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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Dec 23. 2023

발레의 세계로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보고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했다.

크리스마스 앞두고는 역시 [호두까기 인형]이지, 하면서....


이 작품은 독일의 작가 호프만의 동화인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을 발레로 표현한 것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작곡하여, 시종일관 아름다운 춤사위와 어우러진 음악이 귀를 사로잡는다. 이번 공연의 연주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맡아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마리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고 마리의 대부 드로셀마이어가 마리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한다.  마리는 호두까기 인형을 품에 안고 잠이 드는데, 꿈속에서 거실의 트리가 커지고 각 나라 인형들과 호두까기 인형이 생명을 얻어 움직인다. 생쥐들이 나타나 인형들을 위협하자, 호두까기 인형은 장난감 병정들을 이끌고 생쥐들과 싸움을 벌인다. 

마리는 호두까기 인형이 위험해지자 생쥐 왕에게 초를 던져 호두까기 인형의 승리를 이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 호두까기 인형은 멋진 왕자로 변하여 마리와 함께 크리스마스랜드로 떠난다. 

왕자는 마리에게 청혼을 하고 스페인, 인도,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인형들과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다 함께 이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다음날 아침잠에서 깬 마리는 결혼식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호두까기 인형을 품에 안은 채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한다.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마친 후 인사하는 사진   



무대 위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파티에 오는 이들의 가볍고도 경쾌한 몸놀림, 눈송이와 꽃송이들의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춤, 각 나라 인형들의 춤과 생쥐들의 몸짓들이 보는 내내, 날아오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왕자는 붉은 옷으로, 마리는 하얀 옷으로 연출하여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조화가 돋보였다. 그 우아한 턴동작과 허공을 가르는 점프들....

이야기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꿈같은 것이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평소 강조하는 입장이지만, 크리스마스 앞두고, 연말에, 잠시 환상에 함께 빠져 보는 것은 해롭지 않으리라.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공연 후 인사하는 사진 





발레를 보다 보니, 오래전 집 근처 체육센터에서 재즈댄스를 배우며 느꼈던 것들이 떠올랐다. 


대학시절 테니스채 잡고 몇 번 휘저어보곤 포기한 이래,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작하지 못하다가, 집 근처에 문화 체육센터가 개관을 해서 결심을 했다. 저녁 8시면 아이들이 저녁 먹고 학원에 가는 시간이라 괜찮을 듯했다. 8시에 개설된 프로그램을 찾아보니 재즈댄스 강좌가 있었다. 재즈댄스가 뭔지도 몰라 엄두가 안 났지만 일단 시작해 보자고 용기를 냈다.


쭈뼛거리며 첫 시간에 가보니 40대 넘어 보이는 또래들도 서너 명 섞여 있어 마음이 좀 놓였다. 낯선 동작을 따라 하려니 어색하고 몸은 말을 안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친절한 데다 핵심을 잘 짚어 가르쳐주어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재즈를 잘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해요. 먼저 동작을 기억해야 하니까요. 그다음엔 반복해서 연습하면 됩니다.” 선생님 설명에 힘을 얻어 연습해 보니 조금씩 동작들이 몸에 익기 시작했고, 어느새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엔 몸을 쓰는 데서 오는 희열이 좋았다. 중고생 때 체력장 연습 이후 처음 만나는 경험이었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빠르게 몸을 움직일 때, 발 끝으로 서거나 한 다리로만 서서 버티는 동작을 할 때, 저절로 끙끙 소리가 나오고 땀이 흘러내리는데, 뭔가 해낸 듯한 뿌듯함이 차오르곤 했다. 그전까지 뻑뻑하고 피곤하던 눈도 말갛게 개이고 뒷 골이 뻣뻣하던 것도 어디론가 사라져 있다.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이다!!!

동작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좀 전까지 머리를 짓누르던 생각들이 공중분해된다. 비록 몸은 무거워 처져 있지만, 머릿속만큼은 공기처럼 가벼워지는 것이다. 


시인 김춘수는 시를 춤에 비유했다.

‘보행’이 유용함에 비해 춤은 무용無用하므로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도 실용적이지 않은 격格 때문에 예술이라는 얘기이다.


춤을 배우면서 허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자세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알아보게 되었다. 

무겁고 둔한 몸으로는 절대로 불가한,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환상적인 포즈. 

정지된 그 순간에는 한 마리 새인 상태, 

실용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 자체로 완벽하게 아름다운 동작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탄광촌의 소년 빌리가 우여곡절 끝에 훌륭한 발레리노가 되는 그 영화의 마지막은 그가 「 백조의 호수 」 주역으로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다. 카메라는 빌리가 무대에 나가기 전 심호흡을 하고 준비 동작을 하는 것을 천천히 따라가다가, 발을 구르며 무대로 나가 힘차게 비상하는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잡고 숨을 죽인다.


한 마리 백조로 우아하게 날아오른 그의 모습은 가난하던 어린 시절, 주눅 들린 모습으로 오디션을 보던 초라한 탄광촌 소년이라는 어둡던 과거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다른 존재로 거듭난 것을 상징하고 있다. 땅에 속한 것들이 그의 몸을 무겁게 끌어내리는 것이라면, 춤은 그를 천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모두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복된 새해 맞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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