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승무원 Sep 27. 2024

팔은 안으로 굽고, 뿌리는 깊다

EP. 비행일기

외국항공사 승무원이 된 후, 내 지인들이며 간혹 사람들이 간혹 내게 묻는다.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승무원이 됐으면서, 왜 굳이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한국은 알겠지만, 외국보다 일하기 힘들고 요즘 말에 따라 헬 조선이라니까. 차라리 나는 외국에서 일하는 네가 부럽다. 그게 그렇게 힘들어?" 

 나도 사람들이 어떤 의미로 내게 말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함께 꿈을 향해 달려가며 눈물 콧물 함께 쏟고, 위로와 공감을 나누던 인연들에겐 위의 말들이 나를 향한  "안타까움"의 감정이고, 이외의 모든 인연들의 시선에선, "부러움"과 동시에 "이해불가"의 감정이 많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처음에 외항사 승무원이 되고 나서, 정말 외항사 승무원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단점처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다른 직업들보다 많고, 다들 기회가 되면 국내 항공사로 이직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사실일까 궁금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현직이 되니 그 말이 정말 사실임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물론,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정말 몇십 년을 해외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지내는 승무원들도 굉장히 많다. 개인적으로 그분들을 정말로 존경한다. 

 인천 비행 혹은 휴가를 마친 뒤, 일을 위해 돌아오는 순간. '덜컥' 문고리를 돌리면 느껴지는 이제는 익숙해지고 친숙하지만 느껴지는 이방인으로서의 감정. 내 인생에 있어 따뜻하고 복잡스러운 친숙한 가족들과 친구들의 온기가 아닌 것들에서 간간이 올라오는 향수병. 그리고 나이는 먹어가는 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과연 오래 살아남아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나서 오는 불안감. 이런 것들 외에도 나 스스로 한국을 정말 사랑하고,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임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나의 매 비행마다 한국인 승객들을 뵐 수는 없지만, 간혹 '이 비행에 탑승하신다고?'라고 생각되는 노선의 비행에 간혹 뵐 수 있다. 그리고 가끔 몇몇 상사들은 내게 넌지시 말해준다. 오늘 한국인 승객 몇 분이 탑승해 있다고. 그렇게 인천 비행이든 다른 비행이든, 한국 사람만 보면 나도 모르게 오지랖이 튀어나온다. '반가움'에서 나오는 오지랖인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고, 뿌리는 깊다.'라는 오늘의 제목처럼, 나의 반가운 오지랖은 한국인 승무원으로서, 다른 승객들보다도 먼저 챙기게 되고, 더 활짝 웃게 되고, 더 살갑게 구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었다. 다른 외국인 승객들은 어쩌다가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한국인 승객분들께는 편하게 장난도 먼저 많이 걸면서 다가가는 나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인 승무원 ***입니다. 오늘 가족끼리 여행 가시는 걸까요? 아 그러시구나. 부럽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 건네기 전까지 한국인인 줄 모르셨죠? 한국인처럼 안 생겼죠? 하하. 그런 말 참 많이 들어서 익숙합니다. 식사는 어떠셨나요? 혹시 더 필요하신 것 없으실까요?"

"안녕하세요. 쉬시는 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간식 좀 드려도 될까요? 제가 특별히 선생님을 위해서 다른 크루들 몰래 챙겨 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간식을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같은 한국인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드리는 거니 편하게 받아주세요. 음료나 다른 거 뭐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그렇다. 한국인 승객들을 더 사랑하고 챙기는 나 자신.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매 비행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인가 보다고 느끼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게 만난 승객들을 나는 마지막 기내를 착륙 준비하는 데에서도 끝까지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알뜰하게 살폈다. 그리고 인사를 나눌 때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언젠가 또 뵙겠다고 한국말로 반갑게 그들의 안녕을 빌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에는 마음이 따듯해지면서도 씁쓸했다. 그분들뿐만 아니라 이 비행을 무사히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반가운 얼굴을 봤다가 헤어져 내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원래 사람이 해외로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도 한국에서 일도 해보고, 진상 손님들도 만나봤다. 내 면전에 쌍시옷 비읍을 똑바르게 발음하며 욕을 했던 사람도 있었고, 고래고래 목청이 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던 사람도 응대해 봤다. 그럴 때마다 앞에서는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숨기고 뒤에서는 남들 몰래 속상해하고, 내가 뭔 죽을죄를 지었냐며 사람들이 밉다고 엉엉 울어버리던 지난날이 있었다. 한창 승무원을 준비하던 시절에 겪었던 일들이라 빨리 이 미운 한국, 지겨운 한국, 못된 한국 손님들과 사람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당시에는 외국인들이 더 낫겠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니, 결국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다 같은 인간인지라 좋은 사람은 좋고, 나쁜 사람은 나쁘더라. 진상은 어딜 가나 진상이고, 못된 사람들은 인종 가릴 것 없이 못된 천성을 가지고 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저 문화 차이와 더불어 각자 개개인이 살아온 환경에서 오는 차이임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다시 한국에 아예 정착해서 돌아가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미운 감정보다는 더 유연하고 넓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일할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아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역시 인간이란... 사람이 싫다."라고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 


 그런 미래를 맞닥뜨리기 이전에 열심히 비행을 하는 지금 이 순간, 나와 만나는 모든 한국 승객분들에게, 그들 여정의 연결 다리로서 행복한 기억만을 전달하고 싶다. 그렇다. 나는, 팔은 안으로 굽고 뿌리는 깊은 항상 김치를 원하는 외국인 노동자, 한국인 승무원이다. :)   

 

작가의 이전글 나는 참 부족한 점이 많은 크루이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