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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Oct 29. 2024

인생은 아무도 몰라. 내가 널 이렇게 만난 것처럼 말이

EP. 인생일기

오랜만에 글을 쓴다. 바쁘게 살아온 10월 초의 비행들을 마치고 9일간의 휴가를 다녀왔다. 11월과 12월에 안타깝게도 인천 비행이 없어서 바리바리 음식을 챙겨 올 겸 가족들이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여 한국에 다녀왔다. 행복했지만 그 어느 휴가보다도 아쉬웠던 올해 마지막 휴가를 뒤로하고, 이틀 전만 해도 한국에 있었던 나는 지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그러고 나는 내일 비행을 떠난다.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미국 뉴욕으로 간다. 미국 뉴욕은 또 처음인지라 설레는 맘 반, 또 비행을 떠나려니 벌써부터 피곤함에 아득함이 반이다. 

 어제 아침에 도착한 나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는 깊은 잠에 빠졌었다. 얼마나 깊었냐면, 중간중간에 잠깐 일어나긴 했지만, 총 15시간 동안 잠에 취했었다. 정말 하루종일 잠만 잤다. 아마 한국에서 돌아오는데 비행기 안에서 불편하게 잤던 피로감과 동시에 바로 그 당일 밤에 독일로 오는 비행까지 하느라 몸이 많이 노곤했었나 보다. 잠에 취한 어제를 뒤로하고, 내일도 비행 때문에 체력을 아끼자 했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혼자 광장에 나가 산책 겸 식사를 위해 열심히 꾸미고 나갔다. 

 아기자기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뢰머 광장을 산책하면서 구경을 다 마칠 때쯤, 급하게 호텔에서 나가기 전에 찾은 맛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독일에 오면 슈바인학센을 꼭 먹는 편인데,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음식점이라 해서 점심 겸 저녁 식사를 위해 간 식당. 역시 제대로 된 번지수의 맛집이라 안에는 손님들도 자리가 꽉 찼다. 식당 종업원이 몇 명이냐길래 독일어로 한 명이라 대답했더니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종업원은 바로 내 뒤에 기다리던 백인 남자에게 일행이 있냐 물어봤고, 그 역시 혼자 왔고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한 뒤 자리를 뜬 종업원을 뒤로한 채, 백인 남성은 내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의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사람이며, 사실 외국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일하는 국가와 이곳에서 있다가 내일은 뉴욕으로 떠난다는 말을 하던 중, 테이블 하나 자리가 났다. 종업원은 우리에게 원한다면 합석도 할 수 있다길래, 우리는 함께 웃으며 말했다.

                                              "Good! Why not?" (좋아요. 안될 것 없죠?) 

그렇게 즉석에서 합석을 하게 된 우리는 악수를 하며 이름도 말하면서 음식을 주문한 뒤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사실 테이블을 기다리면서 그가 내가 승무원인 걸 안 뒤에 이곳에 어떤 비행기 기종으로 왔는지 물어봤었다. 비행기 기종을 묻는 사람들은 극히 드문데, 알고 보니 해외에서 비행기 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15kg나 되는 배낭을 하나 메고 잠시 여행 중이었다. 고향은 스페인 발렌시아이며, 아일랜드에는 10년 이상을 살았고 오늘 밤에 루프트한자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호주 퍼스로 갈 예정이었다. 아일랜드에서 일한 비행기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인정받아 호주 퍼스의 젯스타 엔지니어로 잡오퍼가 들어와 가는 것이라 했다. 식당에서 갑작스럽게 만난 인연인데 이렇게 비행기라는 공통점이 있는 사람이라니, 참으로 신기했다. 퍼스에는 안타깝게도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기에 가보고 싶다는 나의 열띤 호기심에 그는 사진첩을 꺼내 하나하나 사진을 보여주었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재미나게 대화를 하는 사이에 우리가 각자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그렇게 한국은 어떤 지부 터해서 인생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나의 승무원 삶에 참 흥미가 많았고 특히나 내가 인터뷰를 한국에서가 아닌, 해외 오픈데이로 나가 합격했다는 걸 듣고서는 대단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나는 내가 어릴 적에 비행기 엔지니어로 일할 거라는 생각도 못했어. 그리고 호주 퍼스에서 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 너도 네가 어릴 적엔 승무원이 되어 지금 일하는 나라에서 살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몰랐을 거야. 그렇지? 인생은 참 놀라워. 그리고 아무도 모르지. 그래서 더 재밌는 거고." 

그런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계획을 잘하지 않아.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려고 해. 그렇게 인생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면 예상치 못한 행운들을 만날 수 있어. 마치 내가 너를 이곳에서 만나서 이렇게 식사까지 하게 된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이런 행운과 자연스러운 인생의 흐름 뒤에는 도전이라는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내가 호주에 살게 된 인생의 흐름에는 이직이라는 도전이 있었고, 네가 승무원이 되어 살겠다는 결심과 도전이 있었기에 지금의 네 인생의 흐름이 있는 거고." 

그의 말에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가 호주에서 살게 되면서 누리는 삶의 소소한 행복들에 대해서 그의 친구들은 그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그저 누구나 누리는 평범한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 그는 나를 부러워하면서 왜 당장 내일이라도 새로운 인생의 흐름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작은 것부터 알아가 보고 도전해 보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인생에 대한 도전이며 그 흐름이 시작되는 것인데라고 말이다. 그러고 그는 말했다. 네 주변인들 역시 네가 겪는 승무원의 삶에 대해 사람들은 부러워할 거라고. 결국 너와 네 주변사람들의 차이에 대해 말하자면 너는 승무원이 되기 위한 도전을 당장 마음먹은 다음 날부터라도 실천을 해 꾸준히 밀어붙였을 것임을. 그리고 그런 나의 도전과 마음가짐이 결국 새로운 인생을 만들었고 그것이 너와 내가 이렇게 독일에서 우연히 만나 식사를 하는 행복한 우연과 경험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 따지고 보면 내가 오늘 광장에 나와 바람을 쐬고 밥을 먹으러 가겠다는 마음가짐조차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 도전이 외국인 이방인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는 경험을 선물해 줬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그 도전의 흐름 속에 수만 가지의 감정들이 나에게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면 모든 순간이 다 내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슬픈 행운이자 행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연함 속에 따듯함이 느껴지는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나와 그는 짧은 포옹과 사진과 함께 서로의 안녕을 뒤로하고는 헤어졌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인생은 모른다. 이번에 만난 그를 내가 호주에 가게 되면 만나게 될지도? 그의 안전한 호주로의 여행을 빌며 오늘 마주친 우연함 속의 행운을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승무원이 되고 나서 내가 겪는 이 사소한 삶의 순간들이 참 재밌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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