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직업, 미술관 데스크

EP. 직업일기

by 꼬마승무원

나의 두 번째 직업, 미술관 데스크. 비록 내 전공은 예술이 아니더라도, 나는 미술, 예술에 관심이 매우 많다.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내 어린 시절부터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내가 우리 아빠께 감사드리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우리 4남매를 키우는 데 힘드셨을 텐데, 그렇게 기다려오던 아빠의 주말이었을 텐데... 아빠는 주말마다 나와 내 동생들을 데리고 엄마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했었다. 용산 전쟁기념관, 어린이대공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예술의 전당 등등. 그런 아빠의 노력 덕분인지, 나는 커서도 혼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 사색에 잠기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어쩌면 내게 있어 미술관과 박물관에 간다는 것은,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다니던 내 어린 시절 나와의 조우이자 추억인 셈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호텔을 그만두고 내 다음 직장의 항로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호텔에 근무하면서, 항상 쉬는 날이면 미술관에 가는 것이 내 취미이자 힐링이었으니깐.

내 두 번째 직장인 미술관은 경복궁 근처 서울에 위치한 큰 사립 미술관이다. 회장님의 남다른 이중섭의 사랑, 이중섭뿐만 아닌 작품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일궈진 이 커다란 공간을 보고 굉장히 감명받았다.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문화재인 석파정. 다른 미술관에 비해서 사람들도 많이 방문하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한 굳이 데스크 업무뿐만이 아니라, 전시를 준비함에 있어서 미술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을 선정하며 손님들에게 보이는 지를 몸소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이 되어서 기회가 왔을 때 잡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면접을 보고 다음 날에 함께 일하자는 팀장님의 전화를 시작으로 그렇게 석파정 서울미술관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미술관에 근무하면서 새로운 전시들을 함께 다른 선생님들과 준비하고, 공짜로 보게 되는 근무 환경이 나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다. 관람을 위해 방문하는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것 역시 호텔보다는 조금 더 업무의 강도가 낮기도 했고, 혼자서 근무하다 보니 책임감은 있었지만, 할 만했었다. 그렇기에 3년이 넘는 시간을 한 자리에서 묵묵하게 일했던 것 같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이사장님, 팀장님, 실장님, 회장님 등등 모든 분들이 다 좋은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업무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석파정이 가을에 매우 예쁜데 혼자서 근무하다 보니 계속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서 목이 많이 상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다른 선생님들도 오셔서 도와주시긴 했지만, 메인인 내 업무는 내가 담당했어야 했기에 이 부분이 참 힘들었었다. 가끔은 너무 많이 말을 해서 일이 끝나면 목 안에서 피맛이 났던 적도 많았다.

이러한 힘든 점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내가 승무원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미술관에서 계속 일했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도 좋고 일하기 편한 환경이었으니깐 말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 신세를 내가 볶아서 이렇게 편하고 좋은 곳을 두고 떠돌아다니는구나. 하지만 아늑한 둥지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던 욕망이 컸기 때문에 지금은 후회보다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굳이 당시의 내 선택에 있어서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미술관에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승무원으로 날아오르는 소중한 시간들을 잘 활용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따라 가끔 드는 생각이, 정말 많이 노력해서 학예사 자격증도 도전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뭐, 공부와 도전에 있어서 나이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으니깐. 하지만 두렵다. 그렇게 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것 같아서다. 학예사도 결국은 경험이 중요한 직업이니깐. 예술과 미술에 대한 열망을 차라리 승무원인 지금의 입장에서는 해외 스테이션에서 미술관을 방문해서 작품들을 보는 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추후에 승무원일을 그만둔다면, 다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싶은 생각은 많다. 그때도 역시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종합한다면, 결국 데스크 담당자로 가는 것이 맞다고도 생각이 든다. 최근에 한 유명한 한방병원의 박물관에 VIP 의전 및 도슨트, 데스크 담당자로 입사 제의가 들어왔었다. 정말 순간 마음이 확 갔었지만, 지금의 상황에 맞춰 눈물의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 추후에 자리가 다시 생긴다면 그때는 꼭 지원하겠다며 제안에 감사드린다는 말도 전했다. 나의 경력과 경험을 좋게 봐주심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외국항공사승무원 다음의 내 행선지는 과연 어디가 될까? 취미생활을 되살려 다시 미술관에 가게 될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여전히 죽기 전까지 내 취미 생활 중에 하나는 바로 아빠 손을 꼭 붙잡고 여기저기 다니던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서 추억을 조우하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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