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이지 않는 굳건함

EP. 준비일기_승무원의 자질

by 꼬마승무원

감사하게도 내 글에 대해 최근에 많은 관심과 더불어서 힘이 되는 응원의 말들을 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며칠 전에, 블로그 댓글로 승준생이 신 분께서 현직으로서 승무원이 되려면, 기본적인 체력이라든지 누구나 다 보편적으로 아는 자질 말고 어떤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봐주셨다. 사람들마다 다른 관점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거다. 이런 당연함을 기본 전제로 해놓고, 내가 생각하는 자질에 대해 전달드리면서, 관련해 이렇게 몇 개의 글들을 작성해 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 해서 여러분들과 함께 '승무원의 자질'에 대해 생각을 나눠보고자 한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 침대'라는 문구가 생각나는 오늘 글의 제목. 침대처럼 편안함은 아니지만, 장수 돌침대 같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가짐과 심지가 내가 생각하는 승무원의 자질 중에 하나이다. 내가 올린 글들 중에 'Let it go_외국인 크루로서 살아남는 멘털'과 '안녕하세요. 포커페이스의 달인입니다.'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승무원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나 외국항공사는 더더욱 그렇고.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과 동시에 그 사람들을 승무원들은 상대해야 한다. 승객뿐만이 아니다. 다른 문화와 생각을 가지고 온 다양한 회사 사람들을 그날 스케줄로 인해서 처음 얼굴을 본다. 서로 충분한 대화 없이 인사만 나누고는 알아가는 시간도 없이 바로 각자의 맡은 바에 맞춰 일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승무원으로서, 특히나 외국인으로서 승객이나 크루들은 내게 아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대한다.

첫째,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준다.

둘째,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고, 내가 뭐만 하면 태클 걸고 아니꼬워한다.

어떤 승객이나 크루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냥 좋아해 준다. 본인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거나, 한국에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실수를 해도 괜찮다고 해 주고 이것저것 챙겨주거나 그저 나는 내 평소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부풀려서 칭찬을 해준다. 이러면야 나야 감사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와 같은 태도이다. 어떤 승객이나 크루들은 그냥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 자체에서 싫어한다. 내 행동 하나에 태클을 걸고, 나를 짜증하게 만들고, 작은 것도 크게 더욱 잘못한 것처럼 부풀린다. 정말 억울하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실수를 하고 나보다 더 큰 일을 저질렀는데 어찌 왜 나만 더 실수가 크게 보이고 크게 혼나는 것 같지?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또 하나 말해줄까?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면서, 본인들의 언어를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본인들끼리 자국어로 말할 때 참 기분이 가끔은 더럽기도 하다. 눈치라는 게 있다면 안다. 아, 저거 내 얘기하는 거 같은데.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냥 본인들 언어를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고는 대놓고 앞담 까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경우는 중동항공사의 에미레이트처럼 전 세계 140여 개나 되는 국적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말 다했지.

내 친한 승무원 친구한테 들은 얘기 하나 말해주겠다. 아프리카 출신의 크루가 내 친구에게 유독 이것저것 뭐해달라며 부탁하길래 내 친구는 아무 말없이 도와줬다고 한다. 아마 아시안들은 부지런하고 뭐 해달라고 하면 다 해주는 호구라고 생각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서비스 도중에 승객이 커피를 요청했고, 친구가 그 아프리카 크루에게 커피 하나만 만들어서 승객 한다 달라고 말하니 그 크루는 배은망덕하게 내가 만들어주는 거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짜증 냈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내 친구가 서비스 끝난 뒤, 화가 나서 너는 내가 해준 거는 생각도 안 하고 말을 그렇게 하냐고 하니 갑자기 자기 몸이 안 좋다면서 파워 연기를 하더란다. 그래놓고서는 뒤에서 사무장한테는 고자질해서 내 친구가 마치 문제 있는 사람처럼 만들었단다. 정말 억울한 상황 아닌가? 이런 상황. 외항사에서는 아주 빈번하다.

이런 경우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 제일 중요하다. 그냥 나는 일하러 온 사람이니까. 서로가 개인적인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대하는 친구 같은 편안한 관계를 맺으러 내가 여기 온 건 아니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냥 그래, 그럴려니 하는 태도가 외국항공사승무원으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인이 너무나도 부당한 상황을 받는다면 그건 당당하게 이건 아니라면서 말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거 외에 그저 사사로운 짜증스러운 상황들에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응대하려면 나만 힘들다. 나만 지친다.

위와 같은 상황뿐만이 아니다. 기내에는 다양한 상황이 발생한다.

승객이 돌아가실 수도 있고, 기절해서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돼지고기를 먹겠다고 기내식을 받아가 놓고서는 갑자기 맘이 바뀌었다면서 소고기로 달라는 승객도 많다. 본인은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서 기내식으로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전용 음식을 신청했는데 받고 보니 맛이 없어 보이고, 이게 진짜로 당뇨병 환자들을 위한 건지 어떻게 확증이 되냐, 못 믿겠다고 말했었다. 그래놓고서는 나중에 일반 승객들을 위해 실린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보더니 자기도 아이스크림을 달랜다. 당뇨병 환자라서 단 거는 위험하지 않냐는 물음에 사실 자기는 당뇨병 환자는 아니고 그냥 식단만 그렇게 먹고 싶었을 뿐이라고 이실직고하는 미친놈 외국인 승객도 만났었다. 승객끼리 서로 의자를 젖히네 마네로 싸우면 나보고 해결하라고 어떻게 할 거냐면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했다. 본인이 원하는 기내식을 못 받는다고 대놓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다른 항공사랑 비교하면서 너네는 왜 그러냐 비아냥댔었다. 한 번은 요즘 회사 승무원들 왜 이렇게 못생겼냐, 회사가 미의 기준도 없이 마구잡이로 승무원들 뽑는 거 아니냐면서 (실제로 자주 있는 질문이다) 그런다. 이런 상황에서 동요해서 같이 화를 내고 작은 것 하나에도 곱씹는다면 나만 상처받고 나만 아픈 것이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뭐야, 이 신박한 미친놈새끼는'이라 생각하는 건 당연한데 그것이 표정과 말로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내에서 발생하는 상황 말고도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의 희로애락 역시 내 일에 가지고 오지 않는 굳건함도 필요하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이별을 해도 그걸 티 내면 안 된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 모든 직업들에게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이겠지만 나는 특히나 서비스직, 승무원, 외국항공사승무원에게는 꼭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전 세계의 신박한 또**들을 상대하는 직업 중에 하나가 외국항공사승무원이니깐. 며칠 전에 다녀온 호주 멜버른 비행에서 사무장이 막내에게 우리 회사 승무원이 되기 이전에 어떤 직업을 했냐고 물어보니 특수학생교사이라고 했었다. 그러고는 모두가 오~라고 하면서 참을성 하나는 대박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승무원들 중에 특수학생교사 출신이 엄청 많은데 그 이유는... 알겠지?

만약 당신이 그 어떤 풍파에도 부처 같은 마음을 가지고 견딜 수 있다면, 웰컴 투 월드클래스 캐빈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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