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방
인간의 사회적 삶은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공간은 인간 삶의 양태변화에 영향을 준다.
소설 속의 공간 역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의 양태를 드러내주는 표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많은 공간 중에서도 주인공이 거주하는 방은 그가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우리 소설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1930년대 이상은 일제 치하에서 더 이상 날 수 없는 박제된 천재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을 ‘해가 영영 들지 않는’ 방 안에서 잠자거나 돋보기 장난하는 삶으로 형상화했으며([날개]), 1950년대 한국전쟁 중의 폐허와 같은 삶은 손창섭 [비 오는 날]에서 ‘굴속같이 침침’한 방으로 표현된다. 1960년대 김승옥은 전장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숨어 지낸 골방을 통해 모멸과 오욕의 시간을 상징하기도 했다. ([무진기행])
1970년대 산업화 이후 등장한 아파트는 규격화된 똑같은 방에서 살아가는 획일적인 삶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으며(박완서 [닮은 방들]), 더 나아가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되어 생명 없는 사물처럼 변할 수 있는 소외공간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최인호 [타인의 방])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발전해 가는 위상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으며, 이후 GDP나 수출액이 증가하고 OECD에 가입하는 등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 풍성한 물화의 시대로 진입했다.
해외여행이 가능해졌고 한국의 드라마와 가요, 음식 등의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갔으며 한국의 휴대폰 등 전자제품이 각광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전 세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첨단시대가 펼쳐지고 있으며 세계의 이름난 상품을 소비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되기 시작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미덕이던 포디즘(Fordism) 시대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20대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88만 원 세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등의 신조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3포 세대와 5포 세대, 7포 세대, N포세대에 이어 금수저와 흙수저, 헬조선까지 등장하면서 청년층의 암담한 현실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청년층의 새로운 거주공간이 등장한다.
그곳은 고시원이나 독서실이다. 고시원은 원래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었으나 어느 시점부터 실패를 겪거나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싼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인숙의 대용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독서실 역시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더 싼 비용으로 거주하는 공간을 의미하는 곳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사회적 계급과 신분이 존재하는 현실을 분석하면서, 취향에 계급적 차이가 내재함을 지적한 바 있다.
즉 지배계급, 중간계급, 민중계급 사이에, 그리고 각종 직업군에 따라 음악이나 미술 감상, 미적 성향, 소비방식 등의 취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세밀하게 드러냄으로써, 현대사회에 나타나는 계급과 취향의 상관관계를 명쾌하게 보여준 것이다.
취향과 마찬가지로 거주하는 공간 역시 거주자의 신분과 경제적 지위를 가늠케 하는 표식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취약자로 부상하게 된 젊은 세대에게 거주공간, 방은 그의 계급적 조건과 가족적 배경, 교육환경 등을 알려주는 표식이 된다.
따라서 소설 속에 나타나는 거주공간을 살펴보는 것은 작중인물이 처해있는 삶의 조건에 대한 상징을 해독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면의 그늘을 직시하는 자이므로 멋진 디자인의 빌딩과 첨단시설을 자랑하는 아파트와 주상복합건물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뒤 쪽으로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남루한 집들이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한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고시원이나 쪽방, 독서실 같은 새로운 거주공간과 그 안에서 견디고 있는 사람들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방이 있다.
바로 ‘여인숙의 대용역할’을 하는 고시원의 방이다.
“1991년은 일용직 노무자들이나 유흥업소의 종업원들이 갓 고시원을 숙소로 쓰기 시작한 무렵이자, 그런 고시원에서 아직도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이 남아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라고 서술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 이후 고시원은 고시 공부하는 곳에서부터 경제력이 없는 자들의 숙소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스무 살의 남자 대학생 ‘나’가 등장하여 갑자기 계층 하락을 겪게 된 자가 체험하는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처음에 친구 집에 얹혀살다가 친구어머니가 노골적으로 눈치를 주기 시작해서 새로 거주할 곳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의 수중엔 형이 챙겨준 30만 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공간은 ‘이름도 처음 들어본 ‘고시원’이란 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갑을고시원으로의 이동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고시원의 환경은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의 것이다.
‘터무니없이 길고 좁고 어두운 - 폭이 40센티가 될까 말까 한 복도’가 있고 그 맨 끝에 주인공이 살 방이 있다. 주인이 방 문을 여는 순간, 주인공은 ‘기겁을 했’는데, 그 이유는 방이라기보다 ‘관이라고 불러야 할 사이즈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도저히 다리를 뻗을 수 없는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으므로 잘 때는 의자를 빼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속으로 다리를 뻗고 자야 한다.
옆방과는 1 센티 두께의 베니어판으로 막혀있어 모든 소리가 훤히 들린다. 가사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음악소리조차 허용되지 않으며 코를 풀거나 가스를 배출하는 생리적 소리도 참아야 한다.
‘웅크리고, 견디고, 참고, 침묵하는’ 생활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시원의 삶은 그를 결국 ‘가구처럼’ 움직이지 않고 소리를 내지 않으며 말이 없는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점차 그는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감 없는 인간이 된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러한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기겁’을 할 정도의 환경이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빠르게 깨닫는 것이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기분’도 들지만 할 말을 해서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님을 체득한 것으로, 이는 그가 냉엄한 삶의 정면을 마주하게 되면서 어른의 세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갑자기 어른이 된 느낌’은 ‘왠지, 이 세계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기분’과 일맥상통한다.
이 세계란 곧 돈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 위주의 세계이다. 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 허용되는 방이란 이곳처럼 비인간적 공간이라는 사실과 이곳을 빠져나가기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비정한 세계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에 대해 주인공은 억울해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기분’ 정도이므로, 이 상황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란 친구의 말에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서럽지 않다.
대신 “외로웠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수용이나 체념의 태도라 할 만한데, 곤경이란 타인이 도울 수 없는, 철저히 개인의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도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기 어려우며 홀로 감당하며 살아가야 함을, 그래서 삶이란 외로운 것임을 일찌감치 깨닫는 것이다.
고시원에서의 탈출 역시 순전히 개인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안간힘을 다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을 한다. 그리고 작은 임대아파트를 ‘역시나, 간신히’ 마련한다.
이제 그는 ‘두 발을 뻗고 자’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왔다. 미흡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재입성한 셈이다.
혹독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그는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
자신은 ‘운이 좋았다는 생각’, 그리고 ‘시간은 우리의 편’이라는 것이다.
즉 그는 그곳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비교적 긍정적인 마음으로’ 고시원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고 생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게 된다.
동시에 ‘여전히 그 밀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을 갖고 있으므로 고시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밀실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밀실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지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연민을 보내며, 그중에서도 실패를 겪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위해 고시원이 존재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