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1)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김애란의 <성탄특선>

by 한혜경


어릴 때 12월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계절이었다.

더 정확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계절이었다. 엄마 따라 교회에 다니던 나는 짐짓 경건한 태도로 크리스마스 연극과 행사에 참여했지만, 관심은 온통 어떤 선물을 받을까에 쏠려 있었다.


당시엔 카드라든지 팬시상품이라 할 만한 것이 드물었으므로, 미국 사는 고모가 보내준 카드가 너무 매혹적이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데 신나게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 루돌프가 끄는 썰매에 앉아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산타할아버지, 앙증맞은 장식이 매달린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색색으로 놓여있는 선물들, 밤하늘에 별들이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알록달록 예쁜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 등, 카드 속 풍경은 옹색한 우리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동화 속 세상처럼 보였다.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말이 어린 마음에 드리웠던 무게도 기억난다.

미심쩍어하면서도 잘못한 일이 없나 슬그머니 헤아려 보곤 했으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굴뚝을 통해 온다는데, 우리 집엔 굴뚝이 없으니 어디로 들어올까 궁금해하던 시기가 지나며 나의 유년이 끝났다.


시간이 흘러 나도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12월은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계절이 되었다.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평소 눈여겨 봐뒀다가 눈치채지 않게 선물을 사 와서 포장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선물을 풀어보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흐뭇했고.


그런데 어느 날, 백화점에서 곁을 지나가는 한 엄마와 아이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간과해 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무슨 선물 사 줄 거야?”


한껏 들뜬 아이의 목소리에 엄마는 피곤에 지친 듯한 목소리로 답하는 것이었다.


“아유, 이놈의 크리스마스... 그냥 적당히 사.”


모든 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구나.

온갖 연말 청구서가 몰아치고 생활비도 부족하다면 크리스마스는 악몽일 수 있겠구나.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성탄절은 무의미하거나 괴로운 날일 수 있음을 인식하는 데 오래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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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멘도의 작품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는 화려한 소비의 정점이 되었고, 남들이 하는 소비 행렬에 동승하지 못하는 이들의 박탈감은 심화되었다.


1905년 미국의 오 헨리는 유명한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가난한 부부를 등장시켜, 가난하지만 서로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조명했다. 돈이 없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 선물을 마련했는데 필요 없게 된다는 극적 구조로 안타까움을 배가시켰던 이야기. 그런데 그 반전이 너무 마음을 흔들어서 가난은 추상적 배경처럼 느꼈던 것 같다.


2006년 한국, 김애란은 <성탄특선>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소설 제목과 거리가 먼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펼친다.


1980년대 후반, 시인 신경림이 가난한 이의 사랑을 처절하게 노래했다면, 김애란은 차분하게 묘사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는 게 아닌데, 가난하기 때문에 ‘네 입술’과 ‘네 숨결’을 버려야 하는 비통함은* 20여 년 후 김애란에 의해서 “일 년 중 가장 먹먹한” 새벽으로 형상화된다.


(*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는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


등장인물은 한 방에 함께 사는 오빠와 여동생으로, 이들의 처지는 서울에서 자취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이 시대 청춘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제대로 된 방에서 사는 것, 이른바 ‘보통의 기준’에 맞추어 “좀 사는 것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데, 그 지난함이 집약된 날이 바로 성탄절이다.


오빠를 통해서는 서울살이 10여 년 동안 어떤 방들을 거쳐왔는지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다른 이들과 욕실을 같이 쓰는 단칸방, 장마 때마다 바지를 걷고 물을 퍼내야 하는 반지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옥탑방... 이런 방들을 전전하는 동안 연인은 사라진다.


그의 로망 중 하나는 ‘소독한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보리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다. 이런 것이 자기 삶을 “어떤 보통의 기준에 가깝게 해 주고 또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였다.”라고 설명하는데, 그 기준이 너무 소박해 마음이 아프다. ‘보통의 기준’에서 한참 먼 그는 성탄절 새벽 1시 편의점에 가서 비빔면을 사 온다. 홀로 비빔면을 먹으며 보내는 성탄절은 ‘일 년 중 가장 먹먹한 새벽을 만나는 날’이 아닐 수 없다.


여동생의 이야기는 (2)에서...


** 격월간 <그린에세이> 2024 11,1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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