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마음일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 적부터 나는 글을 통해서 내 마음을 전달하고 표현하고 생각을 적어 내려 가는 것을 좋아했다. 글이란 참 신기하다. 글을 적다 보면 내 생각도 정리가 되고 내가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었구나를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의 나를 이 글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을 통해서 내 퐁당거리는 마음이 타인에게 전달되기도 하고, 내 글을 통해서 누군가는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도 있고, 내 글을 통해서 누군가는 화가 날 수도 있고, 내 글을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이 될 수고 있다. 글이 가지는 힘이란 이렇다.
오늘은 내 글을 통해서 나 스스로의 내면아이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 글을 통해서 어쩌면 여러분들은 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되거라 믿는다. 간간히 내 가족들이며 나에 대해서 소개를 해서 얼추 아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오늘은 내 내면아이를 끌어안아주고 싶은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겁이 많다. 소위 말하는 겁보다. 걱정도 많다.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그나마 준비해 놓고 철저하게 대비해 놓는 스타일이다. 성격도 급한 것 같다. 미리미리 내 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승무원이 되어 일하는 이 순간에도 그렇다. 집에 돌아와 대충 짐을 다 정리하면, 나는 다음날 쉬는 날이면 미리 내일모레 갈 비행 준비를 다 해놓는다. 그냥 그게 편하다. 굳이 마감시간이 다가와 허겁지겁 일을 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차라리 나는 모든 일을 다 한 번에 미리 다 끝내놓고 나만의 자유시간을 여유롭게 가지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초등학생 때, 중학생 때 방학숙제가 주어지면 나는 일주일 안에 방학숙제를 모두 다 끝내놨다. 그러고서는 나머지 방학 때는 친구들과 놀거나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고 자유를 만끽했다. 오히려 내게 지정된 방학 숙제보다도 더 많은 양을 해가서 칭찬받을 생각에 기뻐하면서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릴 때부터 열심히였던 것 같다.
나는 겁보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가진 채로 결혼하셨다. 그러고 내가 태어날 당시에, 하필 산부인과 병원 전체에 전기가 다 나가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결국 엄마는 엄청난 두려움 속에,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켜준 촛불 속에서 나를 낳으셨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내게도 종종 말한다. 네가 겁보인 이유는 아마 네가 병원에 불이 나간 채로 촛불 켜고 태어나서 그런 것 같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가 느낀 두려움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던 것 같다. 나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이런 순간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겁이 많다.
나는 욕심쟁이다.
나는 형제가 많다. 저번에도 잠깐 소개했지만 나는 맏딸이자 장녀이고 밑으로 동생이 3명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 것에 대한 욕심이 많다. 꼭 이루고자 하는 것, 갖고자 하는 것은 절대 뺏기기가 싫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욕심은 다행히 할머니와 부모님의 가르침 속에 많이 사그라진 것 같다. 첫째로서 뭔가 나눠줘야 하고 동생들을 보살펴줘야 하고 그런 책임감이 욕심보다는 더 커졌던 시기가 바로 이때 아닌가 싶다. 예전에 엄마한테 들었는데,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 엄마랑 할머니랑 나랑 손잡고 기차 타고 여행 가는데, 내가 쓴 모자가 예뻤는지 어떤 모르는 아이가 예쁘다면서 모자를 만졌는데, 내가 딱 뒤돌더니 내 거니까 만지지 말라면서 그 아이의 뺨따귀를 갈겨버렸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내가 진짜?라고 하니 엄마랑 할머니도 정말 놀라서 그 아이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얼마나 사과했는지 모른다면서 나에게 그런 면모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하셨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내 행동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 거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이제야 내 거가 되었는데, 이제야 정을 붙이게 되었는데, 이 모든 걸 동생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니. 누군가한테 또 줘야 한다니. 그게 싫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근데 이 부분이 이제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라든지, 내가 꼭 갖고 싶다거나 해내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갖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즉 나는 남들의 시선을 매우 의식한다.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촌언니가 있다. 언니는 항상 내 새끼 하면서 나를 챙겨준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면서 잘 살아가는 나를 너무나도 예뻐해 주고 누구보다도 든든한 내 지원군이다. 그런 언니는 또래에 비해서 행복의 살이 조금 더 있었는데, 언니가 내 어릴 적 생일파티에 참석했을 때, 행복의 살이 좀 더 있을 뿐이었던 우리 언니를 보고 한 남자애가 학교 친구들에게 놀리면서 이래저래 떠들고 다녔다. 거기서 그러면 그만이지만, 나쁜 놈들이 나를 왕따를 시키려고 했었다.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남들보다 살집이 조금 더 있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어릴 때는 그냥 그게 이유가 되었었다. 점점 멀어졌었다. 친구들이. 그리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나를 은연중에 몰래 왕따 시키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때부터 나 자신을 꾸미고, 옷을 잘 입고 그러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나는 옷을 사고 예쁘게 치장하고 꾸미고 남들의 시선을 받는 걸 매우 좋아한다. 내 내면아이가 아마 너는 절대 살집이 있어서는 안 돼, 너는 항상 마르고 예뻐야 해라는 강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나는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학창 시절에 내가 공부를 잘해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은근히 친구들은 나를 멀리하려 했다. 그런 친구들에게 버림받기가 싫어서 나는 더 친구들에게 잘해주려고 했었다. 더 나눠주고, 더 챙겨가고, 나는 싫었지만 그 친구들이 해달라고 하면 싫다고 거절도 못하고 그냥 해주었다. 버림받기 싫었다. 어릴 적 둘째 동생이 아장아장 걸었을 때, 나도 모르게 동생을 밀쳤던 기억이 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뒤로 넘어진 동생을 보고 엄마 아빠는 놀라서 다가와서 나를 크게 다그쳤다. 나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무서웠다. 버림받을 거 같았다. 여전히 당시의 나는 아마 7살 정도였을 텐데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내 첫사랑의 군대를 기다려줬었다. 입대부터 전역까지. 그가 입대한 사이에 나는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했었다. 그렇게 기다렸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헌신하다가 버려진다고, 헌신짝 된다고 했지만 그냥 기다렸다. 내가 좋으니까. 그렇게 전역을 다 기다려주고 한 달 뒤에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가 카페에서 내게 이별을 통보했다. 너 재미없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도망치듯이 뛰어갔다. 집 가는 지하철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렇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버려졌었다. 이때부터인지 나는 버려지는 것이 더 두려워졌었다.
지금도 나 자신은, 나의 내면아이는 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 나는 내 내면아이를 감싸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더 안정적이게 되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나가는 대로. 내 내면아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내가 좀 더 성숙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장했듯이, 내 내면아이도 성장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내 내면아이에게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다면서 안아주고 싶다.
내면아이에게 끌어안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이제는 좀 더 행복해지자고. 이제는 더 행복해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 조금만 더 걱정을 내려놓고, 두려움을 내려놓고, 책임감을 내려놓자고.
지금보다도 더 자유롭게, 남들의 시선을 덜 의식하고, 너무 타인에게 잘해주려고 하지 말고, 너무 정 주지 말자고.
너무 최선을 다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고. 그래도 괜찮으니까, 너무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지 말자고 말이다.
조금만 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내 멋대로 살아도 되니까 우리 그렇게 지내보자고.
오늘 내 내면아이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서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