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맛있게 하는 승무원

EP.비행일기

by 꼬마승무원

"승무원으로 일하시면서 가장 가슴이 쫄리거나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있으세요?"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 아,물론 많지. 갑자기 와인을 많이 마셔서는 화장실 가겠다고 벌떡 일어나다가 쓰러지고 토하는 승객 응대하는 것,갑자기 숨을 안 쉬고 쓰러진 승객,술에 취해서 성희롱을 한다거나 갑자기 승무원 신체 이곳 저곳을 쓰다듬는 승객,맘에 안드는 동료들과의 서비스 등등... 나는 수 많은 스트레스 상황 중에서도 오늘은 서비스 도중에 모든 전현직 대형항공사 승객 출신들이라면 극히 공감할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아마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라면 오늘 이야기의 제목을 보고서는 오늘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지 알아챘을 것이다. 현직 승무원들에게 필요한 자질 중에 하나로 나는 오늘 이야기의 제목처럼,'말을 맛있게 하는 능력'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 기내 식사 서비스 도중에 기내식 메뉴 둘 중에 하나가 급격하게 빨리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는,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인기가 없는 메뉴를 마치 더 있어보이고 맛있게 말을 지어내서 승객들에게 전달하는 능력. 이 능력은 절대적으로 현직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필요한 능력이다. 그리고 이 말인 즉슨,승무원들에게 가장 가슴이 쫄리고 스트레스 받는 순간 중에 하나가 바로 기내 메뉴 중에 하나가 너무 빨리 소진되어서 뒤에 남은 승객들에게 제공을 못해 컴플레인을 받거나 사과를 해야하는 순간이라는 말이다.

사실 말을 맛있게 전달하는 것도 한계는 있다. 그 아무리 내가 인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B라는 메뉴를 근사하고 있어보이게 만든다고해도,승객들이 곧 죽어도 A라는 메뉴를 달라고하면 그 맛있는 언어는 한순간에 그냥 거짓이라는 화려한 포장지에 쌓여진 음식으로 되어 버린다. 뭐....A라는 메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보이는 게 뻔한데 A를 달라고하는 승객에게 대놓고 "아...안돼요! 너가 이거 선택하면 뒤에 계신 다른 승객들에게 줄 선택지가 사라진다군요! B라는 메뉴 그냥 드세요! 어차피 뱃속으로 들어가면 똑같고,기내식은 몸에도 좋지 않다구욧!"이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깐. (그저 맘 속으로만 삼키고 또 삼킬 뿐이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말을 더하고 빼서 근사하고 상대적으로 있어보이게 표현하는 것. 나는 이런 행동 자체가 해당 승무원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A라는 메뉴가 빨리 사라지는 것을 파악하고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 한 B라는 메뉴에 대해 A 메뉴에 대한 설명보다는 더 자세하게 말한다. 어떤 소스인지를 말하는 것. 달짝지근하다는 맛의 표현을 한 문장 더 더하고,서양인보다는 아시아인들에게는 아시아 스타일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거나,매콤한 맛을 강조하는 것. 승객에게 더 상상이 가도록 말을 전달하는 이런 것들이,나는 마치 우리가 음식을 만들 때 첨가하는 MSG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양이지만 감칠맛이 있게 맛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MSG. 그저 한 두문장의 짧은 문장이지만 승객 입장에서 들었을 때 좀 더 상상이 가고 구미가 높이 당기게 만들어주는 말 한마디. 이것이 바로 해당 승무원의 감초같은 능력이겠다. 이런 대처 능력은 시간이 흐르고 짬밥이 쌓이면서 저절로 늘게 마련이다. 승객들에게 물 흐르듯이,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웃는 얼굴로 미인계를 쓰면서 돌려돌려 말하는 승무원들도 있고. 마치 이 음식이 우리 시그니처라면서 기분 좋은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근데 일하다 보니 느끼는 것이 있다. 아무래도 인간인지라 내가 한 메뉴에 대해서 뭔가 설명이 길어지면 승객들도 느낀다. 아, 이 메뉴가 별로 인기가 없나보구나...그러고서는 굳이 반대되는 것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정말 착한 승객들은 승무원의 노력을 알아보고서는 웃으면서 인기 없는 걸로 달라고 한다. 그러면 속으로 승무원들은 생각한다. '이런 천사같으니라구!!' 노력하는 승무원이 진심이 느껴지고 안타까워서 도와주려는 것이 눈에 띈다. 나의 경우는 승객으로 탑승했을 때,후배 분에게 "그냥 지금 인기 없는거로 주셔도 돼요." 라고 말하거나 워낙 기내식을 안 먹어서 "저는 그냥 무시하고 아무것도 안 주셔도 됩니다." 라고 말한다. 그럼으로서 인기많은 메뉴를 킵할 수 있고 메뉴 부족으로 인해서 후배들이 난처해하는 것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승무워들은 '진짜? 괜찮은데...' 라고 말한다. 난 알고 있어. 너희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게 감사하다고 외치겠지.

아무튼,인기가 없는 메뉴에 대해서 맛있게 말을 덧붙이든 아니면 직접 음식을 보여주든 어떻게든 고군분투하면서 모든 승객들에게 초이스를 주고 싶은 승무원의 마음이겠다.

나는 이런 능력을 누군가가 갖고 있는 지 미리 알 수 있다. 바로 본인의 에피소드를 얼마나 타인에게 상상이 잘 가도록 간결하면서도 맛있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런 능력을 갖춘 상대방을 보고 나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배려하면서 차분하게 설명하는 성격을 지녔구나라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다.

그러니 만약 이 이야기를 보는 승준생들에게는 지금부터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의 이야기가 상상이 잘 되도록 말을 맛있게 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보는 현직 승무원들에게는 맛있는 우리의 말 한마디를 진심으로 가엾게 여기는 승객들이 있을 터이니..더이상 쫄리지 말고 힘내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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