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의 꽃
메밀꽃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실제 메밀꽃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달밤에 하얗게 빛나는 메밀꽃밭이 눈에 선하며,
봉평이나 대화에 가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외진 산길을 나귀와 함께 뚜벅뚜벅 걷고 있는 장돌뱅이들의 모습과 시골장날의 장면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 배경으로 묘사된 메밀꽃밭의 풍경은 빼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발표되었고 소설의 존재 근거가 현실을 직시하고 반영하는 것임을 상기한다면, 자연이나 사랑, 시적 분위기 등은 당시 상황과 장돌뱅이들의 실제 삶과는 유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곧 ‘숨이 막힐 지경’으로 아름다운 달밤의 메밀꽃의 정경이나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을 걷고 저 달을 볼 테야’라는 허생원의 로맨틱한 다짐은 장돌뱅이의 고단한 삶이 아니라 작가의 감각과 더욱 밀착되어 있으며, 성서방네 처녀와의 기이한 인연 역시 현실적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지리멸렬한 우리의 삶에서 한 번쯤 꿈꿔 봤음직한 환상을 다룸으로써,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왼손잡이요, '얽둑배기'로 ‘계집 과는 연분이 먼’ 허생원의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에도 눈부신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니 어찌 끌리지 않겠는가.
허생원의 삶에서 절정의 순간은 젊은 날 우연히 이루어진 성서방네 처녀와의 하룻밤이다.
무더운 여름밤, 더워서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온 허생원은 달이 너무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울고 있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치게 된다.
우연히 일어났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 없는 이 ‘기막힌 밤’은 그 뒤로 두고두고 허생원에게 ‘산 보람’을 느끼게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각인된다.
그래서 이 시간은 과거의 일이지만 허생원의 이야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으며, 이로써 그 순간은 현재처럼 늘 그의 곁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현실적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밤과 달빛이다.
밤은 긴장의 연속인 낮과 달리 휴식의 시간이다.
각박한 현실의 시간인 낮과 달리 밤은 평화와 화해의 시간이다.
낮이 이성이 지배하는 시간이라면 밤은 본능이 강해지는 시간이다.
낮 동안 재투성이 소녀에 불과한 신데렐라가 밤에는 아름다운 공주로 변모하는 것처럼, 밤은 낮에 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곧 보잘것없는 허생원이 아름다운 처녀와 연분을 맺는 환상적 사건은 달밤이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낮과 밤은 현실의 시간과 환상의 시간으로 대립되어 나타난다.
‘벌려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 더위와 시끌시끌한 시장판으로 그려지는 낮 시간은 사고팔기의 행위와 싸움, 각다귀들의 장난과 조롱 등,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갈등과 대립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에 반해서 밤은 고요한 벌판과 산길로 묘사되고 있으며,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고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어’ 있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밤의 공간에서는 싸움이나 갈등이 일어날 수 없다.
평상시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화해가 이루어지며 정분이 나기도 하는 시간인 것이다.
봉평에서 제일가는 일색인 성서방 처녀와 '얽둑배기'인 허생원의 연분이 맺어지고 충줏집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겪던 동이와의 관계가 업고 업히는 정겨운 사이로 변화하기도 한다.
즉 ‘메밀꽃 필 무렵’이란 작품의 제목은 바로 이 꿈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봉평을 여행하면서 이효석의 생가와 근처 메밀꽃밭을 구경한 적이 있다.
조잡하게 만들어놓은 물방앗간과 왜 세워 놓았는지 모르겠는 여체 조각상, 특별할 것 없는 생가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문화 정책에 대해 다시 실망했지만 무엇보다도 메밀꽃밭의 정경이 상상했던 것에 미치지 않아 많이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곧 해답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달빛의 마력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밤이 되어 달빛을 받으면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면서 주변을 꿈의 세계로 만들어버리지만, 낮에는 그저 하얗게 무리 지어 피어있는 소박한 꽃일 뿐인 것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에 괴로워하면서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을 감수해야 하는 우리 삶에서 환상은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작가가 일탈을 지리멸렬한 삶에서 오롯이 피어나는 꽃으로 표현한 바 있지만 환상 역시 그러한 기능을 갖는다.
환상에서 깨어날 때 맛보게 되는 환멸감이 문제 이긴 해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꿈속에서 상상해 보는 것은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그렇고 그런 삶의 풍경 사이에 드문드문 피어 있어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꽃처럼.
「메밀꽃 필 무렵」은 바로 그러한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실에서 보잘것없는 허생원이 잠시 멋진 왕자처럼 변한 일을 그리고 있으며 그 변모는 메밀꽃과 달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이 ‘쓸쓸하고 뒤틀린’ 삶을 견디게 하며 활력을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나에게는 살면서 되새길 만한 꿈의 순간이 있었나” 질문하게 한다.
동이는 아들이었고 옛 처녀와도 재회하게 된다는 암시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을 흐뭇하게 할지는 모르지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즉 환상은 우리 삶을 견디게 하는 꽃으로서 필요한 것이지 그것이 전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환상이 환상일 뿐이라는 것만 확실히 인식한다면 간간이 꿈꾸며 사는 것은 그다지 해롭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