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직장일기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외국항공사 승무원은 내 세 번째 직업이다. 내 첫 번째 직업은 강남에 위치한 대기업 계열사의 비즈니스호텔 프런트데스크였고, 두 번째 직업은 서울의 한 유명 미술관의 데스크 담당자였다. 첫 직업을 하기까지 알바와 다양한 활동들도 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대학생 도슨트, 웨딩어시스턴트, 초등학생 과외 등등. 나는 음식점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았는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보다는, 내게 사회적으로나 경험 상 타인에게 더 도움이 되고 특별한 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을 쌓던 중 나는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도 제일 먼저 취업을 한 사람이었다. 졸업 유예를 한 와중에 취업이 되었고, 그렇게 내 인생 첫 사회의 쓴 맛을 호텔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내 첫 회사에 덜컥 취업이 된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라호텔, 조선호텔, 롯데호텔 등등 유명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다 넣었다. 하지만 나이 때문인지, 나의 경험이 그들의 눈에는 차지 않았는지 잘 되지가 않았다. 그런 내게 한 관광경영 교수님께서는 작지만 비즈니스호텔부터 시작하면 거기서도 분명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에 추후에 큰 호텔에 갈 때 도움이 될 거라 조언해 주셨다. 이에 나는 비즈니스호텔부터 한 번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고, 나의 첫 직장에 운명처럼 합격했었다. 내 첫 직장에 면접을 보기 전에 이것저것 회사 조사도 하면서 손님처럼 방문했었다. 작지만 알찬 느낌에, 기존의 호텔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던 내 첫 직장을 보자마자 '아, 여기서 꼭 일하고 싶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프런트데스크 남자 직원! 여기서 일하게 되면 이분이 내 선배님이 되겠지 했는데, 실제로 이분이 바로 내 인생의 첫 직속 사회생활 선배님이다ㅎㅎ
지금도 내게 취업 후 가장 편한 인간관계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1순위로 호텔 사람들이라고 1초의 고민도 없이 말한다. 어떤 일이 생겼거나, 한번 얼굴 봐야죠라고 먼저 소식을 전하는 것도 호텔사람들이다.
선배들 사이에서는 막내로 함께했었고, 그만큼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았던 소중했던 순간들이었다. 사회란 이런 곳이구나, 호텔이란 이렇구나, 이게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방법이구나 등등 말이다.
야간 업무가 되면, 손님들도 오지 않는 새벽 3-4시경에는 서로의 퇴근을 기다리면서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대화를 나눴다. 낮보다는 여유로웠던 야간에는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야식 먹으면서 나누며,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술에 취해 오는 진상 손님의 욕을 함께 들어가면서 힘겹게 이겨 내 자고 하신 선배님들. 나의 실수를 본인의 사비로 커버치고 내가 상처받을까 봐 말도 안 해주고 조용히 눈감아주신, 여전히 감사하게 여기는 주임님. 술에 쥐에 엘리베이터에 토를 하면, 장갑 끼고 그거 치우겠다고 고군분투도 했었고, 객실에 물이 샌다면서 어떡하냐며 욕먹으며 컴플레인이란 컴플레인은 다 받았던 날들 등등.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마음이 여렸구나 했던 나만의 추억이 있는데, 근무한 지 얼마 되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오후 근무에 프런트로 전화가 와서 받았었다. 평소처럼 응대하는데, 세상에 전화기 너머에서 어떤 나이 든 아주머니의 거친 욕설과 함께 다다다 본인의 할 말을 쭉 하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생각하면서 죄송한데 어떤 일이었는지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말씀 좀 해달라고 했다. 내용인즉슨, 야놀자나 부킹닷컴처럼 OTA (Online Travel Agency)를 통해서 예약해 놓고서는 예약 취소 및 돈 관련해서 전화한 건데 그걸 우리 측에 디렉트로 전화해서 본인의 입장만 말한 것이었다. 이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초난감 했었다. 호텔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던 시절인지라,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전화기 너머에서는 이딴 것도 모르냐면서 따발따발 욕설을 퍼부으니 너무나도 힘들었다. 이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제가 온 지 얼마 안 돼서요라고 하면서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마침 나를 본 선배께서 무슨 일이냐면서 놀라서 대신 도와주시던 기억이 남는데 참... 아무것도 모르던 사회 초년생 시절의 내 모습이란.. 지금은 참 귀엽다 할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던지 모른다.
또 이전엔 직속선배와 술 한잔 기울이던 날, 선배의 기억에 가장 남는 내 모습을 말씀 주신 적이 있었다. 내가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고, 교대 인수인계를 위해 마침 선배가 딱 프런트로 올라왔는데, 택배가 미친 듯이 많이 쌓여서 이게 뭐예요?라고 내게 물어보니 내가 벌벌 벌 떨면서 저.. 저도 몰라요.. 라며 겁에 질려있던 모습이었단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은 많고 혼자서 내버려두게 되어서 참 미안하면서도 안쓰러웠던 내 모습이 선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었다.
지금에서야 오히려 혼자서 근무하면 '오예, 땡큐' 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며 유연하게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여유로움과 짬밥이 생겼고, 사회인 패치가 되어서 마음도 굉장히 강해졌는데 당시에는 정말 햇병아리, 아니 병아리도 아니지, 메추리였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만큼 많이 성장했던 거니깐 말이다.
당시에 이 호텔에서는 1년 정도 근무하다가 새로운 큰 호텔로 옮겼었다. 좀 더 큰 곳에서 일하고 싶던 나의 욕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는 얼마 일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일기에 풀어나가겠다.
당시에 더 큰 호텔을 가고 싶던 때에도,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호텔 인연들은 나를 반겨주고, 나를 응원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덧 나이가 차버린 30살의 나를 여전히 막내로 항상 반겨주고 예뻐해 주신다. 한번 막내는 영원한 막내로 봐주는 내 소중한 호텔 식구들에게 나는 언제나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을 끝까지 가지고 갈 것이다. 나이가 들고 세월히 흘러, 지금 생각해 보니 첫 직장에서의 삶이 참 어떻게 보면 쉬우면서도 어려웠고, 그래도 재밌게 일했구나 한다.
내게 인생의 첫 쓴 사회의 맛을 알게 해 주고, 더 단단하고 강한 나를 만들어주고, 소중한 경험과 추억, 인연을 맺게 해 준 나의 첫 직장!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