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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좋은 수필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여정

- 임승주의 <꽉>을 읽고

by 한혜경

삶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좋은 문학은 이 질문을 토대로 구축된 건축물이다.

이 물음은 독자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다가 내면 깊숙한 곳에 똬리를 튼다.

그리고 때때로 솟아올라, 카프카의 표현을 빌면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깬다.


임승주의 <꽉>은 인생을 상자와 산 오르기에 비유하여, 소유에 대한 집착과 이른바 ‘정상(頂上)’에 대한 사유를 풀어낸 글이다.

상자를 축으로 한 이야기에서는 집착에 거리 두기까지의 도정을, 산의 이야기에서는 정상에 오르지 않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삶의 방식을 성찰하게 한다.


어린 시절, 인형 놀이보다 딱지치기를 좋아해 ‘여왕벌’로 군림했던 작가와 달리, “어쩐지 심약한” 동생은 번번이 딱지를 잃고 울며 돌아왔다.

그런 동생에게 딱지를 주면 울음을 그쳤으므로, 어린 마음에 딱지는 ‘만병통치약’이자 ‘보물’이었다.

내복이 담겼던 빈 상자에 딱지를 가득 채우면, 이 무용했던 ‘곽’은 보물을 보관한 ‘금고’인 ‘꽉’으로 격상한다. 동시에 ‘꽉’은 힘주어 움켜잡는 태도와 꽉꽉 채우려는 욕구를 상징한다.


그때는 “왠지 재수가 좋”아 쉽게 딱지로 채웠지만, 어른이 되어 꽉을 채우기는 쉽지 않다.

‘세상은 잘난 사람이 넘쳐나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므로.

그리고 ‘꽉을 절로 채워줄 행운 같은 것’은 없었고, 꽉을 “쥐면 쥘수록 구겨져 갔고 공간은 줄어 들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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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꽉에서는 ‘땀과 피 냄새’가 나며, 삶이란 ‘벌판 위 외로운 싸움’ 임을 알게 된 뒤,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 바람이 불고 불안이 묻은 시간을 지나며 자신이 ‘허약한 존재’ 임을 깨닫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얼마나 많을까?


적성에 맞지 않던 첫 직장을 그만둔 후 매번 출발선에 다시 서는 중인 동생을 보며, 작가는 정상에 오르는 대신, 산 아래에서 느긋하게 둘레길을 돌며 살아가는 삶도 있음을 터득한다.

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희열만큼 산 아래서 올려다본 경험도 의미가 있으며, 사람마다 “목표지점과 체력과 감상 취향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이제 갱년을 이야기하는 나이에 이르러 작가는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을 본다.

‘여유와 너그러움’이 깃들지 못했던 연유를 파악한다.

이제 꽉에서 거리를 둘 수 있고 꽉을 채우는 것은 세상의 것만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채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에서, 독자 역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하여 꽉은 더 이상 욕망과 집착의 상징이 아니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꽉은 ‘생에 대한 애착’이며 ‘삶을 지탱할 기둥’이었고 그래서 ‘달콤하고 유쾌한 것’이기도 했음이 보인다.

이처럼 꽉의 양면을 헤아리게 되었으니, 꽉을 놓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미 자유로운데...


*** 데일리한국 2025.1.13. 게재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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