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언제나 편하게 돌아갈 세상이 있다

EP. 휴가일기

by 꼬마승무원

올해 두 번째 휴가를 다녀왔다. 원래 7일 휴가였지만 기적의 COF (Change of Flight, 비행 스케줄 변경)을 이뤄내서 12일로 연장하여 길게, 9일부터 20일까지 한국에 다녀왔다. 그러고 지금 난 어디게? 미국 로스앤젤레스라네.... 이틀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었는데 지금은 미국이라니. 20일 오후 7시에 한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연착으로 인해 21일 새벽 1시 15분경에 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집으로 향해 바로 한국 음식으로 가득 찬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한 뒤, 오후 7시경에 회사 브리핑룸에 도착해서 밤 9시부터 약 15시간 50분의 비행을 마쳤다. 그리하여 나는 현재 LA에 있다. 이런 내 상황을 보고 내 가족들과 친구들은 말한다. '정말 글로벌한 인생이다...' 실제로 미국 비행 가기 전에 아, 미국 가기 싫다고 하는 내 말을 듣고서는 내가 가장 아끼고 존경하는 회사 선배께서 '참, 미국을 어디 동네 슈퍼 가듯이 말을 하네.'라고 하셔서 웃었다. 미국을 동네 슈퍼 가듯이 말하는 승무원의 삶이란... 재밌네 하하..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던 미국 비행이었지만, 내 뇌와는 다르게 몸은 그게 아니었다보다. 이런 장비행에서는 크루들은 돌아가면서 쉴 수 있다. 한 4시간 30분 정도의 쪽잠을 잤었지만, 쪽잠은 쪽잠일 뿐. 휴가 후유증으로 인한 내 몸의 피곤함을 다 풀어줄 수는 없었을 터임에 분명했다. 15시간에서 16시간은 느린 미국의 시차로 인해서, 잠이 안 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핸드폰만 끄적이다가 온몸이 녹아내리도록 또꼰하면서도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얼큰한 뽀글이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그러고 눈을 뜨니 오후 3시 30분이 훌쩍 넘는 시간이었다. 세상에나.... 머릿속으로 빨리 계산해 봤다. 도대체 얼마나 잔 거야... 세어보니 적어도 14시간 이상은 잠에 취했었다. 본국 집 바로 코앞에서 하는 공사로 인해 항상 푹 잠을 못 자는 상태에 바로 장거리 비행을 떠났으니, 그럴 만하다. 호텔 침대의 푹신함과 조용함,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세상에 잠에 흠뻑 취한 나는 꿈속에서 가족들이랑 신나게 해외 놀이동산 비슷한 곳에 갔었다. 하나 야속하게 비가 와서 내가 타고자 하는 놀이기구가 딜레이가 되어 기다리고 있었고, 부모님께 비가 와서 좀 늦게 끝날 것 같아 하는데 그 순간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 한창 재밌을 순간이었는데 아쉬웠다.

이 아쉬움이 현실에서도 이어졌다. 너무 늦게 일어난 탓에 홀로 밖에 돌아다니기에는 무리였다. 미국은 내겐 아직 혼자 여행을 떠나기에는 무섭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나라 중에 하나다.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지만, 디즈니랜드에 가기 위해선 적어도 아침 9시부터는 나갔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비행에서는 주니어 한 명 빼고는 이미 모두가 LA에 온 경험이 있었기에 다들 기를 쓰고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도 않아 보였다. 나도 내 첫 LA비행 때, 모든 크루들이 다 같이 세상에서 가장 긴 롤러코스터가 있던, '식스플래그 Six Flag' 놀이동산에 다녀온 추억이 있었기에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는 그리고 짐작했다. 휴가의 여파로 인해서 나 자신이 굳이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노트북을 챙겨 왔겠지? 가끔은 이렇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룸서비스시켜 먹고, 폭신한 침대에서 푹 자고, 조용하면서도 집중이 잘 되는 음악을 들으면서 나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들었다. 해서 앞으로는 내가 처음 방문하거나 좋아하는 국가가 아니면 굳이 기를 쓰고 나가지는 않으려 한다. 벌써부터 이러면 우짠담...

휴가 때 가족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많은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 스스로 보내는 시간도 그렇고 말이다. 항상 생각만 하던 드럼도 배우고, 더 나아가 음악에 맞춰 칠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하면서도 치열했던 고등학교 시절, 서로 돈독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조우했다. 휴가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있던 동기 오빠의 결혼식을 통해 대학교 동기들을 만나 열심히 그간 살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었다. 내 인생의 회사 첫 선배의 급 제안으로 야간 드라이브를 가서 두물머리에 갔다 왔었다. 이스타항공에 다니는 대학교 동기 친구와 함께 승무원 삶에 대해 털어놓는 시간도 가졌다. 첫째 동생네 집들이를 가서, 제부와 동생과 4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가졌었다. 내 이전 직장이었던 미술관에 방문해 미술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현재 하는 전시를 둘러보고 왔다. 승무원이 되기 전 잠깐 일했던 미술관에, 밝은 햇살처럼 먼저 다가와 준 친해진 선생님과 함께 저녁도 같이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예쁜 카페도 가고 짧은 경기도로 여행도 가고 산책도 다녀왔다. 휴가를 보내는 시간 내내, 너무나 빨리 흘러가는 시간의 덧없음에 슬프면서도 행복했었다.

내 주변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구나, 나 인복 많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휴가를 다 보내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할 때면 입에 '아, 정말 가기 싫다.'라는 말을 모터 달린 듯이 계속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 아빠는 당연히 네가 태어나고 자고 난 곳인데 얼마나 가기 싫겠냐면서 말을 한다. 그러면서도 먹고살려면, 너의 처한 삶이 그런 데 어쩌겠냐고 말씀하신다. 그래. 어쩌겠나. 지금 나의 주어진 상황과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성이 이런 것을 말이다. 지금은 벌써 한국 집을 떠나 넓기도 넓은 퀸 사이즈 침대에 누워서 이렇게 적막 속에서 열심히 두두두두 타자를 치면서 일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휴가 때 다들 다른 나라로 어디 안 가냐고 내게 많이들 물어보는데, 나는 항상 한국에 간다. 한국만 해도 국내여행으로 많이 안 가본 곳이 많기도 하고, 여행이 직업이다 보니 굳이 또 다른 나라로 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많다. 한국에 가면 가족들이 있고, 내 친구들이 있고, 내가 익숙해하는 것들이 많아 마음이 매우 편하다. 항상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 매번 새로운 동료들, 새로운 승객들, 갑작스럽게 마주치는 새로운 상황들과 지시 상황들에 이제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안정성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일을 할 때만 틈은 유동성이 많은데, 굳이 휴가 때는 유동성이 아닌, 안정성을 더 원하는 것 같다.

너무 한국을 좋아하다 보니 엄마는 내게 그렇게 한국이 좋으면 내년까지만 하고 들어오라고 말씀하셨다. 승무원인 딸을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하는 엄마 아빠이지만, 항상 한국에 오면 한국 음식 챙겨가지, 살은 빠져있지, 각종 영양제를 큰 캐리어에 쑤셔 넣어서 가져가는 나를 보면서 생각이 많으셨나 보다.

사실 나도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할지 모르겠다. 요즘 들어서 그 생각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고,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한 고민도 많고 말이다. 승무원 직업 자체를 둔다면 난 오래 할 수 있겠지만 이 회사는 언젠가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좀 더 마음 편하게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해서 국내항공사 이직도 고민 중이다. 말이 쉽지 엄청난 경쟁에 그 또한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한다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승무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직업으로 생각도 많다. 며칠 전 휴가 막바지에 방을 정리하면서 고등학교 3년 생활기록부를 봤는데, 3년 내내 내 꿈은 '교육 컨설턴트, 교육 강사'였다. 아마 당시 나처럼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 성적이 쉽게 오르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서 옆에서 도와주고 싶던 마음에서 나온 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뭔가 흠칫했다. 아, 잊고 살았구나,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도 나중에 승무원이 되고 싶은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각자만이 가지는 장점을 살려서 그들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 그러면 정말 열심히 서포트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이런 꿈을 승무원인 친구들에게 말하니 다들 감사하게도 너라면 잘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말을 해준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진다. 언제까지 승무원을 할 것인지, 내 다음 직업을 당장 승무원 과외선생님으로 잡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안정적인 한국에 새 직장을 잡고 투잡으로 과외 선생님도 하고,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인스타툰과 유튜브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맞는지 말이다.

승무원을 그만둔다면 과연 내가 행복할지, 이것도 큰 과제다. 아니, 어쩌면 이게 제일 큰 나만의 고민 싸움이겠지. '비행에 중독되지 않게.'라는 말을 모든 승무원들은 잘 안다. 매번 마주하는 동료들의 얼굴이 아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항상 얼굴 붉히면서까지도 마주해야 하는 직장 상황도 없고, 내게 맡겨진 업무만 다 하면 주어지는 개인의 여유로운 자유시간. 오늘은 미국, 내일은 호주, 내일모레는 코펜하겐... 너무나 글로벌하고 그 어떤 직업보다도 자유로운 내 인생. 이걸 포기하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을 과연 내가 잘 해낼지, 비행을 그리워하지 않을지 말이다. 승무원인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가까운 사람들의 눈빛까지, 과연 이걸 다 버릴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사실 부모님이 내게 힘들면 내년에 그만두고 오라는 말을 듣고서 뭔가 그 이후로 마음이 너무나도 편안해졌다. 이상하게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생각이 많고, 과연 이게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잘 살아가는 건지 마음 한 편이 항상 복잡 미묘하게 덩어리 진 느낌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맘이 편해졌다. 그래, 내게는 항상 돌아갈 집이 있고, 항상 내 편인 사람들이 있고, 나를 반겨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이 한 결 더 유연하게 풀어졌었다. 이 직업 아니고도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은데. 직업은 업일 뿐, 나 자신을 완전히 대변해 주는 건 아닌데. 직업이 아닌 나 자신을 정말 좋아해 주고, 내 이름 석자를 정말로 사랑해 주고 존중해 주는,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이번 휴가 때 많이 만났기 때문일까? 언제나 내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그 생각이 드니, 그래, 내가 여기서 욕을 먹고 힘들어도 내겐 돌아갈 집이 있어. 나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맘이 편했고, 지금도 그렇다.

살면서 내 평생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인생의 큰 갈림길에 서 있는 지금의 내 모습에 언제나 너에겐 돌아갈 편안한, 너를 반겨주는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감사하면서도 마음에 의지가 샘솟게 되는 오늘을 이렇게 일기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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