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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나리 Dec 30. 2021

거울 사이

오늘따라 집이 따뜻해서 그랬다 치자

어제 먹은 치킨이 더부룩해서 그랬다 치자

거울 속 삐쭉 나온 옆머리가 신경 쓰여 그랬다 치자

바람이 너무 쎄서 그랬다 치자

예정된 시간보다 버스가 안 와서 그랬다 치자

버스 옆자리 여자의 향수가 너무 진해서 그랬다 치자


왜 이리 이것저것이 자꾸 겹쳐 보이고

지랄일까


내 나이 25살에

울 할매 입술이 바짝 말라 돌아가셨을 때

호상이라고 웃던 내 모습


귤껍질 다 까 흰 껍질까지 벗기고선

껍질이 딱딱해지게 모아놓고

먹기 싫다던 손주 혀놓고

얼릉 먹어야 팔아픈께

하시던 울 할매


사춘기 시절 야구 빠따로

책상을 뽀개버렸던 나와

숨죽여 슬퍼하셨던 아빠


비틀거리며 뱉어내던 내 폭언에

꼭 붙들고 울었던 가족들


빚 많은 삶인 것 같다

빗줄기가 그리 내렸던 걸 보면

많이도 아프게 했다

안개가 그리 껴서 보지 못했는지

일부러 그랬던 건지


낚시할 때 밀물과 썰물은

그리 이뻐보이더만

맘속에 들었다 나간 것은

눈앞을 아른거린다


졸업식날 받았던 꽃다발  안고 서서

사진 속 웃고 있는 모습은 박되고

꺾이는 그 순간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 그리 기로웠나


나는 과연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살갑게 다가가는 의지는 희미해지고

차가운 본능만이 남곤 하듯이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에만 쓰는 것은 아닌가 보다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 것은 어쩌다 여름이 선선해서 눈이 녹지 않았고 그러다 햇빛을 조금 많이 반사하게 됐고 겨울은 조금 더 추워지다가 모든 생물이 얼어붙은 빙하기가 찾아왔다는 이야기


우연찮게 어쩌다

그랬다 치자


참 빨리 무너졌고

이리도 빨리 무뎌졌다

뻔뻔하게 나만 생각하고

무뎌지며 견뎌냈던가


그날따라 날이 좋았고

그날따라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쭉 뻗어있고

웬일인지 몸이 가벼웠고 발검음은 상쾌했다


그냥 오래오래 보고 살아야지

사람 사는 곳에서

좋은 사람 있는 곳에서

때때론 마음도 저 멀리 날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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