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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생활기) 가드너와 내니

우리가족에겐 고마운 가드너와 내니

by 일일시호일

두바이에서 빌라(한국의 단독 주택이나 타운하우스)에서 산다는 건 마당이 있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대부분 가드너가 마당을 관리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가 빌라로 이사 오기 전 집주인은 가드너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며 좋은 가드너를 소개해준다고 해서 만나기로 했다. 하얀색 전통 아랍옷을 입고 왔었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인사를 하고 우리 집의 정원을 일주일에 3~5번 와서 물을 주기도 하고 잔디도 깎고 식물도 심어줄 수 있다고 했다. 한 달에 300 디르함(그 당시 한국 돈으로 약 10만 원 정도)을 요청했지만 주변 가드너 평균이 200 디르함 이하였던 것을 알고 있었던 차라 솔직하게 나는 200(약 7만 원) 디르함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을 하니 좋아!! 기분 좋게 딜이 끝났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연결되었다.


우리 집 가드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스프링스 빌라단지 이외에도 두바이에서 부촌으로 유명한 팜주메이라, 아라비안렌치 II 등 빌라 단지로 유명한 곳은 무리를 지어 관리를 하고 있었다.

가드너들은 대부분 파키스탄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가족들은 파키스탄에 있고 아빠들이 친척 등 여러 명이 함께 들어와 가드너 회사에 취업해서 수수료를 주고, 관리할 빌라를 선점한 후 돌아가면서 함께 일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았다.

몇 달간은 처음 계약했던 가드너가 왔으나 몇 달이 지나니 사촌동생, 또 다른 사촌, 삼촌 등 등 친척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특히 잔디를 자를 때는 어떤 사람은 기계로 잔디를 자르고 어떤 사람은 물을 주고 여러 명이 합동으로 마당을 관리해 줬다.


내가 한 달에 200 디르함을 주는데 이 많은 분들이 와서 이렇게 일을 하면 어떻게 살지? 가드너는 아랍어는 했지만 영어는 하지 못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마다 가드너 휴대폰에 영어로 메시지를 남기면 가드너는 인터넷으로 해석한 후 나에게 답을 남겨주었다. 어느 날 가드너는 자기는 초등학교만 나와서 영어를 잘 못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파키스탄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자기처럼 안 살게 하려고 여기서 일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두바이에는 교육을 받지 못한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많다. 자국에서는 평균 월급이 50만 원 이하에 일자리가 거의 없어 고학력자도 해외로 많이 나가는 추세인걸 알았다. 두바이에서는 다양한 일을 하는 파키스탄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집 가드너는 의리가 있었다. 어떤 부탁을 해도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한 번은 가족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아부다비 공항까지 택시로 가야 했는데 새벽시간이라 드라이버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비용도 많이 들어 우리 차를 운전 해서 공항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올 때도 픽업을 나올 수 있는 드라이버가 필요하다는 상황을 설명했더니 본인은 어렵고 친척 동생이 가능하다고 하여 소개를 받았다. 덕분에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사 온 후 초기에는 블라인드 설치, 변기 고장 등 소소하게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큰 도움을 줬고 우리도 가드너와 주변 사람들에게 적절한 비용을 추가로 주었다. 해외에서 살다 보면 이렇게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된다. 우리 가족은 운이 좋게도 좋은 가드너를 만나 사는 내내 주택 관리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는 남자들은 가드너라면 여자들은 내니라는 일을 많이 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내니는 집에서 함께 사는 형태와 출퇴근하는 형태, 출장 형태로 나뉘어 있다. 이 부분은 필리핀, 아프리카 여러 국가, 스리랑카 등의 여자분들이 많이 가지는 직업 중의 하나이다.


평균 4시간에 약 100 디르함(한국돈으로 35000원에서 40000원 사이)을 받고 집 전체를 청소해 준다. 사실 나는 우리 집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집안일을 하다 한국에 돌아오기 한 달 전 한 분을 소개받았다. 일주에 한번 4시간 청소 후에는 너무나 달라진 우리 집을 만날 수 있었다. 아 이런 천국도 있었구나.


두바이에서 맞벌이하는 유럽 가족들은 내니들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도 봐주고 살림도 살고, 동네 산책을 갈 때면 내니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높은 인건비와 눈치보기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이곳에서는 정말 쉽게 내니들과 함께 살며 많은 도움을 받고 산다. 심지어 인건비가 높지도 않다.

여행 중 비행기 안에서 가끔 신기한 광경을 볼 때도 있다. 아이들과 내니가 함께 앉아있고, 떨어진 좌석에 아이들의 부모가 앉아 있다. 호텔에서는 짐까지 들고 따라다니는 경우를 볼 때도 있었다.

아이를 맡기는 이 커플은 내니들의 고마움을 알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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