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기 어느 날의 단상
코로나 19 때문에 차량이 줄어 출퇴근길이 여유롭던 어느 날의 단상
나만의 느낌인지 모르지만, 차량이 줄기도 했지만 자동차들 속도도 느려졌다.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운전하고 있으면 잠깐이지만 평화롭기까지 하다.
라디오에서 [상록수]가 흘러나온다.
마침 거리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 잎들이 어느새 연녹색으로 반짝이고 있는 것에 눈길을 보내던 차.
노랫말은 곧바로 나를 저 멀리 넓은 들판에 푸른 잎들을 매달고 서있는 나무 곁으로 데려간다.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꿋꿋한 나무.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에 가사는 마음을 울린다.
“깨치고 나아가” 한껏 고양된 음은 “끝내 이기리라”에서 장중한 대단원으로 막을 내린다.
순간, 뭉클하면서 눈물이 핑 돌고 괜히 다짐까지 한다.
"맞아, 힘들지만 이겨내야지, 이겨낼 거야", 뭐 그런.
그러다가 이어서 다른 상념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요즘 이런 마음을 간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들이 번지면서 방금 전 나이 잊은 순수한(?) 소녀는 사라진다.
소나무가 언제까지 푸르게 서있을 수 있을까? 비바람에 눈보라도 치는데...
가진 것 적어도 손 맞잡고 눈물 흘리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서럽고 쓰린 날들이 지나간 게 아니라 또 다른 쓰라림이 기다릴 텐데, 끝내 이긴다는 것이 가능할까?
다짐에 그치고 만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시위가담까진 못해도 시대의 아픔에 공감했던 우리 젊은 날.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도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는 대의에 의문을 품는 친구는 많지 않았다.
수업을 빼먹고 미팅에 나가고 고고장에 가서 놀면서도 시위 소식엔 귀를 쫑긋하고, 나만 편히 지내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같은 걸 지니고 있었다.
개인의 안위보다 사회정의를 앞세우는 사람들은 존경의 대상이었고, 수많은 시련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이기리라는 그들의 의지는 숭고해 보였다.
우리 앞의 거대한 산을 넘으면 고난은 끝나리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문득, 백수린의 [여름의 정오]에서 인용한 시몬느 드 보봐르의 말이 떠올랐다.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노인이 된 보봐르가 답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독일군이 퇴각한 파리 해방의 날을 꼽는다.
길가에 모여든 군중들의 환호성소리가 드높이 울렸고, 삼색기가 나부끼는 시내를 사르트르와 하루종일 걸어 다녔다고 회상한다.
그 무엇도 그날의 열기를 멈출 수 없었던 그때, 그녀는 미래와 희망이 그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해방 날처럼 기쁨에 넘쳐 서로들 얼싸안고 덩실 춤도 췄을 그들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생의 정점에 대한 아름다운 회상이었다.
그런데, 그 뒤 이어지는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건드렸다.
“알제리 전쟁이 일어날 거라곤 짐작도 못하던 시절이었죠.”
목표지점에 도달해 이젠 다 이루었다고 안도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음을 겪은 노년의 소회,
자유와 평화를 얻었다고 기뻐했는데 또 다른 전쟁을 목도해야 했던 이의 토로가 주는 울림은 묵직했다.
우리 역시 민주화를 이루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여겼지만 새로운 난제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이번 고비만 넘기면 살만해지나 싶었지만 또 다른 산등성이가 눈앞을 가로막는 것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이제 우리는 좋고 나쁨을 명확히 가르기 어려워진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은 젊은 날 그토록 굳건히 견지했던 소신이 바뀌기도 하고, 늘 정의로울 것 같던 사람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고도성장이 멈추면서 청년층의 삶이 암울해지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시대에 “가진 것 비록 적어도” “끝내 이기리라”란 말은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이 아니라 공허하고 무책임한 말이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신호등이 바뀐다. 어지럽게 번지던 상념을 걷고 서서히 액셀을 밟는다.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살아있고, 살아있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무력해 보여도 “끝내 이기리라”는 다짐도 때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다짐으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