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있을까?
둘째가 학교에 가기 전 거의 1년 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어려웠던 것 같다. 아이와 어디에 가고 싶어도 그때까지 아는 곳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 대부분의 시간을 둘째와 집안에서 보냈다.
한국에서 일하며 알게 된 분이 두바이에서 일하는 변호사님을 소개해줬고 그 이후에 그분이 그분의 지인의 지인인 한국인 가족을 소개해줘서 영어와 수학 과외는 어떤 좋은 선생님이 있는지, 한국 엄마들의 카톡방의 존재도 알게 되었고 점차 혼자가 아닌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려웠던 시간~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시간은 매일이다시피 한국의 엄마, 동생들과 전화 통화 시간이었다. 전화로 충분하지 않으면 줌으로 얼굴을 보며 여러 안부를 물으면서 마음도 차분해지고 용기도 얻었다. 그래~ 천천히 생각하자~ 그때는 이렇게 전화 통화를 하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화를 할 때마다 언제 올 거냐 물어보는 게 쌓이며 엄마, 여동생 두 명, 5살 남자 조카, 9살 여자 조카는 둘째가 학교 시작하자마자 이틀이 지난 1월에 두바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꿈같은 두 달의 시간을 보냈다. 두바이, 아부다비를 여행하고~ 우리 가족 포함 9명이 이집트 룩소르 여행을 7일간 다녀왔다.
이번 편은 두바이, 아부다비에서의 일상을, 두 번째 편에서는 이집트 룩소르 여행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엄마와 동생, 조카들이 공항에 도착한다는 시간~ 다른 한국인들은 다 내렸는데~ 30분 정도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거의 마지막으로 우르르 나오는 엄마와 동생 그리고 조카들, 그들이 들고 온 어마어마한 짐에 깜짝 놀랐다. 엄마는 두바이로 오기 며칠 동안 생선을 넣은 육수를 만들어 김치 양념을 만들고 냉동까지 했다. 오리고기, 핫도그, 한국생선, 여러 반찬, 약 등 여러 가지로 많이 들고 왔다. 공항에서 이렇게 늦게 나온 이유도 냉동식품으로 보낸 상자가 일반 짐칸이 아닌 냉동식품만 나오는 창구가 따로 있던 것을 몰라 짐을 찾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시간도 배로 걸린 거였다.
두바이 공항에는 '마르하바'라는 서비스가 있다. 인 당 일정 비용을 내면 비행기 내릴 때 직원이 나와있고 버기를 타고 공항게이트까지 가서 페스트트랙으로 나갈 수 있고, 짐도 알아서 들어서 타는 차까지 실어준다.
그 서비스를 받았어야 하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후회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엄마, 동생과 조카들을 무사히 만나 두바이 우리 집으로 갔다. 아이들에게 미리 설명하고 안방에는 우리 가족이 같이 쓰고, 방 두 개는 엄마와 동생이 방을 나누어 쓰기로 했다. 아이들은 바닥에서 자야 하는 상황에 툴툴거렸지만 가족이 온 거니 이 정도의 배려는 필요하다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고맙게도 두 달 간 잘 참아 주었다.
그 당시 평일에는 아이들 학교 픽업으로 자유롭지 못해 오전에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주말에 멀리 외출하는 방법으로 여행을 다녔다.
두바이 동물원을 시작으로 인터내셔널 시티에서 터키음식을 거하게 먹고, 야채시장도 가보고, 사막 한복판에 있는 러브 공원에 가서는 호수 주변에 돗자리를 펴놓고 포장해 간 음식도 먹고 오는 길에 만난 사막에 인생샷을 찍겠다고 우리 모두가 뛰어다녔다.
아부다비 궁전과 가장 유명한 모스크에도 가고 이슬람 전통음식도 먹고, 또 에미레이트 친구 집에 가서 서로 인사도 나누었다. 사막투어를 가서 낮에는 사막에서 사륜구동 차를 타고 사막 언덕을 오르내리는 듄도 하고 사막모래 언덕에서 깔개 같은 것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해보고, 밤이 되어서는 아랍 공연도 보고 전통 아랍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평일에는 아침 일찍 캠핑 의자와 돗자리만 챙겨 버즈알아랍이라는 세계 7성급 호텔 앞 비치에 가서 보내다 첫째를 픽업해 오기도 하고 두바이 몰에 가서 너무나 비싼 물건들만 판다고 구경만 실컷 하고 오기도 했다.
매일 까르푸에 온라인으로 수박, 망고, 마들렌은 단골 메뉴였다. 9명의 식구가 먹고살았으니 매일매일이 식당을 연 것처럼 부지런하게 음식을 준비했다. 그 와중에 아침 5시에 일어나 첫째, 둘째 도시락을 싸야 하는 건 덤이었다.
둘째가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가족들이 온 거라 저녁 6시만 되면 예민한 시간이 왔다. 수학숙제 시간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두 동생은 조카들을 데리고 집 앞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너무 미안했지만 또 일상은 살아가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뒀어도 별반 다를 바 없었겠다 생각되지만 그땐 둘째가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게 아주 큰 목표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평일 오전에 또 다른 일상은 두 동생과 두 조카들은 주택 근처에 있는 커뮤니티 야외 수영장에 가는 일이었다.
두바이에서 1~2월은 가장 시원한 기간으로 보통 한국의 봄 날씨다. 23~28도 정도로 아침과 저녁은 쌀쌀하다. 오전에 수영장에 가면 가끔 춥기도 했지만 따듯한 물을 틀어줘서 너무 좋다고 했다. 동생들은 가드들과 친해져서 이야기도 하고, 수영장에 온 다른 가족들과 친해져 같이 물놀이고 하고 왔다. 두 달 정도 거의 규칙적으로 수영을 하면서 체력도 너무 좋아졌다고 했다.
동생 왈 비치 의자에 앉아 있으면 수영장, 풍성한 나무와 파란 하늘 그리고 봄바람 같은 바람이 부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고 했다. 나는 1년을 살았으면서도 거의 수영장에 다녀본 적이 없는데 동생들은 혜택들을 톡톡히 잘 이용하고 있었다. 지금도 두 바이 하면 그 수영장의 기억이 가장 난다고 한다.
여자 조카는 둘째가 배우는 영국원어민 선생님께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한국 아이들의 영어를 책임져 왔던 분이라서 그런지 조카도 수업 시간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이 영어 수업 덕분에 지금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고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 다들 쉬러 두바이에 왔는데 조카 2명을 돌봐야 하는데 많이 시간이 들었다. 내가 그때 좀 더 두바이 생활을 잘 알았으면 영어 생활권 내니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을 텐데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두 조카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엄마가 두바이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힘이 되었다. 엄마가 가드너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아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매번 아~~ 영어를 못하니 너무 답답하다 하셨는데 내가 한국에 돌아온 지금 엄마는 동주민센터에서 하는 영어 강좌를 열심히 듣고 있다. 내가 다시 한국을 나가게 되어 그곳에 다시 놀러가게 된다면 그땐 대화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
둘째 조카는 첫째 아들 학교에 픽업 갈 때마다 동생 쉬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겸 매일 데리고 다녔다. 그 당시 첫째가 찰리푸스 팝송에 푹 빠져 있었는데 5살 조카도 그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드는지 픽업을 가기 시작함 바로 "이모~ 찰리푸스 노래 틀어줘" 라고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 중 슈퍼맨 간나라고 알아듣고 킥킥거리며 따라 불렀다. 찰리푸스에게 5살 꼬마팬이 생긴거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한참 따라 부르던 찰리푸스 노래 이야기하면 부끄럽다고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다. 이제 좀 컷다고^^
우리 가족들에겐 이 시간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언제 두바이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낼꺼라 생각이라도 해봤을까?
다음 편은 9명이 저가항공 위즈에어를 타고 룩소르에서 일주일을 보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