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비행일기_미국 샌프란시스코 비행
사람은 저마다의 사연을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마냥 편안해보이고 돈 많아서 행복해 보이는 이들에게도 모두 그들만이 갖고 있는 사연이 분명히 있다. 오늘 들려드릴 비행일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에 있던 일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비행은 크루들 사이에서도 정말 개빡센 비행으로 유명하다. 서비스가 분명히 끝났는데 아니다... 절대 끝나지를 않는다. 정말 힘듦 그.자.체 이다. 나도 본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16시간이나 되는 비행에서 정말 앉아서 쉬지를 못하고 계속 캐빈을 왔다 갔다 하느라 나뿐만 아니라 모든 크루들이 넋이 나간 경험을 했었다. 다행히 미국 샌프란에서 본국으로 가는 비행에서는 야간 비행이었기에 그렇게 힘들지가 않았다.
생각보다 여유로웠던 서비스가 다 끝난 시간. 갑자기 한 금발의 중년 여성이 갤리로 놀러오셨다. 비행시간이 길어지면 앉아있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스트레칭도 하고 잠도 안 오고해서 승무원들이랑 얘기 나누려고 갤리로 놀러 오시는 승객 분들이 많다. 그녀도 그 중에 하나였다. 음료나 간식을 드릴까요? 라고 말을 건네며 그녀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직 크루즈승무원이었다. 오, 나도 크루즈승무원 관심 많았는데... 하면서 같은 관심사에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싱가포르 집값이며, 모든 것이 비싸지 않느냐는 사는 얘기부터 많은 말을 나눴다. 샌프란시스코는 힘든 비행이지만, 그곳에서 쉬면서 경험한 것들은 정말 재밌었고, 좋았다면서 기분 좋은 대화를 건넸다. 얘기 중간에 나는 그녀에게 혹시 커넥팅 플라잇(다른 항공편)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그녀는 발리로 가는 비행이 있다고 말했다. 오, 발리! 나는 아직 발리에 안 가봤는데, 혹시 휴가로 가시나요? 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의 집에서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음.. 그러게. 휴가라면 휴가일 수 있겠다. 나는 평생 잊지 못할 휴가를 가. 내 아들이 발리에서 서핑사고로 죽어서 지금 급하게 만나러 가는 길이야.”
아뿔싸, 그런 일이. 정말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었다. 급하게 떠난다는 그녀가 금세 울음을 참으면서 손이 떨리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정말 유감이라면서 빨리 휴지를 건넸다. 그러고는 고맙다는 그녀의 손을 잡아드리고 안아드렸다. “정말 고마워. 삶이란 그런 거지 안 그래? 그래도 내 아들은 그의 삶을 사랑했단다. 나이가 38살인데 결혼도 못하고 말이야 그치? 가슴은 아프지만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러가는 길이야. 너도 이 직업을 즐기렴. 그리고 너의 삶을 사랑하면서 지내. 이 일은 아무나 못하고 아무나 경험하지 못하는 거니깐 말이다.” 그럼요. 애써 크게 웃으면서 말을 건네는 그녀를 보면서 더 마음속에 찡함이 느껴졌었다. 중간에 서비스를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더 많이 못했다. 그러고 중간에 그녀는 다른 여성분과 함께 대화를 이어나가셨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참 생각이 많아지는 비행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비행이 가족 및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설렘의 길일 수도 있고, 죽음을 맞이하러가는 슬픔의 길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삶을 위해 떠나는 긴장감이 맴도는 길일 수도 있고. 내가 모든 승객들의 개개인 사연들까지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내가 그들과 얼굴을 부딪치면서 만나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최대한 도움을 주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편하게 해드려야겠다고 그녀를 만나면서 더 많이 느꼈다. 승무원이라는 삶도 내가 선택한 삶이다. 정말 이 직업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고, 아무나 되지 못하는 정말 특별한 직업이다.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누구나 되고 싶어 하고, 그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직업이기도하지만 말이다. 매 순간 순간, 내가 선택한 이 길에 후회가 없도록 언제나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고, 그러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발리에서 장례식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을 것이다. 부디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그녀의 슬픔이 언젠가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 누군가에게 말했을 때, 그나마 덜 슬픈 마음으로 전해지는 날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아드님도 당신 같은 따듯하면서도 강한 엄마를 만난 것에 행운이었다고 느낄 것임에 분명하다고 편지라도 써 드릴걸... 하고 여전히 지금도 가끔 후회되는 비행이다.
Dear Sir, Rest in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