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혜경 Sep 22. 2023

카프카를 읽는 밤

잠들기 어려웠던  어느 밤의 일기  



사위가 조용합니다.


한 밤에 이렇게 고즈넉이 깨어 있기도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 이어서인가 한밤중에 간혹 잠이 깨곤 합니다. 

금방 눈을 뜨는 건 아니에요. 다시 잠이 들기를 기다려 보다가 정 안되면 할 수 없이 눈을 뜨지요.


이불속에서 어둑한 방안을 응시하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폭주족 오토바이들이 돌진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보통 때 같으면 혀를 찼겠지만, 오늘은 그들의 외로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무엇이 갈급해서 저토록 속력을 내어 달려야 할까요? 

단순히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서만은 아닐 거 같아요. 


꽉 짜인 일과를 기계적으로 좇아가다 보면, 순간 내가 누구인지 망연해질 때가 있지요. 

공허한 마음을 저렇게라도 해서 잊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렇게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네 생의 팍팍함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으니 그만큼 공허함도 커지겠지요. 

다른 무엇보다 물질로 그 허기를 메우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 금융위기도 끝없이 물욕을 부추기는 물질만능주의가 일조를 해 일어났다고 볼 수 있겠지요. 

어느 정도 벌었으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벌고 싶은 욕망에 너도 나도 편승한 결과 빚어진 거 아닐까요?


언젠가부터 재테크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펀드니 주식 투자니 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리더니 펀드나 주식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가 된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지요. 


그 위세는 정말 대단했어요. 대세에 휩쓸리는 것을 싫어하고 주식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저와 같은 사람도 그 흐름에 관심을 가졌으니까요.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재테크열풍이 불면서 나만 가진 게 없는 건 아닌지, 

모두들 돈을 벌고 있는데 나만 뒤처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고개를 들었던 거죠. 


얼마 안 되는 돈을 쪼개어 펀드에 넣으면서, 그 수익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인지, 정당한 수익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어요. 

정말로 당시 은행이자보다 높은 수익이 붙는 것을 보며 흐뭇해했을 뿐이지요.


일해서 번 것만이 정당한 대가이고 펀드나 주식투자 같은 불로소득은 옳지 않다던 당신의 말은 허공을 향해 소리치는 것처럼 들렸습니 다. 


불법도 아닌데 큰 수익이 생기는 일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싶었고, 앉은자리에서 몇 배 몇십 배 돈을 버는 상황에서 고지식하게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은 바보로 여겨졌으니까요.


미국의 최고 투자은행들이 파산하면서 줄줄이 이어지는 위기상황들을 보면서야 시장만능주의를 경계하던 당신의 말을 뒤늦게 떠올렸습니다. 


저처럼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따라 하다가 낭패를 본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지요. 

휘황한 빛을 발하던 탑이 사실은 과도한 욕망들로 삐뚤삐뚤 쌓아 올린, 위험한 탑이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여전히 그 탑을 탐하는 마음들은 사라지지 않고 날로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밤은 깊어 가는데 정신은 더 맑아져 아예 일어났습니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표지에 인쇄된 카프카의 얼굴이 눈에 띄었어요.

     

한쪽 흰 자위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카프카의 눈. 

강렬하지만 불안정해 보이는 눈빛 속에 고독한 그의 내면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프라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낮에는 보험국 관리로 일하며 밤에 필사적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스스로 ‘기동연습 생활’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고달팠다지요. 


힘들어도 부모님의 빚 때문에 일을 쉬지 못하던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이런 카프카의 삶에서 배태되었을 겁니다.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힘들어하며 프라하와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떠나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가 41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죽은 그가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1912년, <변신>에서 이미 자본주의사회의 일상과 가족조차 비정하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었듯이, 이 사회에 만연한 물욕과 비인간적 속성 들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감지했을 것입니다. 


<법 앞에서>라는 짧은 글에서 보여주었던,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구원의 문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한층 더 강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자주 이야기한 대로, 좀 더 살만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들 한 번쯤 돌아봐야 할 거 같아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다면 잠시 속도를 늦추거나, 

잠시 쉬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혹시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에요.     


잠 안 오는 밤, 

두서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군요.


그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서, 저기, 새벽이 오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문학을 그리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