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미안하고 고맙다

EP. 감정일기

by 꼬마승무원

내가 사랑하는 인천비행을 마치고 오늘 아침에 본국으로 돌아왔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장맛비에 정시에 출발을 못하고 약 50여분 정도의 딜레이가 있었다. 더 일찍 도착했어야 할 비행이었지만, 안전이 우선이니깐. 그나마 예상보다 비행시간이 짧아서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든 크루들이 정말로 착하고 좋은 사람들만 모여서 다들 행복하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감사했던 비행이었다.

본가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호텔에 들리지 않고 바로 공항에서 사무장님께 부탁해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본가로 돌아갔었다. 그것이 더 맘이 편하고 집에 일찍 갈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집에 늦게 가도 자고 일어나 퉁퉁 부은 눈으로 언제나 아빠와 엄마는 왔냐면서 고생했다고 마중 나와주신다. 아빠는 바리바리 가지고 온 내 캐리어를 대신 내 방까지 끌어주시고 항상 더러워진 캐리어의 바퀴를 손수 물티슈로 항상 나 대신 닦아주신다. 그런 부모님처럼, 덩달아 자다가 일어나서 퉁퉁 부은 눈과는 달리 뽀송하게 털이 찐 꼬리를 바짝 세우며 왔냐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는 내 영원한 아기 고양이 할아버지, 아이. 그런 아이는 내게 작지만 앙칼진 목소리로 연신 아웅 거리면서 내 옆을 왔다 갔다 하면서 냄새를 맡는다. 그런 아이를 일명 궁둥이팡팡 해주면서 끌어안으면 아이도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을 아는지 가만히 있는다. 부모님 뿐만 아니라 나를 기다려주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내가 승무원이 되기 전, 아이에게 나란 존재는 오매불망 뭘 하든 본인을 예뻐하고 간식을 바리바리 사다 와서 맨날 맛있는 것만 주는, 기다릴 수 있는 존재였다. 지금도 여전히 뭘 하든 본인을 예뻐하고 간식을 주는 존재로 알고 있어서 나만 본가에 오면 저 멀리 간식 창고 앞에서 기다리고 나를 그렇게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망울로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음이 너무 여린 나는 그럴 때마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몰래몰래 간식을 주곤 했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내 고양이는 간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토를 해버릴 정도로 약해져 버렸다. 내 아기고양이는 이제는 털도 풍성하지 않았고, 눈빛도 많이 탁해졌었다. 꾀꼬리처럼 맑게 아웅 하던 목소리는 이제 본인도 점점 약해져 가는 청력으로 인해 약간은 거칠고 높이가 높아진 목소리로 아웅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아이는 나를 기다렸다. 내가 승무원이 되어 집을 떠나는 날, 엄마가 내게 사진 한 장을 보냈는데 내가 떠나고 나서 아이는 한참을 거실 현관문에 앉아서 문만 바라봤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아이는 내가 곧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는 그 기다림 속에서 내가 본가에 가면 항상 나를 왔냐면서, 고생했다면서 반겨준다.

기다림이란 힘든 것임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나도 승무원이 되기 위해,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림을 가졌었다. 어리고 서툴렀기에 기억에 남는 첫사랑의 군대도 입대부터 전역까지 기다렸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려준 사람도 있었다. 그 기다림이 정말로 고마웠었고, 지금도 매번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어쩌면 나의 욕심으로 내가 상대방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믿고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해 준 것에 대해서 대단하고 고맙다. 나를 위해 당신의 시간을 써야 하고, 나를 위해 당신의 신경이 온통 멀리 있는 나에게만 집중되어있어야 하고,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면 티도 못 내고 혼자서 말도 못 하고 끙끙 앓으면서 힘들고 지쳤을 거라 생각하니 여전히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참 미안하다.

나는 잘 안다. 겉으로는 괜찮다가도, 주변에서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이 괜찮냐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괜찮다, 나 스스로 이 시간을 잘 보내고 나는 외로움도 잘 안 탄다고 말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속은 쓰리다는 것을. 이게 맞는 건가.. 남들은 다들 이러지는 않는데 내가 선택한 이것이 잘한 일일까, 과연 이 모든 선택이 우리 둘한테 맞는 일인지 분명 생각이 많다. 나도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으니깐. 남들과는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 어쩌면 정말 특별하지만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이다.

첫사랑의 군대를 다 기다려줬던 그 순간순간 내게 주변에서는 말했다. 너 그러다가 버림받는다. 다른 사람 만나봐. 네가 뭐가 모자라서 그렇게 기다려주는 거야. 그러는 순간 정말일까? 젊은 날의 소중한 순간을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 집중하는 이 시간이 정말로 후에는 잘못된 것이 맞을까?. 하지만 기다림 속에 받는 상대방에서 오는 달콤한 페이스북 메시지가, 부모님께 걸어도 모자랄 그 시간에 짧게라도 전화해 주는 상대방의 전화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했기에 그 순간이 힘들어도 참을 수가 있었다. 어린 시절이었기에 더 빛났던 기다림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기다려줬던 사람에게 고마웠고, 지금도 나를 기다려주는 모든 소중한 사람들에게 고맙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상대방에게는 힘들겠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시간만큼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노력해하고 앞으로는 더 나은 내가 될 거라는 걸 나는 믿는다.

그렇다. 기다림이란.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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