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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Sep 25. 2023

착한 여자 콤플렉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위해 



어릴 때 ‘서울깍쟁이’란 말을 이따금 들었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로 들려 그때마다 ‘그게 아닌데……’

내심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성적이고 붙임성이 없는 편이라 낯선 사람과 금방 친해지거나 쉽게 말 붙이는 것이 어려웠고 책 보는 것을 좋아해서 상대적으로 말을 덜 했기 때문이지 깍쟁이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말없이 있으면 화난 것으로 보였는지, 아버지 친구분이 “왜 그렇게 가만히 있어? 화났니?”라고 물었던 적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집에 찾아온 친구에게 왜 왔냐고 물어서 엄마가 걱정하기도 했다. 


학기 초라 이름도 서로 잘 모를 때인데 우리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가 놀라웠고 친하지 않은 친구인데 왜 찾아왔는지 정말 궁금해서 물었던 것인데,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이 당혹스러웠나 보다.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고민했다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말씀하셨다.



좀 까탈스럽고 신경질이 많았던 것은 기억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상황극처럼 반 전원이 역할을 나누어 은행 업무를 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일처리를 잘 못하는 친구에게 신경질을 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이해타산이 늦고 약삭빠르지 못해 어수룩한 쪽인데 새침해 보이는 인상 때문에 손해를 본 편이랄까. 


어쨌든 깍쟁이가 아닌데 깍쟁이 소리를 듣는 것이 억울해서 그 소리를 덜 들으려 노력했다. 

그 덕인지 중고시절엔 모범생 친구로부터 이른바 노는 친구들까지 다양한 성향의 아이들과 두루 잘 지냈고 조금씩 외향적으로 변해갔다.





그러더니 어느 시점부터인가 착하다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남자친구가 "무엇보다 착해서 좋다"라는 말을 했고 남자친구 어머니로부터 "착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기에 이르렀다. 


착하다는 말이 예쁘지 않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여하튼 당시는 퍽 기뻤다.


'아니, 나 착한 걸 어떻게 알았지?' 하는 놀라움과 ‘아, 알아보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고마운 마음이 뒤섞여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착하다는 평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어느 때부터인가 착하다는 말이 더 이상 반갑지 않았다. 


이거 바보라는 소리 아닌가, 아니면 똑똑하지 않다는 소린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착하다는 얘기보다 똑똑하다는 말이 더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더 나아가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이나 선배와 후배들, 동료 교수들, 학생들, 심지어 가게 주인, 택시 기사들로부터도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화를 낼 만한 상황에서 화를 내지 못하고 따져야 하는 것들도 잘 따지지 못하는 데다 부탁을 딱 부러지게 거절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쓸데없는 홍보 전화임이 분명한데도 바로 끊지 못하고 어느 시점에서 거부의사를 밝혀야 하는지 고민하곤 한다. (쓰다 보니 바보 같긴 하다.)


직장에서 의견 충돌을 겪었을 때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것도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존재하고 나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도 착한 여자로 인정받으려는 마음 때문에 내가 나쁘게 보이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도 시간은 흘러 이제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 어느 정도 할 말을 다 하고, 착한 사람으로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나이를 먹은 덕분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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