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좋은 수필

울음으로 완성되는 공감의 장(場)

- 황혜란 <진혼굿>을 읽고

by 한혜경


“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내가 신을 나 몰라라 하면 혹시 애들이 잘못될까,

그러면서 전전긍긍 살았어.”

황혜란의 <진혼굿>은 이 선득한 고백으로 글을 연다.

모두 여섯 문장으로 이뤄진 연화보살의 말은 소설에서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으로 종종 활용되는 내적 독백이다.

황혜란은 이를 수필에 도입하여 연화보살의 독백을 전면에 배치,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본문은 3인칭 소설처럼 “그녀는”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십삼 년 전 추석 전날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이 음산한 문장은 현재 작은집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에 과거 어린 아들의 죽음이 오버랩되었음을 암시한다.


집안의 비명횡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자살했고, 아버지는 일찍 생을 마쳤으며, 큰오빠와 막내 남동생도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이처럼 집안 남자들에게 내려오는 ‘뿌리 깊게 틀어박힌 죽음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무당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다.

그러니 그녀의 진혼굿은 ‘그런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 마음과 몸’을 담아낸 안간힘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굿을 할 수밖에 없는 사연과 준비과정을 세세히 서술한 후, ‘나’는 자신이 연화보살의 딸임을 밝힌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묘사 위주의 앞부분에서 ‘나’는 숨은 서술자로 기능하다가, 후반부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에 따라 초여름 깊은 산속에서의 굿의 정경이 극 장면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굿의 클라이맥스는 연화보살이 “갑자기 굵은 목소리로” 말하는 장면이다. 친구 강권으로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탔다가 사고 난 것이라며, “너무 미안해. 엄마.”라고 말하는 그녀 앞에서 작은엄마와 아빠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이 운다.

끝으로 ‘나’에게 다가와 “누나, 나 이제 갈게.” 인사를 건넸을 때, ‘나’ 역시 울음이 터진다.


이로써 그동안 ‘떠나가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어떤 행동도 죽은 이와 소통이라는 생각’이 없던 ‘나’는 변화한다.

서술자이면서 엄마와 다른 캐릭터를 표상했던 ‘나’는 “애들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면서 “빌고 또 빌”던 엄마와 달리, 굿의 장면이 “생경하기만” 했던 자이다.


이제 엄마의 비통함에 한층 가까워짐으로써, 죽음과 굿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파악해 왔던 것에서 벗어난다. “무엇이든 해야만” 견딜 수 있고 ‘뒤늦은 후회’와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인간의 무력함과 연약함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주 깊게 소리 내어 울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우두커니 서” 있던 관찰자가 공감자로 변화하는 지점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 데일리한국 <평론가가 뽑은 좋은수필> 2024. 12.9. 게재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15726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라는 존재를 기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