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비행 일기_이탈리아 로마 비행
FYI. 오늘 이야기는 2023년 10월 4일에 작성했던 일기이다.
10월의 첫 비행이었던 12시간 로마 장비행. 해당 비행은 은근히 받기가 어렵다던 비행 중에 하나였다. 10여 년은 일한 크루도 5년 만에 받은 비행이라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비행을 받기 전, 급하게 스탠바이로 인천 비행에 불렸었다. 때문에 본국에 새벽 6시에 도착해서는 24시간도 채 충분히 쉬지도 못한 채 새벽 12시 5분 리포팅이었던 이 로마 자비행의 극한 스케줄은 피곤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내 정신과 마찬가지로 매우 정신없었던 비행이었다. 아, 지금 일기를 쓰는 이 시점은 이 비행에 새벽 6시에 도착해서는 한숨 자고, 밥도 먹고 빨래는 돌리는 동안 적는 따끈따끈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 비행이 참 고될 수 있겠구나 했던 걸 알아차렸다. 그 이유는 브리핑룸에서 얼굴을 보자마자 느껴지는 부사무장의 포스. 딱 봐도 아... 저 여자 꽤나 일할 때 귀찮게 혹은 힘들게 하겠구나 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촉은 정답이었고. 함께 일한 모든 크루들이 다들 혀를 내두르고 짜증 난다고 말할 정도면 말 다 했다. 너무 우리를 아기 취급을 하고, 서비스가 나가기 전에 갤리 크루 (부엌 담당) 미리 세팅해 준 트레이들을 본인 멋대로 망쳐놓았다. 서비스가 나가기 전에 웬만하면 모든 크루들은 트레이와 밀을 한 번 더 체크하고 나간다. 하지만 해당 부사무장은 빨리 나가라고 재촉을 했었고, 결국 이런 재촉으로 인해서 내가 서빙해야 했던 존의 애피타이저가 트레이에 부족하게 실려서 서비스가 딜레이가 되느라 힘들었었다. 가끔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어떻게 해서 승진을 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상사들이 더러 있는데 이분이 아마 내게 이런 인상을 준 첫 상사가 아니었을는지. 하지만 그녀의 비행 경험과 경력은 감히 어떻게 내가 판단하고 무시하리. 그녀의 일에 있어서의 스타일과 지시는 존중하고 따랐지만,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심한 시어머니 고나리질 그. 자. 체였기 때문에 그녀를 뒤에서 미안하지만 열심히 욕을 하면서 함께한 우리 크루들은 어떻게 보면 그녀를 통해 하나로 뭉쳐 더 재미나게 놀고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이런 일 하는 환경에서 호주 할머니 승객이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내가 그녀의 기절을 처음으로 발견한 크루였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 그녀를 계속 눈여겨봤던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는 점심 서비스가 종료되고 승객들의 휴식을 위해 기내 조명이 다 꺼진 깜깜한 캐빈을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혼잣말로 중얼중얼거렸다. 마침 화장실 청소를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말소리가 들려서 보니, 할머니는 갑자기 본인 앞 줄에 앉은 사람들을 향해서 뭐라고 말을 했었다. 뭐지 하면서 다가가니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앉아만 있냐면서 엉뚱한 말을 내게 건네셨다. 그러면서 여기가 어디냐며 묻는 그녀에게 뒤에서 남편분이 데리러 오셨다. 알고 보니 치매기가 있으신 분이셨다. 해서 남편분과 함께 할머니를 할머니의 자리로 안내해 드렸다.
그러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콜벨이 눌렸다. 바로 가니, 아까 그 할머니의 남편분이 누르신 거였다. 물 한잔을 급하게 요청하는 할아버지의 말에 맞게 물을 준비해서 바로 건네드렸는데 이상하게 할머니가 물을 잘 못 삼키시는 것 같았다. 입도 안 벌린다. 앞에 앉은 다른 여자분이 아예 몸을 일으켜 뒤돌아 할머니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는데 할머니는 정신이 없었다.
큰일이다, 기절했다.
이건 심각한 상황이었기에, 마침 지나가는 크루에게 빨리 부사무장한테 기절한 승객 좌석 여기라고 와달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계속 주물렀다. 아직 그녀의 손에는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었다. 바로 부사무장이 달려왔었고, 나는 바로 산소통을 들고 오겠다고 말하고는, 산소통을 작동시켜 마스크를 할머니의 얼굴에 씌워 작동시켰다. 그 사이에 다른 크루들도 와서 조용히 빨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다행히 비즈니스 크루 중 한 명이 전직 산부인과 간호사 출신이었기에 그녀가 옆에 앉아 할머니의 이것저것을 체크했다. 그러면서 비상 의료 물품들을 가지고 그녀의 의식이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할머니의 몸은 덜덜 떨리더니 열이 40도까지 치솟았다.
일단 상사들이 옆에서 처리하는 동안, 너무 많은 크루들이 주변에 몰려있으면 주변의 승객들도 크게 동요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서는 나와 같은 사 번의 막내와 함께 다음 아침 서비스를 위한 준비들을 다른 크루들을 대신해서 다 하고는, 나머지 기내서비스를 응대했었다.
시간이 지나 다행히 할머니는 의식을 회복하셨다. 하지만 이미 약해진 몸이기에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되어 부사무장이 긴급 PA를 만들었다. 긴급 PA의 내용은 기내에 위급 의료 상황이 발생했으니, 의사이거나 본인이 승무원을 도울 수 있다면 바로 와서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기내에 2명의 의사가 탑승해 있었고, 한 여의사의 주도로 기내에 가지고 있던 주사와 링거 등의 모든 것들을 준비했다. 나는 옆에서 그들의 요구를 옆에서 열심히 발로 뛰며 도와주었다. 해당 비행에는 패싱 크루, 즉 승객으로 타는 크루들도 있었다. 패싱 크루 중에 사무장도 있었는데, 경험이 많은 그는 옆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기내에 갑자기 학생 무더기가 갤리로 오더니 본인들끼리 떠들고 난리였는데, 그가 와서 한 방에 정신없는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그는 또한 6시간이나 남은 비행동안 할머니에게 수혈되는 링거 용액을, 기내 옷걸이에 매달아 오버헤드빈에 마스킹테이프로 붙여 고정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도움과 더불어서 모든 일이 해결되고 나서는 할머니의 남편 분이 박수를 치셨고, 주변의 모든 승객들이 다들 박수를 쳐주는 아주 감동적인 (?) 일이 생겼었다. 할머니는 약도 드시고, 시간이 지나 잠에 드셨다. 그녀의 기절을 처음 발견한 나는 중간중간 열심히 그녀의 의식을 계속 체크하면서 자주 왔다 갔다 하며 일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이번 로마 비행. 모두가 침착하게 행동하고 나와 같은 막내들은 큰 일은 못했지만 할 수 있는 노력과 일을 했었다. 본국에 도착한 뒤, 의사들이 기내로 들어와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호주 시드니로 7시간을 더 여정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사들은 할머니의 건강이 우선이니 오늘 호주로 못 돌아갈 수도 있고, 바로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나와 남자 선임 승무원이 그들의 짐을 들어주며 함께 비행기 밖으로 걸어 나갔다. 다행히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는 손을 흔들면서 웃으셨다. 똑같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지만, 모든 것이 다 걱정이 되었다.
비행이 끝나고 모두가 고생했다면서 인사를 나누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얼굴이 녹초가 되었다. 그 어떤 비행보다 다이내믹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한 비행이 아니었나 싶다.
승무원 교육을 받으면서, 그리고 승무원이 되기 전부터 이런 응급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니 항상 잘 배우고 행동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로 비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경험을 하니 참 무섭기도 하고 얼떨떨하더라.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앞으로 내가 비행을 하는 삶에 있어서 이런 응급 상황은 제발.... 웬만하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더라는 마음을 가지면서 오늘 이렇게 다이내믹했던 날을 일기로 담아본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