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좋은 수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혜경 Mar 19. 2024

이토록 유쾌한 자기 긍정

이명지의 수필  <성당 가는 길>을 읽고


 “우리 인생의 여기저기 흩어진 조각들을 가지고 서사를 만들거나 발견하는 작업을 하면 우리 삶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의 말이다. 


이 말처럼 삶을 되돌아보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때 놓쳤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한다. 

수필은 이 과정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 사유의 정수를 언어로 형상화한 글이다. 


이명지의 <성당 가는 길>은 착한 아이로 알려졌으나 기실 나쁜 아이였던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착한 아이라는 ‘족쇄’를 스스로 깨부숨으로써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글은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성당에 가던 일화로 시작한다. 


평소에는 때 묻은 옷으로 농사일하던 엄마가 일요일이면 화사한 한복을 차려입고 성당에 갔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성당에 가는 것은 상당한 ‘파격’으로 “겉멋이 들었다느니, 바람이 났다느니 말이 많았”으나, 엄마는 “당당했다.” 


작가는 성당 가는 게 싫었지만 ‘성당에 다니는 아’가 되어 “성당에 다니는 아는 나쁜 짓을 안 한다”란 족쇄를 차게 된다. 


또래보다 늦되던 종말이에게 가위바위보로 책가방 네 개를 들게 했던 날, 종말이는 기진맥진한 끝에 심하게 앓았고, 화가 난 종말이 엄마가 그날 가방을 들게 한 아이들 집을 찾아다니며 야단을 쳤다. 


잔뜩 겁먹은 작가에게 종말이 엄마가 한 말은 “야는 그럴 아가 아이다. 야는 성당에 다니는 아라 그런 나쁜 짓은 안 한다.” 

이 말은 ‘지킬 수 없는 금단의 열매’가 되어 평생 작가를 “미혹에 시달리게 했고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했다.”




그러던 중 자화상을 그리다가 문득 깨닫는다. 

자신 안에 수많은 얼굴이 있고 ‘그럴 애’ ‘그렇지 않을 애’ 모두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 깨달음은 그동안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마음을 단번에 정리해 준다. 

“무엇이 문젠가! 그게 인간인데, 나라는 인간인데.” 

그리하여 그림의 제목은 “그래서 뭐!”가 된다. 


번민과 혼란의 시간을 거쳐 도달하게 된 자기 긍정. 이토록 유쾌한 자기 긍정이라니...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결말이 아닐 수 없다.                                         



* <데일리 한국> 2024. 3. 18 게재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63538

매거진의 이전글 균열의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