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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좋은 수필

눈꺼풀을 들어 올리다

by 한혜경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내 곁에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내가 좋아하고 있는지.

어쩌다 생각나면 비판적으로 대했다.

때로는 무시하기도 했다.



깨달음은 문득, 조짐 없이, 슬그머니 온다. 어느 순간 눈을 떴더니 환한 빛이 가득한 것처럼.


신문 포털에 수필 평을 연재 중이라, 좋은 수필이 없나 늘 여러 수필 잡지를 훑어보곤 한다.

몇 달 전, 인상적인 글을 발견해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그 작가분이 뜻밖의 이야기를 적어 보냈다.


20여 년 전이니 상당히 오래전 일이다.

그때 그분이 우리 대학에 특별전형으로 지원했는데 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걸어 아쉽다고 하면서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학교로 나를 찾아와 만났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인데, 그 만남 때 내가 열심히 쓰라고 하며 다음 해에 또 지원하라고 했다 고 한다.

당시 그는 매우 힘든 중에 있었는데, 내 말에 힘을 얻어 이후 방송통신대학에 갔고 수필 전문지에 등단하여 계속 수필을 써오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싹 잊었을까.

신기할 정도로 나의 기억엔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이후 그가 글을 쓰면서 치유가 되었다고 하니 고맙고 흐뭇했다. 그때 내 격려로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는 말에 얼떨떨한 중에도 뿌듯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약속을 잡았다.

해후한 자리에서 그분은 또 한 번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그때 아주 열정적으로 수필에 대해 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굉장히 수필을 사랑한다고 짐작했다고 했다.


아니, 제가요? 그땐 수필을 가볍게 여기고 있었을 텐데...


나의 반문에 그분은 아니에요, 아주 열정을 갖고 계셨어요, 라고 답했다.

계속 갸우뚱하며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했더니, 그분이 아주 현명하게 정리를 해주셨다.


겉으로 어땠을지 몰라도 내심으로는 수필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어머니라고. 어머니가 수필가이니, 엄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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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머릿속에서 댕~ 종소리가 울린 것 같았다.


아니, 이리 오랜 시간이 지나서 깨닫게 되는 이치라니.

잘 알고 있던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내 기억 속에 존재하지도 않던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을 족집게처럼 콕 집어 꺼내 주다니.


의식적으로는 수필이 소설에 비해 길이도 짧고 상대적으로 단순한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복잡 미묘한 삶의 기미를 깊이 있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여겼는데, 무의식에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요즘 수필을 읽으며, 짧은 분량에 스며있는 혜안과 통찰에 감동하곤 하는 것이 그 연장선 위에서 이루어진 것인가?

또 그렇다면, 수필은 그때부터 늘 내 곁에 있었는데 일부러 눈을 감은 것인가?

수필을 엄마의 영역이라고 여기고 짐짓 무심한 척했던 것일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을 곱씹어 보는데, 저 아래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천천히 차오르는 것 같았다.

오래도록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며 사랑을 보내온 존재를 뒤늦게 깨우친 것처럼, 잠시 그 찰랑이는 따뜻한 물결 속에 나를 맡기고 있었다.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엄마의 그늘 아래 서 있기 싫어서 멀리하려 했구나,

엄마가 사랑하셨던 수필을 나도 사랑해 왔는데 모르는 척했구나. 감겨 있던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다.


젊은 날, 한국소설에서 우리 사회의 그늘과 은폐된 진실, 평탄하게 보이는 삶 이면에 도사린 뒤틀림을 마주하고 전율했듯이, 이제 수필에 표현된 다양한 삶의 양상과 사유를 접하며 새로운 자극을 얻는다.

스쳐 지나갈 법한 작은 것들에도 귀 기울이는 섬세함, 자연의 현상에서 찾아낸 비의(秘義), 기쁨과 슬픔의 순간을 비롯하여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사색의 편린을 접하며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수필을 쓰면서 나와 다른 삶과 이면의 현상을 계속 탐색하게 되니, 수필은 세상과 인생의 곡절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젠 안다. 수필이 오래전부터 내 곁에 있었음을.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었는데, 짐짓 모른 척했음을.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릴 준비가 되었다.

저기, 환하게 비치는 빛이 보인다.



*** <에세이 21> 25 여름호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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