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스토리

그 해, 우리는 ①

by 나춘봉씨


드디어 30년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마치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오래전에 우리 가족에게 큰 불행이 있었고, 그로 인한 추가적인 불행이 생겼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우리 가족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둡고 마음이 가라앉는 이야기인지라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봅니다. 그 일이 시작된 20년 전 처음 그날부터 거슬러 올라가 한 해동안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삼일절 연휴를 이용, 강릉으로 바다를 보고 돌아온 다음날, 이사 기념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여 삼겹살 파티를 하며 즐거 시간을 보냈다. 한 치 앞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짙게 내리는 밤안개 사이로 그들을 떠나보내고 돌아서는데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더니 기어이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동생이 울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배터리 수명이 다해 꺼지는 통화 종료음. 집에 들어와 집 전화기로 통화를 연결했을 때 그 전화가 형의 죽음을 알리는 거라는 걸 알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안개가 자욱한 밤길을 달려 내게 소식을 전한 여동생에게 가는 길에 내내 아내가 울었고, 아내의 울음소리를 들을수록 그의 죽음은 점차 현실이 되어갔다. 한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꿈같이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허공을 휘휘 저어봤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붙잡고 형의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셨다. 여동생은 자기 방에 처박혀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삼키느라 얼굴이 벌게지고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참으로 어이없고 기가 막힌 풍경들이었고 어쩔 수 없이 형의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불행이 그러하듯, 우리에게도 참으로 어이없고 예고 없이 들이닥친 이 상황들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형의 죽음을 맨 처음 알린 이는 형과 한때 동업했던 신소장이라는 사람이었다. 태국 현지에서 형과 함께 지내던 이가 그에게 전화로 소식을 알려와 내가 도착하기 두어 시간 전에 어머니에게 직접 전해준 비보였다. 내가 도착하기 삼십 분 전쯤까지 어머니를 위로하다 돌아간 그의 전언에 따르면 형은 이날 저녁에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것 같다는 거였다. 자세한 내막까지는 미처 알아보지 못한 상황인 듯했다. 나는 즉시 형과 함께 지낸 지인이라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 걸었던 국제전화였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져 오는 여자의 말은 계속 형이 죽었다는 사실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피곤하고 지친 목소리였고, 자세하게 상황을 얘기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느껴져서 그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니, 대체 한 집에서 같이 지낸 사람이 형이 죽은 이유를 모르는 게 말이 돼요?"

"몰라요.. 나도 몰라요..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오느라 나도 정신이 없어요.. 흑"

여자는 나와 통화하는 내내 울기만 했으며 끝내 형이 어떻게 죽었고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날은 3월의 꽃샘추위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추웠고, 주변의 바람소리는 짐승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아버지를 모시고 아내, 형의 동료와 함께 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면서도 나는 내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방콕공항에는 늦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형과 같이 사업하던 사람들이 미리 나와 있었다. 그들이 내준 승합차를 타고 형을 위해 마련해 둔 절로 갔는데, 법당에 마련된 형의 영정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꿈만 같고 형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나의 요구로, 모텔 대신 형이 살았던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형의 방에는 또 다른 영정사진과 함께 향이 피워져 있었다. 형의 죽음에 관해 많은 것들을 알 것 같은 이들은 내내 입을 다물었고, 나의 시선을 바라봐주지 않았으며, 나 또한 그들에게서는 제대로 된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을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저 묵묵히 형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담배를 물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형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형의 죽음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얘기는 동행했던 형의 전 동료를 통해 들을 수 있었는데, 대략 얘기를 나누다가 형이 자신의 방으로 와서 화장실에서 총으로 자신의 목을 쐈다는 얘기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영화 같은 얘기들이 계속 그렇게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저 담담했다. 그것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고, 나와 내 가족에게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엄청난 이야기였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였기에... 그렇게 무표정으로 베란다에 나와서 또 담배를 피우다가 형이 죽었다는 화장실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변기 위에 접시가 하나 있었고 그 안에 꽃잎들이 담겨 있었다. 그 옆의 벽에 나있는 파편하나.. 저것이었나 보다. 총알이 형의 목과 머리를 뚫고 나가 박혔다가 빠져나왔다는 바로 그 자리...


몹시 피곤해서 곯아떨어진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오전 7시경, 아래층에는 이미 많은 태국 사람들이 와있었는데 그중 반은 스님들이었다. 형의 영혼을 위로하러 특별히 지방에서 불러온 분들이라 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풀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억지로 초코파이를 하나 먹고 장례식 절차에 동참했다. 대사관 영사가 직접 이날 오전에 이곳으로 오기로 했었지만 이미 장례가 길어지면서 영사와 함께 약속했던 스케줄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갔다. 태국 경찰청장과의 면담을 오후로 미루고 장례식을 마저 치른 후 형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데, 날씨가 무척 더워 내 검은 양복 안으로 땀이 비 오듯 스며들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울면서 마련해 준 수의를 가져가 냉동실에서 3일 밤을 지낸 형의 몸에 입혀주었다. 형은 눈을 마저 다 감지 못하고 있어서 내가 두 눈을 감겨주고 형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얼굴이 몹시 찼다. 귀에선 옅은 핏물이 배어 나왔고 가슴과 턱 아래, 그리고 귀 바로 밑에서부터 뒤통수로 커다란 바느질이 되어 있었다. 아내에게는 보지 말라 하고 아버지만 불렀다. 머리 한가운데 구멍 난 부분은 내가 손으로 가리고 보시라 했음에도 아버지가 주저 않아 눈물을 쏟기 시작하셔서 결국 둘이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수의가 엉성하게 입혀져 있었지만 날씨가 무더워서 형을 어서 화장터로 옮겨야 했기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게 안타까워서 또다시 눈물을 쏟아야 했지만 형이 죽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엄정하게 확인이 된 셈이었기에 우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형의 죽음에 대해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화장을 미룰 마음으로 왔었지만, 일정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주지 않았다. 형과 아버지, 아내를 화장터에 남겨두고 예정된 면담을 위해 태국 경찰청으로 향했다. 경찰청장은 현역 대령으로 나와 함께 온 대한민국 영사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형이 죽었던 순간의 사진들과 유품들, 형의 유서도 내게 직접 보여주었다. 나는 총알 파편의 방향에 대해 질문했고 담당형사는 그것에 대해 사진을 통해 다시 한번 상황을 설명해 주는 친절함을 보여줬다. 형의 유서를 직접 보여달라 요청해서 필체를 확인했으며, 형의 일기장도 직접 보았다. 필체는 형의 것이 맞았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과, 형이 쓴 당일날의 일기에 죽음에 관한 기미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 그리고 형의 성격과 생활태도를 봤을 때 이렇게 엄청난 일을 혼자 벌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날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한민국 영사도 형의 일기를 읽고 나서는 처음과 달리 나와 내 가족들의 입장에 좀 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외교문제까지 언급하면서 태국 경찰청장에게 적극적인 수사를 통해 형의 죽음의 원인을 규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청장의 설명 중 총을 형이 직접 구입했다는 것이 의문스러우며, 사실 그전부터 그 집에 총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수사기록에는 살아있는 자들이 총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영사는 유감스럽게도 이 총에 대해서는 형이 죽었으므로 사실 확인이 불가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사진으로 본 정황상으로는 형의 자살이 가능한 얘기였다. 형의 몸상태와 총을 쏜 자세, 파편의 방향이 일치했으며, 기타 그을음과 손가락 사이의 연기자국 등에 관한 설명은 타살이 아닌 자살에 더 부합하는 증거들이라고 했다. 근 일 년간 노력에 비해 전혀 돈을 벌지 못했으며 최근에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직접 추진하던 일이 몇몇 사람들의 거짓말들로 인해 결실을 맺지 못해 상심이 컸던 점 또한 하나의 동기로 인정될 수도 있었다고 했다. 비록 당일날 형은 죽을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해도 이런 일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초래한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형이 죽기 전 그 사람들(함께 기거하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었는지를 밝혀달라 했다. 그들이 형이 죽기 바로 전 형과 나누었던 얘기들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형이 그렇게 죽어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형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죽음을 택했던 것에 대한 설명이 수사기록에는 분명히 빠져있었다. 외국이고 또 관련인 중 한 사람인 집주인 남자가 꽤 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는 점이 장애가 되겠지만, 그래도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영사에게 가족사까지 털어놓으며 한점 의혹이 없도록 수사에 신경 써달라고 재차 요청하고 돌아서는데, 긴장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태국의 3월은 매우 무더웠고 담배를 피울 때마다 현기증이 났다. 절로 돌아와서 형의 유골을 마저 수습했다. 아버지는 금방 기운을 차려 외국의 풍경과 정취에 금방 빠져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밉다가도 이렇게 순수하고 어린애 같은 분이 있을까 싶었다. 형은 그런 아버지와 꽤 많이 성격적으로 닮은 데가 있었다. 공항에 돌아와서 내키지 않았지만 남는 자들이 사주는 음식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 날 나나 내 처나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들에게서 넘겨받은 서류봉투 안에는 대사관에서 발급한 유골 이송에 관한 승인서와 형의 사망진단서가 들어있었다. 사망원인란에 '총기로 인한 뇌손상'이라는 문구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쉰 후 다시 봉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참으로 아내에게 서류를 단단히 보관하라 일러두었다. 더위로 인해 검은 양복 안이 눅눅해졌고, 머리에도 기름기가 묻어 나왔으며, 아내의 머리카락은 여기저기 많이 갈라져 있었다.


형의 유골을 담은 항아리를 안고 구의동 집으로 오니, 기다리던 식구들이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나와 유골함을 안고 통절하게 우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 앞에서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온 동네에 곡소리가 다 퍼지는 것 같아 유골함을 들고 서둘러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집으로 출발했다. 태국으로 떠나기 전에 형이 죽던 날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차편과 운전을 부탁해 놓은 터였다. 가면서 내가 그랬다. 너희들이 이렇게 나를 돕게 하려고 내가 삼겹살을 먹였나 보다,라고. 명절 때마다 형의 차를 타고 다니던 그 길들을 지나올 때마다 어머니가 오열을 하셨지만, 나는 애써 앞만 바라봤다. 할아버지 묘에 도착하니 사촌형과 사촌동생네가 이미 작은 구멍을 하나 파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골함을 풀어놓고 태국에서 가져온 보자기에 형의 유골들을 쏟아놓으니 어머니가 또다시 통렬하게 울음소리를 내셨다. 다른 분들이 위로하고 만류하는데도 형의 유골들을 얼굴에 대고 온몸을 비트셨다. 결국 내가 나서서 무덤덤하게 어머니의 손을 떼어놓은 후 보자기로 싼 유골함을 파놓은 구멍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다 놓았다. 삽으로 깨끗한 흙을 떠서 세 번을 뿌려주고 비로소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형을 지켜주지 않은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바람소리가 우리들이 내는 울음소리와 구분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들을 뒤로 한채 혼자 떨어져 나와서 유골함과 겉으로 쌌던 보자기를 태우면서 속으로 뇌까렸다. 병 X새끼...


처음으로 법당에서 절을 했다. 형의 영혼을 빌어주는 천도재였다. 어머니가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다. 애초에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빈소를 차릴 요량이었으나 장가도 못 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해서 포기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천도재라는 걸 어머니가 받아들이신 것일 게다. 사실 이토록 허망한 죽음이 또 있을까.. 우리 식구들 모두 법당에 가서 처음으로 절을 했다. 형의 영정 앞에서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데 참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내렸다. 맨 앞줄에 앉아서 남들 몰래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소리 없이 울면서 빌고 빌고 내내 빌었다. 우리 형, 다음 생에는 꼭 새가 되게 해달라고. 총에 맞고 농약을 마셔도 죽지 않는 불사조가 되어 좋은 짝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친척들을 모아두고 얘기를 했다. '최종 수사결과는 2주가 지나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자살한 게 맞는 것 같다, 혼자서 많이 외롭고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이해해 주셨으면 고맙겠다,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았으면 좋겠고, 먼 훗날 기회가 되면 얘기를 할 테니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대신 나중에 수사결과가 통보되어 오면 그것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다'라고. 이모님이 잘한 생각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봐야 가슴만 더 아프고 미어질 것 같다고, 그냥 죽었다고만 인정하자고. 어머니는 형이 그저 음독자살한 걸로만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이 차라리 낫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었다. 아버지에게도 처에게도 같이 갔던 동료분에게도 단단히 당부를 해두었었다. 삼월의 눈이 잠깐동안 참 많이 내렸다. 친구 놈 말처럼 형이 눈 내리는걸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두렵고 많이 무서웠다. 며칠간 내게 벌어진 일들이 모두 꿈만 같았다. 진실이 과연 밝혀질지 매우 걱정되고 그것을 또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해서도 먹먹했다. 내가 형의 죽음의 진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두려웠다. 지나가는 바람소리, 새소리, 기타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그 모든 소리들이 형의 울음소리같이 들려서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착하게만 살아온 사람에게 불행만을 던져주는 세상이 참 원망스럽고 무서웠다.


남은 우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형을 잃은 슬픔을 삭이며 살아가겠지.. 문득문득 형을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내야 하는 괴로움으로 절망하기도 하겠지.... 서로서로 애써 외면하며 형에 관한 기억들을 감추려고 애쓰기도 하겠지... 이렇게 사는 게 형을 혈육으로 두었던 우리들의 운명이라면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맞겠지..... 살아가야 할 시간이 남아있는 우리들은 언제쯤 형과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게 될지.... 형이 쓰러져있던 저 뒷문 안을 기억하는 것은 내게 평생 끔찍한 일이 될 것 같았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형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일이 남은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어이없고 치사하며 힘겹게 느껴질 테지..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형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게..



사진 속에서 형은 웃지만 보고 있는 나는 자꾸 눈물만 나네... 내가 결혼하고 예쁜 딸아이를 낳고 집도 마련해 가면서 행복했던 동안 형은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너무 미안해 형.. 이젠 괴로움 다 잊고, 다 내게 남기고 편히 가.....


2007.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