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장면들 (2)

<그린에세이> 2026 3,4월호 게재

by 한혜경


‘연인’이란 말에서 떠오르는 그림은 어떤 것인가?


봄날의 아지랑이를 닮은 듯 하늘하늘 연한 파스텔 톤을 배경으로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

연인의 어깨에 기대어 살포시 미소 짓는 모습?


권여선의 소설 <봄밤>은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는 화사한 연인의 이미지에서 가장 거리가 먼 커플을 보여준다.


알코올 중독자 영경과 류머티즘 환자 수환.


이 두 질병은 이들이 거쳐온 시간이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영경은 국어교사로 20년을 재직한 후 마흔셋에 퇴직했다.

서른둘에 결혼했으나 1년 반 만에 이혼했다. 비교적 평탄했다고 할 수 있던 영경의 삶은 이혼 후 급변한다.

전남편이 그녀 모르게 돌을 앞두고 있던 아들을 데리고 이민을 가버린 것이다.

이후 영경은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 알코올에 의존한 삶이 시작된다.


수환은 스무 살에 쇳일을 시작해 10년 넘게 쇠 다루는 모든 기술을 익혔다.

서른셋에 친구와 작은 규모의 철공소를 차려 돈을 벌기도 했으나, 거래처의 횡포로 부도를 맞는다.

설상가상으로 위장이혼을 제안한 아내는 이혼하자마자 자기 명의로 변경된 집과 재산을 모조리 팔아 잠적한다.

서른아홉에 신용불량자가 된 그는 변변한 돈벌이를 할 수 없어 겨우 생계를 유지하면서 “언제든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검처럼 지니고 살았다.”


이런 두 사람은 친구의 재혼식에서 만나 가까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산다.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서로의 삶을 알아봤던 것이다.

그런데 “행운”은 이들의 병증까지 약화시키진 못한다.

신용불량자이므로 건강보험증을 만들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수환의 증상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요양원에 입주한다.

그 사이 영경의 알코올중독도 심해져 같은 요양원에 들어간다.


요양원에서 “알류 커플”로 불리는 이들은 병증이 심각하지만 사랑은 식지 않는다.

특히 수환은 영경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어, 의사와 영경 언니의 태도와 대조된다.

알코올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통제된 상태에서 치료해야 한다는 의사, 영경이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을 한심하게만 바라보며 “산다는 게 참 끔찍하다”며 타인처럼 말하는 큰언니는 진정으로 영경이 원하는 것에는 관심 없다.

자신이 몸담아온 관습적 사고에 의존할 뿐이다.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비하하는 것이라고 한 수전 손택의 말처럼, 알코올중독을 병으로 보지 않는 타인의 시선은 영경을 심하게 위축시킨다.

구토와 불면, 경련과 섬망 증상에 시달리다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우면 외출해서 술을 마셔야 하는 영경을 수환만이 공감하는 것이다.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 그녀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도, 영경이 마음 편하게 외출할 수 있도록 “독한 주사”까지 맞으며 “멀쩡한 척”을 한다.

곧 상대가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결국 수환은 영경이 돌아오기 전 세상을 뜨고 영경은 의식불명의 상태로 앰뷸런스에 실려 온다.

알코올성 치매가 온 영경은 수환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 계속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요양원 사람들은 그런 영경을 보며 그녀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헤아린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가혹한 상황에도 “울고불고”하지 않고 의연히 고통을 견디는 연인을 만난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를 최우선으로 존중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임을 보여주면서,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심보선, <‘나’라는 말>) 내려가지 않게 막아주는 것은 이런 사랑임을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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