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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Aug 20. 2023

추억의 사진 한 장

하얀 발바닥 


몇 해 전 일기  



오늘도 내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그중 잊고 싶지 않은 정경에 스마트폰 카메라 버튼을 누른다. 

때론 그냥 마음속에만 간직해두고 싶기도 하지만, 내 기억력을 믿을 수 없어 한 장의 사진으로 담는다. 


그렇게 찍힌 사진은 객관적 풍경화나 인물화가 아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도 그 사진을 찍었을 때의 날씨, 분위기, 느낌들이 피어오른다.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사진 속 웅장하게 밀려오는 파도는 단지 멋진 파도가 아니고, 푸르른 숲 역시 피톤치드 가득한 청량한 숲 이상이며, 사진마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 싱긋 웃음을 베어 물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 사진도 단순한 인물화가 아니다. 


그날 함께한 이들과의 시간, 웃음소리, 하늘과 숲을 보며 떠올렸던 생각들이 풍경과 인물 주위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니까. 그때 주변의 냄새들도.






아이들의 사진은 그 자체로 가족 역사다.

뱃속 초음파 사진부터 갓 태어났을 때, 백일과 돌잔치, 유치원과 학교 입학과 졸업, 소풍, 여행, 모든 순간들이 아이들의 성장과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보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여러 사진 중 유독 좋아하는 사진이 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거실 바닥에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이다. 

딸애가 일곱 살, 아들애가 네 살 때이다. 거실 창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제각기 좋아하는 인형을 가슴에 안고 함빡 웃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발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 때 묻지 않은 하얀 발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그 하얀 발바닥이 순수한 시절의 상징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어린다.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결핍감과는 거리가 먼 시절, 갈등이란 게 기껏 남매 사이의 실랑이 정도이고 속임수나 배반에 대해 잘 모를 때, 낙오의 슬픔이나 열패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어느새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이제 30대에 들어선 아이들은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나가는 중이다.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한 일들 앞에서 분노와 부조리함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과 다른 일들에 직면하면 당혹해하기도 한다. 

하얗고 말랑하던 발바닥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현실이란 늘 웃을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선의만 존재하지 않는 복잡한 세상에 한 발을 내딛는 것, 

순수함만으로 살아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바른길을 찾아가며 자신의 뜻을 펼치며 나아가는 것이기도 함을 알게 되는 것.



하얀 발바닥에 흙먼지가 묻어도 털어내고 지혜롭고도 꿋꿋하게 걸어 나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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