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수필>의 정신과 미학
세태 변화와 새 문물 관찰
화가의 관찰력으로 당시 변화하는 세태를 세밀하게 관찰한 글은 사생한 것을 글로 표현한 셈이다. 보이는 풍경을 객관적으로 그린 스케치에 그치지 않고 비판적 시선이 녹아 있는 관찰기를 보여준다.
<신형주택>은 불이 난 후 지은 주택 모습을 묘사한다.
“벽은 으스러지고 창문은 깨어지고 전날 화단인 듯싶은 자리에는 쓰레기의 산이 솟고 하여, 가며 오며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려니 근자에는 이런 건축들을 의지삼아 신형 주택이 나타난다. 발코니에 널빤지 쪽으로 제법 그럴듯하게 고층 건축이 예쁘장하게 만들어지고 그 옆에 장독대가 놓이고 빨랫줄이 건너간다. 퇴옥파창(頹屋破窓)일망정 재민(災民)들은 이런 데서 알토란같이 산다.”
제목에서 느꼈던 긍정적 뉘앙스가 ‘퇴옥파창’, ‘재민’의 주거지란 서술을 통해 전복되는, 풍자적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이동음식점>은 그림도 곁들여 소개한다.
‘골동품 같은 집’이 있는데, “추녀 끝에는 방울 같은 새를 앉히고 납작한 완자창도 달았다.” 떡국과 냉면, 개장국을 파는 곳으로 “재미난 것은 주추 대신에 도롱태를 네 귀에 단 것”이라며 신기해하는데, 이 역시 재민의 살아가는 방식이므로 마찬가지로 풍자적 시선을 감지할 수 있다.
유행하는 여성의 머리모양에 대한 글에서는 ‘머리가 주는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가뜬하게 빗은 머리와 예쁘장하게 찐 낭자’를 가리켜 “연꽃 봉오리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고 묘사하며. ‘파마넨트라는 놈’도 마음에 드는데, ‘쥐똥머리’는 “눈에 설고 얄미워” 보인다고 취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외적 변화뿐 아니라 신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세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바이올린 연주자 김니콜라이의 공연을 예화로 들면서, “신식이란 무조건하고 좋다는 것, 조상이니 예의니 윤리니 하는 따위는 헌신짝같이 내던져야 한다는 것, 이러한 새 세대의 진리를 확실히 파악하게 되었다.”라고 비꼬면서, 그 결과 ‘일어상용’과 ‘일선동조론’을 제창하는 현실이 되었음을 비판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울분과 해방 후 혼란상
일제 강점기 시기는 식민 지배 아래 근대화를 통과해야 했던 시기이므로 수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근원은 이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한 줄로 요약한다.
“사십 남짓한 나이에 수 세기 이상의 세월을 겪었다” (<김니콜라이>)
새로운 문물과 신풍조의 등장에 대한 상반된 반응은 “신기스럽기도 하고 비통스럽기도 한” ‘기구한 운명’이란 표현에 잘 담겨 있다.
이 시기의 부자유와 울분은 <발>을 비롯해 여러 글에서 나타난다.
<팔 년 된 조끼>에서 “구태여 새 옷을 입고 싶은 흥미를 잃어버린” 모습은 “아침이면 눈을 떴나 보다, 배가 부르면 밥을 먹었나 보다, 그러다가 죽고 마나 보다.”에 처절하게 드러난다.
“외국 사람 같으면 한창 일하려고 발버둥을 칠 시기인데 우리는 어째 요 모양으로 옥말려 드는 한 덩어리 물질에 불과하단 말인가!”란 마지막 문장은 식민지 시대 의욕을 잃고 시들어가는 예술가의 참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울분은 해방 후에 더 강해진다.
해방의 기쁨은 잠시, 수많은 문제로 ‘멸망에 직면한 위기’에 처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는데, 울분의 강도가 강해져서 비아냥과 반어조 표현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우리들이 사갈보다 더 싫어하던 부일분자, 민족반역자, 또는 이에 유사한 것들이 팔일오 전이나 꼭 마찬가지로 골고루 자리를 차지해 있고, 시골로 서울로 하라는 일은 아니하고 늘어가는 이 노름꾼, 강도, 협잡이요,.... 이렇게 좋은 세상에 무슨 이유로 밥만 먹으면 체증이 생기고 아니꼽기만 하고 정신은 얼이 빠진 놈처럼 흐리멍텅하고 당장 조석 끼니가 없는데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일까. - <털보> 중
근원의 문장은 고졸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으며, 특히 세밀한 관찰력에 의한 장면 묘사가 구체적이고 뛰어나다.
"흡사히 시골 색시가 능라주속을 멋없이 감은 것처럼 어색해만 보인다." -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
“양미간이 좁고 찌부러져서 보는 이는 속이 빽빽하다 하겠으나 기실은 내 속이 빽빽한 것이 아니요 미간의 좁은 내 심저에 깊이 숨은 우울이 나타난 것이다.” - <선부 자화상>
“흐린 공기와 때 묻은 나뭇잎들만이 어른거리는 서울의 거리를 거닐다 보면, 가다 오다 좁다란 골목 속 행랑살이 문 앞에 혹은 쓰레기통 옆에 함부로 심어 컸을망정 난만하게 피어 하늘거리는 꽃이 있다.” - <구와꽃>
“X선생도 몇 날 며칠이나 군불 맛을 못 봤는지 사뭇 냉돌에 이불 한 채 없이 병정 녀석들이 쓰던 담요 쪽 하나를 깔고 올올 떨고 앉았으면서 그래도 입만은 살아서 칸트가 어쩌니 헤겔이 어쩌니 하고 떠들고 있었다.” “선생의 테이블 밑에 그가 끔찍이 사랑하는 매화에다 두루뭉수리처럼 웬 이불 한 채를 둘둘 감아 붙인 것을 발견하고 나는 분반할 지경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중략)...” - <답답할손 X선생>
“그렇게 한적한 정거장에는 플랫폼마다 피어 늘어진 달리아들. 빨갛다 못해 까맣게 반사된다.” “에메랄드의 소나무들 사이로 붉은 지붕이 보인다.” “처창한 밤 바닷가에 이름 모를 조개껍질들이 운명의 씨처럼 여기저기 놓여 있다.” - <동해로 가던 날>
“유독 내가 감나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놈의 모습이 아무런 조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때문이다. 나무껍질이 부드럽고 원초적인 것도 한 특징이요, 잎이 원활하고 점잖은 것도 한 특징이며, 꽃이 초롱같이 예쁜 것이며, 가지마다 좋은 열매를 맺는 것과, 단풍이 구수하게 드는 것과, 낙엽이 애상적으로 지는 것과... (중략)...” - <노시산방기>
또한 장면 위주의 묘사로 이루어진 글은 ‘보여주기’에 가까우므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추사글씨>의 경우, 진 군과 양 군의 일화를 보여주기만 할 뿐, 그들이 지닌 추사 글씨가 진품인지 여부는 알려주지 않은 채 글을 맺는다.
<은행이라는 곳>은 은행의 정경과 은행에서 경험한 일을 그린 글이다. 그 중심에 오래전 꽤 친한 사이였던 피 군이 놓인다. 가난하던 그가 돈을 번 뒤에 변했다는 사연을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은행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초라해진 행색 역시 묘사로 끝내고 있으므로 정확한 사연은 설명되지 않은 채 끝난다.
김용준의 자화상 <선부고독>
이렇게 볼 때, 근원 김용준의 수필은 마음속 울분을 토로한 것으로, 근원이 추구하고자 한 정신세계를 진솔하게 드러낸 글임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예술의 본질과 가치를 정신에서 찾았으며,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에서 고뇌했던 흔적, 고독에서 비롯된 성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표현의 측면에서는 뛰어난 관찰력에 의한 묘사와 고졸한 문장, 미적 감수성, 생생한 장면 묘사에서 오는 구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근원수필>>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급격한 세태 변화와 혼란스럽고 부자유했던 시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외면하지 않았던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서울문학광장 주최 주관
<고전에게 길을 묻다 2> 발표. 2024.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