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성향의 승무원에게 제일 힘든 순간

EP.비행일기

by 꼬마승무원

나의 MBTI는 ISFJ이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E(외향형),I(내향형),S(감각형),N(직관형),F(감정형),T(사고형),P(인식형),J(판단형),이 8가지의 모든 성향이 존재한다. 결국 나라는 인간이 어떤 부분에 더 치중되어 있는지에 따라 나오는 MBTI가 다를 뿐이겠지. 아무튼 나는 내향적이면서도 감각적이며,감정으로 관계를 바라보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최근에 이틀 연달아서 스탠바이 듀티가 있었다. 이전에 스탠바이 듀티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었긴하지만,스탠바이는 한 마디로 말해서 '5분 대기조'이다. 정해진 시간에 집이든 공항이든 지정된 곳에서 있다가,바로 어떤 비행에 크루가 당일에 갑자기 일이 생겼든,아팠든 병가를 내면 대타로 투입되는 것. 이것이 스탠바이 듀티이다. 이런 스탠바이 듀티의 특성 상의 단점을 아마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았어도 순간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다. 스탠바이 듀티의 단점. 바로 '내가 어디로 불릴 지 전혀 모른 다는 것'. '언제 불릴 지 모르니 나도 모르게 긴장해야하고,잠을 제대로 편히 못 자서 피곤하다는 것'. 그리고 '스탠바이에 불리게 되면 종종 내 뒤에 있는 스케줄까지 다 영향을 미쳐서 뒤의 계획들이 다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스탠바이 듀티를 J의 성향인 나는 매우매우 싫어한다. 내가 계획한 것들을 다 망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될 수도 있고,제일 싫은 건 내가 어디로 갈 지 모르는데 거기에 투입된 이유는 바로 대부분이 안 좋은 노선의 비행이거나 크루 중에 상사가 한 마디로 병신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갑자기 불리는 것도 스트레스인데,하필 불리는 비행이 최악의 노선 비행이거나 크루가 딱봐도 회사에서 못된 걸로 유명한 사람이면...참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다.

하지만,운이 좋은 스탠바이도 있다. 바로 유럽이나 좋은 곳으로 불려가는 비행. 이번 나의 스탠바이가 그랬다. 이틀 연속의 스탠바이 중에,첫째 날은 조용했다. 그러고 마지막 스탠바이 날. 오후 6시가 되도록 불리지 않길래 지금까지의 짬밥으로 봤을 때 이건 안 불리고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동기들과 오랜만에 휴무도 같겠다하여 외식을 나가려고 준비를 다 하고 내 방에서 나왔다. 그러고 택시를 잡을까 하는 순간. 갑자기 내 핸드폰이 미친듯이 울렸다.

"아 미쳤네... 나 스탠바이 콜업됐다."

그렇게 갑자기 불리게 된 나의 스탠바이. 근데 이상했다. 나의 다음 비행들도 다 영향을 받았는지 왜 다 바꼈지? 쭉 내려보니 이해가 되었다. 바로 유럽으로 불리게 된 것. 참 어이없고 황당했다. 유럽으로 가는 것은 좋긴 했지만 참 기분이 묘하고 짜증났다. 왜냐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다 마치려니 갑자기 일하러 떠나야하고,잠을 한 숨도 못 자고 밤을 새서 비행을 나가야했다. 그리고 리포팅까지 2시간 30여분 밖에 남지 않아서 빨리 준비를 해야했었다. 속으로 '내가 다행히 미리 혹시 몰라서 짐을 다 싸놨으니까 망정이지,안그랬으면 캐리어 싸는 데에도 한나절 걸렸을 것이야.' 라면서 내 자신을 칭찬했다. 그리고 혹시나해서 크루 리스트를 보니 꽤나 유명한 상사의 이름이 있더라. 어이가 없어 벙 찐채로 서로를 바라본 나와 동기. 그렇게 어이없음과 당황함으로 인해 내 손은 나도 모르게 미세하게 덜덜 떨렸다. 그렇게 동기들은 나를 제외하고서는 외식을 나갔다. 함께 외식하려고 일부러 밥도 안 먹었는데 말이지.

지금은 벌써 시간이 흘러 경험의 한 켠이 되어버린 나의 유럽 비행. 걱정되는 예상되는 다르게 상사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고(뭐,사람이 변했을 수도 있고. 아무튼 내 비행에서는 세상 좋은 분이었다.) 크루들도,승객들도 매우 좋았다. 그렇게 동기들과의 외식과 원래 내 스케줄과는 바이바이했지만,그럼에도 좋은 스탠바이였다. 이런 스탠바이라면...언제든지 불려도 나쁘지만은 않은걸? 이라면서 유럽을 즐겼다.

내 모든 행운을 다 가져다가 바친 것 같던 이런 스탠바이였음에도 J의 성향인 나는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사실 나처럼 계획적인 성향이 좀 강한 승무원들의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딜레이,기체 결함,응급상황,매번 바뀌는 상사들의 지시 등이 빈번하고 빈번한 승무원의 일하는 환경 자체가 그렇게 맞지는 않다. 이런 변화무쌍함들이 대부분은 우리에게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다가와서 마치 머리를 권투장갑으로 훅 하고 맞은 것처럼 당황스러움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벙찐다고 해야할까? 그렇기에 스트레스로 다가오기가 다른 승무원들보다는 크다. 때문에 남들보다 소비해야하는 에너지가 크게 다가온다.

어느 덧 어디가서도 막내라는 소리는 안 듣는 나인데도 여전히 훅 들어오고 당황스러움을 주는 이 승무원의 업무 환경은 참 다이나믹하다. 정말 한국 드라마 같다고 해야하나. 아마 누군가는 이런 업무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게 바라볼 것이다. 우와! 갑자기 유럽으로 날아간다고? 갑자기 유라시아로 간다고? 그렇다. 내가 어디로 떠날 지도 모르게 만드는 이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스릴을 선물해주는 듀티가 바로 승무원들의 스탠바이 듀티이다. 그리고 J인 나는 이 긴장과 재미를 남들보다 2배,아니 몇 배 이상을 느끼고 있다.

아, 나처럼 J인 친구들아. 내가 짜증나는 거 알려줄까? 나 내일도 또 스탠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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