에 있다고한들,나는 차라리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일하는 것이 더 낫다. 밤 10시에 일어나서 아예 밤을 꼴딱 새어버리는 야간 비행은 정말 나에게는 피곤한 비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인간의 DNA에 새겨진 유전의 법칙인, 밤낮을 안 지키면서 뒤바뀐 채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안 좋고 남들보다는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다큐멘터리와 뉴스로 본 적이 있다. 나도 잘 알고있다. 사실 남들이 다 잘 때 자고,일어날 때 일어나는 것이 제일 건강하면서도 좋은 삶이다. 그래서 사실 승무원들 중에서 암에 걸렸거나,걸려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거나,암에 걸렸어도 그냥 일하는 승무원들도 많고,실제로 존재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밤낮이 바뀌면서 살아가는 이 삶에 몸에 무리와 피로도가 많이 다가옴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직업이기에 나는 오늘도 시차와 뒤바뀐 밤낮 사이에서 밀당을 하면서 일하고 있다.
수 많은 눈들을 마주하고,그들의 표정과 눈빛을 더 많이 가슴과 머릿 속에 바라보고 기억에 새길 수 있는 낮 비행. 그리고 고요한 정적이 많은 밤을 함께 지내고 서서히 동이 트여오는 오렌지 빛깔의 아름다운 하늘을 마치 내게 '밤 새서 고생했네. 수고했다.'면서 선물처럼 보여주는 밤 비행. 결국 두 비행 모두 내게는 승무원이라는 삶의 경험을 하루하루 쌓여가게 만들고 살아가게하는 디딤돌이겠노라.
두 비행 모두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지만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결국 수 많은 밤낮을 이겨내고 해낸 나의 모든 비행들이 시간이 흐르면 내겐 아름다웠고 찬란했으며 가장 자랑스럽고,자유로웠던 날들이자 추억으로 나중에 회자될 것이란 걸 말이다. 나의 소중하고 예뻤던 치열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다는 건 절대 변함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