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나타나는 방 (2)

김애란 [자오선을 지나갈 때] 윤성희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의 방

by 한혜경


여전히 지나가는 삶 – 1999년의 독서실


또 하나의 방이 있다.


칸막이 책상 네 개가 놓여있고 칸과 칸 사이는 커튼으로 구분되어 있는 4인실 방이다.

너무 좁아 네 명 모두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린 뒤 ‘연필처럼’ 자야 한다.

새벽 6시엔 모두 일어나 이불을 개고 청소를 해야 하는 이곳은 김애란의 「자오선을 지나갈 때」의 주인공 아영이 1999년에 거주한 공간이다.



학원 근처 여성 전용 독서실을 계약하고 조그마한 사물함 키 하나를 받았다.

K-59. 책상 한 칸이 내 몫의 공간이었다. 4인실엔 칸막이 책상 네 개가 놓여 있었다.

같은 구조의 수많은 칸과 칸 사이는 커튼으로 구분돼 있었다. 내가 머문 칸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한 명은 임용 고사 재수생, 한 명은 5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언니였다....(중략)... 4인실은 너무 좁아, 네 명 모두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린 뒤 연필처럼 자야 했다.



한 달에 11만 원인 노량진의 여성전용 독서실.

이곳에는 재수생 외에도 임용고사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스트레스 때문에 한 달째 똥을 못 눠” 얼굴이 까만 룸메이트 언니, “발뒤꿈치가 피곤 때문에 바작바작 갈라져” 있는 아영 등, 한창 발랄해야 할 청춘들이 창백하게 시들고 있는 공간이다.


작가는 재수생 주인공의 생활을 세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노량진의 숙박시설과 생활수준에 엄격한 구분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숙박시설은 한 달 80만 원인 학사에서부터 4,50만 원 대의 하숙, 그 밑으로 고시원, 독서실의 순으로 구분된다. 독서실도 1,2,4인실에 따라 가격차이가 난다. 연필처럼 자야 하고 잠에서 깨면 옆사람의 얼굴이 코 앞에 와있는 독서실에 사는 자들과 일주에 한 번씩 고기반찬이 나오고 새벽에는 간식도 갖다 주는 학사에 사는 자들 사이에 놓인 거리를 짐작하게 한다.


학원 역시 차이를 보인다. 민식이 다니는 일심학원은 “시험을 봐서 애들을 뽑”으며 “좋은 대학에 붙었지만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하는 아이들이 많”은 학원이다.

아영도 일심학원에 가고 싶었으나 세 달치 학원비를 선불로 내야 하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


그 학원에 다니는 애들의 얼굴에 ‘어떤 차분한 야심과 건조한 어른스러움 같은 게’ 있다는 점과 “일심학원에 다니면서도 일심학원에 다닌다는 것에 대해 ‘자연스러운’” 민식의 태도 등은 일반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특성이다.


먹는 음식 역시 이들의 계층을 구별하는 표식이 됨을 보여준다.

이는 수강증을 주워준 답례로 민식이 아영에게 점심을 사겠다며 닭갈비를 먹자고 제안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아영이 이 제안을 수락하는 이유는 순전히 닭갈비를 먹어보고 싶어서이다.(“낯선 남자의 친절이 부담스러웠지만 닭갈비를 먹어보고 싶었다.”)


민식은 닭갈비 2인분을 시킨 뒤 고구마와 쫄면 사리를 추가했는데, 아영은 “사리를 능숙하게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어른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다.

‘어른스럽다’는 것은 같은 또래에게서 보기 어려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자주 주문을 해본 데서 연유한 것이라 하겠다. 곧 닭갈비를 먹어보지 못한 아영과 자주 주문할 수 있는 배경을 지닌 민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이들 외의 인물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아영과 비슷한 계층으로 같은 방에서 임용고사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언니들이 존재한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으려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손가락 열 개 달렸음 되고, 그냥 열심히 해서 답만 많이 맞히면 돼”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사립대 등록금을 감당하기 위해 대학 내내 보습학원 강사로 뛰어야 하는 삶의 대척점에, 비싼 학사에서 살고 세 달 치 학원비를 선불로 받는 학원에 다니는 민식, 취미가 ‘승마’이고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사다 준 애플 컴퓨터를 분해하며’ 놀았던 ‘잘 사는 집 애들’이 놓인다.


흔히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힘겨운 시간을 인내한다.

아영 역시 노량진을 ‘지나가는’ 곳으로 생각하고 견딘다.

대학에 합격한 후 기뻤던 이유 중 ‘더 이상 노량진 같은 곳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더 컸던 것도 이곳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나 ‘7년이 지난 2005년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그녀는 ‘노량진 같은 곳에 혼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스물여섯의 아영은 재수 시절에 비해 아는 게 많아졌다.

사립대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학 내내 보습학원에 나가 다양한 원장들에게 부대끼며 젊음의 한 시절을 보낸 그녀는 ‘돈’이나 ‘아버지 직업’ ‘얼굴’ 등 ‘뒷받침’이 없이는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어려우며, 평범한 조건을 가진 자들은 계속 같은 자리에서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체 나아진다는 게 무엇일까?” 의문을 품고 학원 강사로 서울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아영은 2000년대의 떠돌이이다.


1970년대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서 영달과 정 씨가 꿈꾸던 정착은 2000년대에도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취직을 위한 이력서를 채우는 ‘콘텐츠’는 돈으로 만드는 거라는 선배의 말, 인터넷에 모범답안으로 제시된 자기소개서는 글을 잘 쓴 게 아니라 ‘인생 자체가 잘 씌어’ 있는 것이고 “요샌 고시도 잘 사는 집 애들이 잘 붙어. 장거리 경주라 누가 뒤를 받쳐줘야 하거든.”라는 말들은 돈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학원의 좁고 어두운 화장실에 앉아 “내가 쓰는 화장실이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아 울적해” 하는 아영의 모습은 경쟁력이란 ‘손가락이 열 개 달린’ 정도의 평범한 조건만 가진 이 시대 보통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갑을고시원 체류기」와 달리 아직 그곳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층 어두운 결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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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턴하는 삶 – 2004년의 찜질방


방에 연연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윤성희의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에는 자본을 중시하는 이 시대, 소유에 관심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유산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라고 말하며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하고, 밤이 길게 느껴지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마음에 드는 휴게소에 들어가 어묵을 사 먹는 게 유일한 취미이다.


이들은 혈연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함께 살지 않는다.

주인공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바로 어머니가 죽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쌍둥이 언니도 사고로 죽는다.

주인공이 고등학생일 때 집을 떠난 아버지조차 기차 안에서 눈을 감아 완전히 혼자가 된다.


혼자 살아가는 ‘나’와 친구가 되는 이들도 혼자인 자들이다.


W는 꽤 유명한 여배우인 어머니가 배우가 되기 전 낳은 아이였다.

어머니가 아이 있는 것을 숨겼기 때문에 W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가 유명해질수록 점점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간 W는 존재감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하겠다.


주인공이 기차에서 만나 친구가 된 Q 역시 사촌형이 외국으로 가며 맡긴 중국집을 혼자 운영하고 있다.

집을 가출한 고등학생까지 친구가 되어 함께 살아가게 된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사이가 혈연에 의한 가족보다 더 견고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들은 외롭거나 힘든 상황에서 불행해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서 쉽게 기쁨을 느끼며 자신만의 치유책을 개발해 살아간다.

가령 사이다를 마신 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주 길게 트림을 하는 것에서 시원함을 느끼고 좋아한다든지, 매운 음식을 먹으면 살아있음을 느낀다든지, 울고 싶을 때는 ‘그만 울고 싶을 때까지’ 울면 된다든지 하는, 나름의 삶의 지혜를 지니고 있다.


친구가 된 이들이 모여서 놀고 거주하는 공간은 찜질방이다.

2000년대 초부터 새로운 목욕시설로 등장한 찜질방은 목욕뿐 아니라, 식사와 게임, 운동, 수면, 영화관람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잠시 숙박도 가능한 공간이다.

그러나 집으로 이용하기에는 여러 조건이 미비함에도 ‘나’는 찜질방에서 살아가는 데 전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한 달 치 목욕비를 끊으면 20퍼센트를 할인해 주었다. 매일 목욕을 했더니 잠이 잘 왔다. 개인사물함에 들어가지 못하는 물건들을 보면 아예 욕심이 생기질 않았다. 최신식 가전제품을 보아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예쁜 옷을 보아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국집 문을 닫는 날이면 Q가 찜질방으로 왔다. W가 일을 하는 동안, 나와 Q는 요가를 배우고 재즈댄스를 배웠다. 목이 마르면 식혜를 사서 마셨다...(중략)... W의 일이 끝나면, 우리 셋은 게임방으로 가서 말 옮기기 게임을 했다...(중략).... 미역국을 먹고 나면 각자 흩어져 늘어지게 잠을 잤다. 우리는 밖의 날씨가 어떤지에 관심이 없었다. 일기예보는 보지도 않았다.



위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찜질방에서의 생활은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일반적인 집과 마찬가지로 먹고 목욕하고 잠잘 수 있는 데다가 요가나 재즈댄스를 배울 수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다.


단지 수납공간이 작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개인사물함에 들어가지 못하는 물건을 사지 않으면 된다.

결과적으로 이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욕망하는 최신식 가전제품이나 예쁜 옷은 주인공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즉 최소한의 삶에 필요한 것 외에 관심 없는, ‘욕심’에서 자유로운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밖’의 세계는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있고 돈이 중요해서 유산 때문에 다투고(주인공의 삼촌들) 남의 물건을 훔치며(Q의 주방장) 인기와 허명을 위해 친딸을 유령취급하는(W의 엄마) 세계이지만, 이 ‘안’의 세계는 돈과 허명과 같은 욕망에서 자유롭고 극도로 단순하다.


소유욕이 강한 자들은 ‘싸우고 난리’이지만, 욕심 없는 이들에게 타인이란 경쟁자나 적이 아니라 친구 거나 동업자이다.

단지 ‘밖의 날씨’에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사회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공간을 연상시킨다.


물질에 대한 무관심은 후반부 에피소드인 보물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곧 보물을 찾으러 가는 과정 자체가 놀이라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찜질방에서 알게 된 고등학생이 같이 보물을 찾으러 가자는 제안을 하자 이들은 하룻밤을 고민하다가 수락하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거짓말을 믿는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지는 않지.”가 ‘나’의 이유이고 Q는 “진짜 보물이 나오면 사등분해야 해.”라고 말하며 W의 이유는 “우리 셋은 지금 몹시 심심해.”이다.


이러한 이유로 시작하는 여정이므로 보물을 찾겠다는 의지는 처음부터 없다고 할 수 있다.

보물을 찾으러 가기 위해 운전을 배우고 새벽마다 동네 뒷산을 올라 체력단련을 하고 중고트럭을 구입하고 배낭을 사고 곡괭이를 준비하지만, 트럭은 고장 나고 운전면허는 트럭을 운전할 수 없는 2종면허이므로 쓸모없는 것이 된다.


이들의 태도 역시 보물을 찾겠다는 욕망과는 동떨어져 있다. 산에 버려진 망원경, 등산화, 선글라스 따위를 줍고 즐거워하며 곡괭이는 무겁다고 도중에 버리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보물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데, 그들 앞에 Q의 주방장이 중국집의 모든 것을 갖고 도망간 사실이 기다리고 있다. Q는 울지만 주인공의 위로와 W의 매운 음식 덕에 치유되고, 만두가게를 차리자는 주인공의 제안에 다시 활기를 찾는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유사가족을 이루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이들의 이야기는 일종의 로망이다. 서로 통하는 친구들과 살아가면 밖의 세계는 어찌 돌아가든 상관없을까란 의문이 남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지나친 소유욕에서 자유로운 삶에 대한 상상은 유쾌하다.


혈연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운 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가 중시하는 미덕들, 가령 혈연관계나 강한 정신력, 사회적 성취와 명성, 부유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소유에서 자유로운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가능함을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곧 열심히 돈을 벌지 않아도 괜찮고 놀면서도 살아갈 수 있고 우연히 만난 사람과도 소통이 가능하며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보물지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보물을 찾는 일보다는 보물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 더 재미있고, 끝난 것 같은 지점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함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길을 나섰다고 끝까지 완주할 필요가 없으며 적당한 곳에서 유턴을 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찜질방에서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방식에서 자유로운 삶을 형상화함으로써, 작가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중시하는 소유와 가족관계에 대해 유쾌한 반발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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