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직장일기
선후배의 관계가 매우 뚜렷한, 수직적인 환경에서 일을 시작한 나. 미술관에서의 근무를 제외하면, 여전히 나는 수직적인 업무 환경, 즉 시니어리티가 존재하는 서비스업종에서 몸을 담그고 있다. 나의 첫 직장일기인 호텔 관련한 글에, 마지막에 내가 왜 꿈꾸던 5성급 호텔에 입사를 했지만 얼마 못 가 퇴사를 했는지 이유를 들려드리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시니어리티'였다.
승준생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시니어리티와 관련해서 질문을 받은 적이 종종 있고, 또 기출문제로도 많이 봤을 것이다. 시니어리티와 관련해서 묻는다면, 곧 그 회사에는 그런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해서 행동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어쩌면 뻔한 단골 질문. 나 역시 시니어리티와 관련된 기출문제를 많이 접했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나는 내 생각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시니어리티는 그 회사에 대한 경험이 더 풍부한 사람이 가지는 책임감이라 생각하며, 나는 이를 필요로 하고 존중한다. 특히 그것이 안전과 직결되거나, 회사에서 배운 서비스 스탠더드를 지켜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말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시니어리티를 앞세워서 후배분들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상처를 주는 시니어리티는 절대 행해져서는 안 된다.'
고 말이다.
시니어리티는 그 회사에서 살아남아 더 오래 일을 했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부릴 수 있는 '권력'이 아니다. 내게 있어서 시니어리티란, 그 회사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고 경험이 더 풍부한 사람으로서, 내 후배들을 이끌어주되 그것을 올바른 길로 안내해 주는 하나의 '권한' 혹은 '책임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이끌어주는 건 좋지만, 업무적으로 선배로서 잘 모르고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다면, 과연 그 후배가 본인을 존중하고 의견을 따를 확률이 높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때문에 어쩌면, 시니어리티란 선배로서 가지는 막중한 책임감이라 생각한다.
우리 회사에 후배가 입사했다. 일하는 것을 보니 분명 회사에서 가르쳐 준 지침은 너나 나나 동일한데 이상하게 본인 멋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시니어리티는 필요하다. 서비스 스탠더드를 낮춤과 동시에 특히나 승무원의 경우, 안전도 책임져야 하는데 본인 멋대로 하다가 사달이 일어나면 어찌 되겠나. 이럴 경우 지켜보다가 선배로서 어느 정도의 시니어리티로서 말할 건 말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시니어리티랍시고, 매번 인사 똑바로 안 하냐, 어디 후배가 선배를 앞장서게 하냐, 본인이 먼저 와놓고서는 정각에 맞게 온 후배한테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하고, 몸이 아프다는데 너 그거 꾀병 아니냐, 부모님이 너 그렇게 가르쳤냐, 후배들이 선배의 커피를 챙겨줘야 하고, 같이 나란히 걷고 있는데 일부러 선배들 가운데에 껴서 걷게 만들고 불편하게 만들고... 절대 나에게 있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고 용납이 되지 않는 시니어리티다. 일과 관련되지 않는,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쓸데없이 부리는 행동이란, '시니어리티'라는 단어로 포장된 본인들의 성품과 인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은 말본새도 없는 정말 모자란 사람입니다, 나 이과 경험은 말 그대로 엉덩이구멍으로 먹었습니다라고 보여주는 격이다.
나는 위와 같은 시니어리티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그렇게 당했고, 그것을 똑같이 되갚아주려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본인은 그렇게 받았으니 내 후배들만큼은 그렇게 당하지 말라고 나부터 그 문화를 싹 자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 나는 굳이 내 후배들이 나와 일할 때만큼은 절대 스트레스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항상 편하게 대해달라고 말한다. 너무 어렵고 내가 선배라고 먼저 챙기거나 그러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내 성격 상 부담스러워하지만, 또 스트레스받지 않는 환경에서 일해야 능률도 올라가고 본인의 마음도 편하니까 실수할 것도 덜 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일하다 보면 알겠지만, 업계의 문이 매우 좁아 소문은 금방 퍼진다. 내가 한 행동은 고스란히 소리소문 없이 퍼지고 퍼져, 회사 내부는 물론 그 업계의 다른 회사에까지 퍼지게 된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내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입을 통해서 알려지게 된다. 시니어리티를 앞세운 본인의 어리석은 행동과 성품은 곧 본인이 다른 회사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도 초래함에 분명하다.
나는 알고 있다. 왜 이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더 넓은 본인의 재량을 뽐내고 성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는지, 아니 가지 못하는지 말이다. 다른 곳에 가면 본인들이 지금까지 해 온 시니어리티를 못 부리니깐. 다른 곳에 가기에 이미 그들의 못된 성품과 인격이 소문이 나버렸으니깐.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위의 이유들도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니어리티란, 어쩌면 본인의 인격과 성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하나의 겉포장 지라고 난 생각한다. 말로는 시니어리티로서, 너를 위해서 말한다고 하지만 그 내면은 지금까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회사 생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어떤 회사 생활을 살아왔는가? 과연 본인의 개인적인 감정을 끄집어내서 상대방에게 모진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나 역시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