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애 <흩어지는 기억에 관하여>를 읽고
어느 날,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놀랍고 당황스러울까.
강미애의 <흩어지는 기억에 관하여>는 기억을 놓친 어느 날의 경험에서 촉발된 단상을 삶과 노년, 죽음에 대한 사유로 확장시킨 글이다.
생명체라면 피할 수 없는 노년과 죽음을 담담하지만 치열하게 곱씹어, 독자의 마음을 고요히 흔들어 놓는다.
서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개된다.
도서관에 가던 중, “왜 이곳에 서 있을까.” “어디 가려고 했지.” 기억이 나지 않아 ‘망연자실’ 낯선 거리에 서 있는 여성. 상당히 당혹스러웠을 이 상황을 작가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포착해 묘사한다.
이는 단순히 기법으로서 ‘보여주기’가 아니라, 삶과 노년,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에서 비롯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곧 많은 사람이 외면하고자 하는 늙음과 죽음을 이성적으로 마주함으로써, 기억을 놓치는 일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신호의 하나’이며, 언젠가는 ‘놓아주어야 할 그때’를 맞닥뜨릴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의 주인공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는 모습을 예로 들면서, 작가 역시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음을 토로한다.
그 결과, 나이 든다는 것이 ‘내가 가진 것을 영영 잃어버린다는 뜻’도 있지만, ‘내 안에 켜켜이 간직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양면을 발견한다.
그러나 더 시간이 흘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 때, 나는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내가 누군가’는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기억하고 있는 것에 기초한다”면, ‘과거와 현재의 총합’인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더 나아가 아예 ‘나’라는 실체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작가는 이 답의 실마리를 지인의 죽음에서 찾는다. 밤늦도록 글을 쓰던 그녀의 책상, 물컵이 놓여 있던 자리의 흔적 등을 떠올리며, 죽음도 ‘내가 이곳에서 살다 간 흔적’ 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실체는 사라져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겨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지구의 한순간을 스쳐 가는 존재로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그들의 흔적을 챙기며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리라.
쓸쓸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작가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유로 언젠가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오고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삶이라면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소망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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