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꿈으로 만난 인연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도 없고 영어 면접 정도는 볼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어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둘째는 소리틱이 점 점 심해져 돌아와야 하는 시간보다 좀 더 일찍 오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 놓고 빨래를 돌리고 살림을 하다 친정 엄마와 통화를 잠깐 할 수 있었다.
엄마가 오늘 정말 좋은 꿈을 꾸었다며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주 중요한 순간마다 엄마가 꿈을 꿔준 덕분에 잘 풀리는 경우가 많았던지라 어떤 좋을 일이 생길까 내심 기대했다.
전화를 끊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어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둘째 틱이 심해 오늘은 집에 일찍 가야 할 것 같아 데리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주차할 곳이 없으면 안 되는데 걱정하며 도착했지만 다행히 딱 한 자리가 남아 있어 얼른 주차하고 어학원에 갔다. 소심해진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도 소리틱이 멈추지 않아 계속 나왔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힘들어했다.
집으로 빨리 가려고 주차해 놓은 곳에 도착한 순간~ 에미레티 남자분이 서 있었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그런데 내가 나가는 거면 내가 주차해도 되겠냐고 해서~~ 그럼 내가 3시간 정도 주차비도 이미 지불했으니 쓰라고 했다. (나와 에미레티 자동차 번호가 달라 내가 주차비를 지불했다고 해도 다른 차가 오면 다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주변 다른 차가 끼어들어오려고 할 때도 나의 오지랖으로 내 친구가 먼저 주차하기로 했으니 안된다고 말했다.
내가 차를 빼기 전 한국사람은 처음이라며 한국인을 봐서 너무 좋다고 하고 나도 에미레티와는 처음으로 인사해 본다라고 하며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날 저녁이 되어 왓츠앱으로 연락이 왔고 가족들 간 줌으로 서로 인사를 하였다. 처음 보는 낯선 이었지만 어떤 용기가 났는지 아이들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그분들도 우리 아이들과 같은 나이의 아들 둘이 있었다. 학교 입학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자 학교 소개가 가능하다고 해 우선 우리 힘으로 해보겠다고 하고 인사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우리 집에 초대해 한국음식(양념치킨, 김밥 등)을 대접했고 아이들도 서로 금세 친해졌다. 나와 에미레티분의 아내도 친해져서 두바이에 살면서 필요한 소소한 정보들을 물어볼 수 있었다. 둘째 아이가 학교 입학의 어려움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직접 학교에 찾아가 상황을 설명해 줘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여러 학교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부당함도 호소할 수 있게 교육부 담당공무원과의 미팅자리도 만들어 줬다.
아랍 가족들은 부모님과의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가족들과의 모임도 많고, 특별한 날이 되면 2~30명 되는 가족이 가장 큰집에 살고 있는 집에 함께 모여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된다.
에미레티 가족들은 정말 검소했고, 배려심이 많았고, 우리나라와 같은 '정' 문화가 있었다. 우린 서로 우리는 가족이잖아 라며 서로를 든든히 생각했다. 좋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거나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지냈다.
심심하다고 생각될 때쯤 서로 연락이 오갔다. 우리 집에 와~~ 차 한잔 하자가 인사가 되어버린^^
우리는 에미레티 가족들 덕분에 퍼블릭 비치의 핫스폿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에미레티 남편이 직접 만들어주는 햄버거와 여러 음식들을 먹어볼 수 있었다.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레스토랑에 가 축하해 주었고, 라마단과 같은 특별한 기간에는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 초대해 줘 해가 진 이후에 함께 먹는 식사도 함께 해 볼 수 있었다.
아내분이 외국인이라 종교가 달라도 서로 존중해주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는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선물 교환을 하고 지인들을 초대해 소소한 파티를 열고 함께 즐겼다. 종종 집에서 바비큐 열 때마다 불러주었다.
에미레티 가족들에게는 '헤르메스'라는 강아지가 있다. 가족들끼리 친해져서 교류가 있을 때쯤 가족들이 해외에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겨 거의 3주 정도 우리 집에 와 있게 되었다. 며칠간 밥도 안 먹고 식음을 전패하더니 매일매일 가까워지다 급기야 우리 가족도 주인인 줄 안다. 그래서 가족들이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할 경우 우리 집에서 지내길 반복, 우리 첫째는 매번 자기 침대에 눕혀 놓고 같이 자고 산책하고 아들이 3 명인 줄 알았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결정되고 나와 아이들만 두바이에 남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답을 주었다. 우선 한국에 가있다 두바이 면접을 보거나 두바이에 올 일이 생기면 자기 집에 와서 머무르면 되니 일부 짐을 두고 가라고 했다. 두바이 물가가 정말 비싼 걸 알고 있으니까.
그 제안을 받은 날 남편과 나는 정말 우리 엄마 꿈 덕분에 그 찰나 같은 순간에 우리가 좋은 이웃을 만났구나.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우리의 대화는 종종 이어진다. 왓츠앱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크고 있다. 우리 둘째는 학교 잘 적응하냐 등등. 여전히 든든한 이웃이자 우리의 든든한 두바이 가족이다.
* 에미레티 :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