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②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내게 사는 일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때로는 공포스러운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형과 관련된 모든 기억들과 부모님들, 직장에서 내가 겪는 온갖 부침들이 알 수 없는 거대한 완력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다가 흠칫 몸을 떨게 되는 일도 잦아졌다. 아내와 마주 보며 웃는 일들이 사라졌고, 그저 지 아비인 것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품 안으로 뛰어드는 딸아이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매일 다짐을 했다. 나보다 더 아파할 어머니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리고 있다. 슬픔의 시간들이 길어질수록 반동처럼 튀어나오는 반발심 같은 것에 기대어서라도 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뎌내고 싶었다.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덫에 오랫동안 걸려있는 노루의 눈빛을 하고 죽은 듯이 쓰러져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혼란스럽다. 마스카라 한 여자가 흘리는 눈물처럼 내 눈물이 검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미친 것일까.... 아니면 위로받고 싶은 것일까.. 원망스러운 세상에 대해 주먹이라도 휘둘러보고 싶은 것일까.. 다 좋다. 미쳐도 좋고 동정받아도 좋고 손가락질받아도 좋으니 그냥 살자. 죽지 않고 살아있음은 적어도 내 부모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을 테니 반드시 나는 살아야 한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여전히 눈만 뜨면 괴롭고 고통스러운 상황들 속에 처해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위협적이기만 한 이 세상에 대해 복수하는 심정으로 덤벼보기로 작정했다. 비록 내가 던지는 것이 아주 작은 돌멩이일지라도 멀리 날아가면 몇 배로 더 위력적인 무기가 되어서 꼭 사달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꼭 사달을 내야겠다. 작정하고 덤벼서 온전한 나를 꼭 되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눈을 떠보니 10시가 좀 넘었다. 우리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딸아이를 봐주었던 처형과 아내의 친구 J는 이미 각자의 집으로 가버린 후였다. 고마웠다는 말 한마디도 못 건네고 돌려보낸 미안함도 못 느끼면서 흐느적거리며 처형이 차려놓았을 북엇국에 밥 몇 숟가락을 말아서 입에 넣었다. 아내에게 부탁하여 커피 한잔을 만들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참 막막했다.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잠시 짧은 탄식을 내뱉고 아내가 타준 커피를 몇 모금 마셨다. 영사님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유족을 대신해 수고하고 노력해 준 부분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렸고, 행여 형의 사건을 잊고 있을까 봐 부탁과 당부의 얘기도 잊지 않고 썼다. 다 써서 보내고 나니 뒤늦게 하지 못한 얘기들이 생각나 재차 이메일을 열었다. 형의 일과 관련하여 내게 설명되지 못했던 네 가지 사실들에 대해 수사가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썼다. 다 써서 보내고 나니 또다시 정신이 멍해지고 동공이 풀려버리는 듯했다. 어머니를 다시 위로하러 가려했으나 여동생이 만류해서 그만두었다.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저녁 5시가 되어서야 깨었다.
아내와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을 최소한으로 했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형에 관련된 전화가 와서 아내가 잠시 울먹였다. 그동안 나는 오랜만에 샤워를 했고, 샤워 후 변기에 앉아 담배 두 대를 연거푸 피웠다. 수염은 여전히 깎지 못하고 있었다. 말없이 저녁식사를 했다.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딸아이만이 하루 종일 재잘거렸다. 잠을 잤던 동안과 식사시간 외에 나는 내내 담배만 피워 물었다. 검게 그을린 폐 깊숙한 곳에서부터 가늘고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여전히 정신이 아득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있어 나와 내 가족을 대신해 많은 수고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아무 위로도 못해주는 게 미안하긴 했다. 내일은 기운을 내서 무엇이라도 해볼 참이다.
어서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