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종차별주의자,인간혐오자

EP.비행일기

by 꼬마승무원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고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어그로를 끌려고 이렇게 제목을 지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면,뭐 그 말도 맞겠다고 금방 수긍하고싶다. 하지만 진심으로 나는 외국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난 뒤,내 스스로에 대해서 우스갯소리로 타인들에게 저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이고,인간혐오자야."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들 웃으면서 반응을 보이곤한다. 농담 반,진담 반으로 건넨 이 말을 현직 승무원들인 내 친구들,지인들과 전직이였던 선생님들이 들으면 다들 농담 보다는 진담의 의미와 더불어서 공감의 표현으로 크게 더 웃고 반응한다. 그러곤 다들 이렇게 말한다.

"맞아,나도 그래." "맞아,나도 한창 외항사승무원으로 일했을 때 그랬지."

크루들 사이에서 Lousy한 (정말 별로인) 곳으로 꼽히는 나라의 비행을 갈 때마다 그 어느 곳보다도 치를 떨면서 가기를 싫어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국적의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얕잡아본다. 우리보다 덜 발전되었고,덜 교육받았다면서 내 무의식은 은연 중에 그들을 무시한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니 다른 나라에서 다른 국적의 승객이 동일하게 요구하는 것도 더 짜증이 나고,싫어하고 피곤하다는 나의 표정과 말투,목소리 톤 등을 숨기기가 어렵다.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그들을 경멸의 눈으로 나도 모르게 바라보면서 이 나라의 국민성은 이런 것이냐면서 차별과 혐오를 보낸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이다.

오늘 비행에 탑승하는 승객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직업과 오늘 우리가 버는 돈도 없었을 거라는 걸 기억하라며 종종 브리핑룸에서 건네는 상사들의 말은 이젠 귓등으로 듣게된 지 오래이다.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감사함을 표하지만,정말 이렇게 치사하고 더러운 것들마저 모든 것들을 승무원을 우습게 알고 시키는 승객들에게 지쳐버린다. 우습게 말을 바꿔서 마치 승무원의 잘못인 것마냥 뒤에서 이상하게 말을 지어버리는 승객들을 보면서 인간혐오가 걸려버렸다. 승객 뿐만이 아니다. 크루들에게도 지치게 되었다.

본인보다 더 높은 직급의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위해서 없던 일을 마치 있던 일로 만들거나,본인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만만한 후배나 얕잡아보이는 약한 사람에게 실수를 덮어씌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본인 실수에는 관대하면서 후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이 한 실수에는 누구보다도 매의 눈으로 찾아서 꾸짖고 감싸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내두른 적도 많았다. 나의 실수에 왜 그렇게 했냐면서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끄집어내면서 마치 죽을 죄를 지은 것마냥 묻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억울해서 혼자 조용히 흘리는 눈물 방울을 마치 눈이 건조해서 아이드롭을 떨궈서 그런 것이라고 감췄던 적도 많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면서 괴롭힘의 타겟을 잡고 못되게 구는 크루들도 참 많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점점 더 인간혐오가 심해졌다. 나는 인간혐오자이다.

그럼에도 소수의 착한 사람들이 이런 인간혐오와 인종차별이라는 부정적이고 가난한 마음의 씨앗이 더 커지는 것을 중간중간 막아주고 있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고,실수와 사과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받아주었다. 그럴 수도 있다면서 다독여주고 묵묵히 뒤에서 챙겨주었다. 나의 고난과 어려움을 뒤에서는 조용히 다가와 이해한다면서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여유로움에서 감사함을 느꼈다. 나 스스로는 발견하지 못하던 나의 장점에 대해서 먼저 발견해서 칭찬을 해주던 그들도 있었다. 비록 문화와 교육에 대한 배움이 부족했어도,그 부족함을 뚫고 나오는 진심을 보여주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정말 못된 건 아닌 지를 반성하게 된다. 그런 그들을 잠시나마 되돌아보면서 인류는 과연 성악설이 맞는 것일까,성선설이 맞는 걸일까를 잠시나마 고민해보기도 한다.

수 많은 인종과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일하는 외국항공사승무원. 외국항공사승무원인 나는 농담 반,진심 반 내 스스로가 인종차별자이자 인간혐오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고있다. 이 모든 경험들이 추후에는 그땐 그랬지라며 나의 찬란했고 빛났던 젊은 시절 한 페이지를 빛내는 잔잔한 호수가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런 나의 못된 마음 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는 걸 말이다. 아니,어쩌면 또 다른 못된 마음이 새롭게 자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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