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과거일기_외국어고등학교 시절 이야기
나 꼬마승무원.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매번 반장 혹 부반장을 해왔으며, 언제나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전교 5등 안에 매번 들었던 항상 선생님들의 총망을 받으며 예쁨 받던 우등생이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외국어고등학교 입학을 넌지시 권하셨다. 외국어 고등학교라니. 공부 잘한다는 날고 긴다는 학생들만 모인다는 그곳! 그곳에 입학한다면 정말 좋겠다면서 엄마아빠에게 말을 건넸고, 엄마 아빠는 나에게 닥칠 엄청난 학업 스트레스를 걱정하시며 그냥 일반고로 진학해서 상위권 성적으로 인서울 좋은 학교에 가면 안 되겠냐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미 외고에 대한 모든 영상이며 어떻게 하면 입학할 수 있는지 자격요건까지 다 알아보던 사춘기의 내게 엄마아빠의 걱정 따위는 귓등으로도 안 들어왔었다. 그렇게 나의 고집과 선생님의 추천으로 나는 인서울 유명한 외고 중에 하나인 대일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했었다.
외고 생활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나는 독일어학과에 입학했었는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친구들 모두 너무 좋았다. 다들 열심히 하는 분위기에 나도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았었고, 시기 질투가 난무했고, 위아래의 수직관계가 어쩌면 명확했던 중학생 시절의 그런 분위기라고는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비되는 것은 역시나 엄청난 학업 경쟁이었다. 역시나 엄마아빠가 염려했던 학업의 스트레스는 정말로 힘들긴 했다. 워낙 전국에서 잘한다는 친구들만이 모인 곳에서 나는 아등바등 살 궁리를 찾았다. 미친 듯이 노력하고, 모든 친구들이 나를 봐도 와, 꼬마승무원은 정말 대단해, 노력최고다, 열심히 한다고 말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교에서 뒤에서 놀았다. 반에서 뒤에서 놀았다. 그런 나의 자존심과 자괴감은 바닥을 쳤고,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담임께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하고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었다. 세상 그렇게 눈물을 쏟을 수 없던 나에게 선생님은 손을 잡아주면서 그냥 여기서 계속 있으면 안 되겠냐는 말을 하셨다. 누가 봐도 너는 열심히 하는 학생임을 잘 아는데, 너는 누가 봐도 좋은 학생이며 친구인데, 너무 그렇게 성적하나로 너 인생과 너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라고.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지금은 보이겠지만, 뒤에서 놀아도 괜찮으니 졸업만은 우리 친구들이랑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선생님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결국 선생님의 진심 어린 위로와 말에 나는 그래, 추후에 외고 졸업했다는 타이틀이라도 따자면서 남아있기로 결심했고, 열심히 그저 거북이처럼 내 할 일만 열심히 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셔틀버스를 타고 아침 7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서 아침 야자를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야자를 끝내면 밤 10시. 밤 11시 30분이면 집에 도착했고, 간단하게 엄마가 만들어주신 밥 혹은 빵으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는 국어, 영어, 수학 과외를 했었다. 시간이 안 맞으면 새벽 1시까지는 영어, 새벽 1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수학을 했었고, 2시간을 자고 나서는 바로 학교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면서 내신은 올랐고.. 하지만 기가 막히게 수능 당일에 머리가 하얗게 백지상태가 되어버릴 정도의 긴장감을 느껴 나의 수능 점수는 처참하게 망해버렸다. 항상 1등급, 2등급이 나오던 언어에서 4등급이 나와버렸다. 나를 가르쳐주셨던 과외선생님께 말씀드리니 나중에 다시 재수능 보라고 말하시면서 고생했다고, 그런 말도 없이 그렇게 나를 밀어내셨다. 그렇게 부모님과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린 것 같아 죽고 싶었다.
처참한 수능 점수를 가지고 수시 원서를 넣었던 날, 나는 경희대학교의 호스피탈리티 학과에 넣었다. 그냥 이유가 없었다. 못 가는 거 당연히 아는데, 그냥 넣어보고 싶었다. 못 가니까 원서라도 넣어보는 쾌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넣고 나서 다음날 고3 담임과의 만남이 있던 날에 사실대로 경희대 호스피탈리티에 넣었다고 하니, 나에게 그는 큰소리로 '망했다".라고 말했다. 아.. 나 망했구나... 너 때문에 망했다는 그 선생님의 말이 너무나 가슴에 비수로 날아와 꽂혔다. 나는 인생도 망하고 점수도 망했구나. 나는 내 인생도 망하고 선생님의 목표도 망하게 해 버렸구나.. 세상 그렇게 울었던 적이 없었다..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서럽고 서운해서 엉엉 울었다. 나를 경희대학교 사회학과라도 넣으면 가능성이라도 있었는데 그 기회를 내가 날려버린 거라고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나 스스로를 망하게 만들었구나.
그렇게 나는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고민했다. 그냥 재수능 볼까.. 하지만 부모님이 말리셨다. 네가 재수강하면 나는 네가 너무 스트레스받을 거 같아서 너 자살할까 봐 무섭다고..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그래서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라는 말씀에 그래, 그냥 가자하면서 입학했었고, 감사하게도 매년 장학금을 타고 다녔었다. 사실 처음 입학하면서 내가 대일외고 출신임을 밝히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 매년 뒤에서 놀던 열심히 노력하던 그 시절의 내가 요 며칠 전에 고등학교 친구들 몇 명에게 연락했었다. 잘 지내냐면서. 다들 너무나도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다들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미국 대학교 등등 정말 좋은 대학교는 다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친구들도 이제는 각자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세계를 누비는 외국항공사승무원이 되었고, 누군가는 대기업에서 주임을 달고 일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나처럼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누군가는 공무원이 되었다. 그렇게 각자가 잘 살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던 것이고, 그 시절의 그런 이유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라는 결과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의 자리에서 실망과 절망에 허덕이는 그대에게 나는 말한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고. 인생은 아모른직다. 알지?
그저 지금의 내 선택에 있어서 항상 최선을 다한다면, 그에 맞는 결과와 상황은 반드시 내게 한 줌의 빛처럼, 반짝이는 별처럼 다가온다고.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