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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Sep 07. 2024

멍들고 찢기고 피 나는 것이 일상

EP. 직업일기

'어? **야. 너 어디서 또 부딪혔어? 너 다리에 멍 엄청나게 크게 났는데?'

'아, 또 카트에 부딪혔나 보다.' 

'어, **님. 손가락에서 피 흐르는데요?'

'에? 언제 다쳤대? 저 괜찮아요 ㅎㅎ'

 승무원이 되고 나서 다리와 무릎에 누렇고 시퍼렇게 뜨는 멍은 일상이 된 지 오래이다. 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깊게 파인 상처가 났었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손을 씻는데 기분 나쁘게 찌릿거리고 따가움에 절로 눈이 찌푸러져있었는데, 아마 정신없이 카트를 끌고 나가거나 하는데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이러는 건 일상이라, 굳이 밴드를 붙이기보다는 잠깐의 아픔을 참아가며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지금도 엄지손가락을 구부릴 때, 약간의 통증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갤리에 있는 Trash Compector (일정량의 쓰레기가 쌓이면 꾹 눌러서 부피를 줄이게 만든 기계)의 문을 열다가 잘못해서 손톱이 끼여 찢겨서 나도 모르게 '악'하고 크게 소리를 지른 기억이 있다. 그러고는 줄줄 흐르는 피. 다행히 크게 일을 못 할 정도의 고통은 안 났지만, 그럼에도 따가움이 컸다. 다른 크루들이 보면 또 걱정해서 달려들게 뻔해 그게 오히려 더 나는 부담스러워서 얼른 흐르는 피를 휴지로 닦아냈다. 하지만 소리 지르던 나를 봤던 부사무장은, 놀라서 괜찮냐면서 회사에다가 리포트할까? 내게 물어봤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일을 못 할 정도의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행이 끝난 뒤, 짐을 정리하고 노곤한 몸을 깨끗하게 위해 항상 가는 화장실. 목욕 전 항상 눈에 띄게 되는 건 몸 이곳저곳에 난 멍들 과 상처들이다. 그런 상처들과 멍을 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참 열심히도 일했다.'

라는 것. 당시에는 내가 멍이 든 지도 모르고 상처가 난 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비행이 끝나고 승무원인 내가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인 나로 돌아가기 위해 씻을 때 보이는 영광의 흔적들을 보면, 참 열심히도 최선을 다해서 일했구나 싶다. 그러면서도 조심히 일 좀 하지 뭘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르겠다고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는 건지 나 자신도 참 그렇다며 생각한다.  

 멍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무릎을 꿇고 카트 안에 음식을 찾아야 할 때, 손님이 떨어뜨린 안경이나 이어팟, 핸드폰을 찾아드리기 위해 무릎을 꿇은 채 열심히 바닥을 헤집고 다닐 때, 카트를 끌다가 부딪혔을 때, 기내 복도를 지나가다가 의자에 부딪힐 때 등등... 그런 멍이 든 무릎과 다리는 가끔 통증을 동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라지니 내겐 괜찮다. 


 가끔 크루들 보면, 정말 크게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사진을 보게 되는데, 그렇게 크게 다치지 않은 것으로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멍과 상처는 정말 새 발의 피인 수준. 기내 오븐에 크게 데여서 손목 부분에 큰 물집이 잡힌 사람들도 있었고, 옆으로 쓰러지는 카트 때문에 쏟아진 뜨거운 음식들과 음료들 때문에 다리와 팔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 카트를 끌다가 잘못 쓸려서 발뒤꿈치가 다 쓸려 피가 난 크루들 등등. 이렇게 크게 다치는 것 외에 나뿐만 아니라 모든 크루가 제일 최악 중의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다침이 있으니 그건 바로 허리 디스크와 척추를 다치는 것이다. 

 허리를 다친다라.. 정말 이건 당장 승무원 인생을 그만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추후의 내 인생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상황임에 분명하다. 이전에 한 친한 크루 분께 들었는데, 비행 중에 한 승객이 짐을 들어서 올려달라고 부탁해서 같이 들다가 너무 무거워서 순간 허리를 삐끗했다고 한다. 그러고 비행이 끝나고 집에 간 뒤, 다음날 못 일어날 수준이라 병가를 2일 냈다가 병원에 가니, 더 쉬어야 한다고 진단받아서 거의 5일을 쉬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기내에 실려야 하는 기내 무료 수하물의 kg는 정해져 있다. 하나 가끔 안 지키는 승객도 있고, 지상 직원분들도 바쁘니까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서 그냥 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안 지켜서 오는 승객들의 짐은 와... 이거 진짜 체감상 15kg 이상인데 싶은 경우가 많다. 기내에 짐을 승무원들이 올려줄 의무는 전혀 없다. 나의 경우에는 승객분이 도와달라고 하시거나 몸이 불편하시거나, 짐이 너무 많아 보이면 당연히 먼저 가서 도와준다. 그리고 웬만하면 짐 넣는 것을 도와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해주면 첫째, 승객도 '아, 이 크루가 나를 도와주려고 많이 노력하구나.'하고 추후에 내가 실수를 해도 좋게 봐주고 용서를 해 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고, 둘째, 빨리빨리 짐을 올리고 뒤에 계신 승객들도 안내한 뒤, 내가 맡은 다음 일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도와주려다가 진짜 무거운 경우나, 나 혼자 너무 하는 거 같다 싶으면 승객한테 웃으면서 '우리 같이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한다. 가끔가다 나도 짐 도와주다가 허리가 지끈거리는 경우도 가끔 겪었다.

 승무원들이 짐을 들어주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는 기내 안전요원으로서 우리가 짐을 들어주다가 허리를 다치거나 하면, 추후에 비상 상황 시에 탈출을 도와야 할 인원이 부족해지면서 인명 피해가 늘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항상 크루들도 너 허리 항상 지키라고 말을 하고, 너 자신을 지켜야 승객도 지킬 수 있다면서 당부한다.  

 다행히 지금까지 크게 허리를 다치거나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다친 적은 없다. 하지만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맞다. 사람의 인생이란, 일분일초도 가늠이 안되니깐 말이다. 내가 다친다고 해서 누가 내 아픔을 대신해 줄 수도 없고 말이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며 느끼지만, 돈도 중요하지만 건강이 0순위임을 느끼는 요즘이다. 건강이 망가지면 돈 벌려다가 돈이 오히려 더 낭비되고 벌어들이지 못하니깐. 아, 이 직업을 하면서 건강의 소중함은 내가 더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멍이 들고, 살점이 나가 피가 나 따가움과 아픔이 찾아와도 나는 괜찮다. 오히려 이런 작은 상처들을, 나는 오늘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함이자 몸이 부서져라 승객들과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영광의 상처라 생각하려고 한다. 응 맞아. 이번에도 잘 살아남았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지난날의 고생이자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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