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스토리

그 해, 우리는 ③

by 나춘봉씨

어머니는 문밖 외출을 꺼리고 계신다지. 아버지는 오히려 내게 기운 차렸냐고 물으셨다. 겉으로는 일상의 기운을 되찾은 기색이 완연한데 그 속마음은 어찌 알까... 아내는 가끔씩 울다가 웃다가 했다. 그런 아내의 행동이 오래된 형광등 같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내보이는 슬픔은 외면상 나보다 깊어 보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눈을 뜨는 게 고통스럽기만 했다. 일상은 변함없이 흐르는데 속마음은 어지럽게 얽혀있는 실타래 같았다. 우주공간에 떠있는 우주인처럼 허우적거리고만 있었다. 혈육을 잃은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어제는 잡초처럼 자란 수염을 깎고 기운을 내서 아내를 위로했다. 나와 십 년간 정을 붙이고 살았으니 아내에게도 내 형은 한가족이었다. 태국에 같이 가서 참 많은 일들을 해주어 고맙고 안쓰럽고 미안해서 아내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팔당 강변에 자리 잡은 꽤 유명한 레스토랑. 흐르는 강물이 너무나 평화롭고 고요해서 헤매는 마음을 잠시나마 붙잡아둘 수 있는 그런 곳에 갔다.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나와 먹고 있으려니 또다시 목이 콱 메어왔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현실의 시간들이 비정스러워져서 돌멩이라도 집어서 힘껏 던져버리고 싶었다.


아내와 같이 형의 사망신고를 하는데 동사무소 여직원의 동정에 찬 눈길이 내 가슴 한편을 쓱 베고 지나갔다. 서류에 기재되어야 할 내용들이 참 유감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사망사유에 자살이라고 써서 제출했던 서류를 다시 달라고 하여 '자살추정'이라고 정정했다. 형의 사건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니 엄연히 말하자면 추정이라는 단어도 부적절했다. 여러 가지 금융거래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은행에 들렀을 때에는 서류의 사소한 문제를 지적하는 여직원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사사건건 눈에 밟히는 형의 그림자들을 떨쳐내기 위해 서류처리를 빨리 종결짓고 싶어졌다.


영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나의 메일에 대한 그 다운 답신이었다. 나는 메일 회신을 원했는데 영사는 직접 전화를 하는 게 나를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요청에 대해 태국 경찰청에 공문으로 직접 수사요청을 했다는 요지였다. 그는 여전히 수사의 한계가 있다는 걸 내게 주지 시키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의 이런 노력들이 추후 행여나 자신의 경력에 누가 될까 싶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자 애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영사에게 내가 제기했던 의문은 3가지였다. 이에 대해 제발 내가 납득할 만한 수사 결과가 나와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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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했던 의문사항]


1. 대화내용 또는 직전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부재

형은 당일날 일기를 썼으며 거기에는 죽음에 대한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았고 평소처럼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의도가 더 많이 느껴졌다. 또한 며칠 후에 있을 예비군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집에 전화를 걸어 날짜를 확인하고 신소장에게 비행기삯을 보태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 등 일련의 상황들은 결코 자살과 관련되어 생각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일이 발생하기 직전의 상황(1층에서의 대화내용이나 상황)이 형의 죽음에 관해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그때의 상황이나 대화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있지 않고 단순히 두 사람의 애매한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문스럽다. 실제로 나는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하룻밤을 묵었음에도 이 두 사람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직접 진술을 들을 수 없었으며 평소 절친했던 신소장 또한 영사에게 직접 들어보라는 얘기만 들었다고 한다.


2. 총의 출처

형은 예전에 집안에 총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집주인인 타이 사장이 개를 도둑맞은 후에 구해놓은 것으로 이에 대한 언급은 신소장도 형에게서 직접 들은 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주인은 현재 이 총의 소유에 대해 부정하고 있으며 경찰에서는 형이 캄보디아 국경지대에 가서 반군에게 직접 구입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총기를 비공식적으로 구입하는 것이 외국인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으며, 더구나 형에게 총은 불필요한 것으로 적발될 시에는 큰 처벌(추방 등)을 받을 수도 있는 건이다. 형이 이 모든 위험들을 감수하고 아무도 모르게 총을 구입했다는 것은 지나친 구색 맞추기라고밖에 판단이 안된다. 또한 만약 캄보디아에 가서 직접 샀다 해도 형은 태국어를 잘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 태국 내에서도 그랬지만 늘 세 사람이 함께 다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형이 캄보디아에 가서 다른 사람들 몰래 총을 구입하고 이것을 집안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오다가 사건 전날에야 타이 사장에게 보여주었다는 점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스토리이다.

게다가 총기구입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형은 매우 궁핍한 상황으로 지인들(특히 신소장)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몇 차례 씩 부탁을 했을 정도였고 실제로 신소장이 돈을 보내준 적도 있는 것으로 들었다. 형은 그동안

국내에서 가지고 있던 차(무쏘스포츠)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생활을 해왔으며 최근 그 돈도 거의 다 떨어진 상태라고 들었다. 결국 돈 한 푼 못 벌고 가진돈 까먹으며 1년 이상을 버텨온 사람이 어떻게 총기를 구입할 돈이 있겠는가. 만약 직접 구입한 것이 맞다면 그것은 오래전부터 자살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되는데 형이 현지에서 써온 일기장에는 늘 긍정적이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얘기들 뿐이고 또한 최근에 방문했던 국내 지인들을 통한 형의 얘기에서도 형이 자살할 사람이었다는 주장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가 없다.


3. 세 사람의 관계

형은 최근 미스정이 한국에 나와있을 때 형이 일일이 타이 사장의 일정을 미스정에게 전화로 얘기해 준 것에 대해 타이 사장이 그런 걸 기분 나빠했다고 일기장에 썼다. 신소장은 지난번 태국에 방문했을 때 이런 얘기를 형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대화 중에 이런 얘기들이 나왔고 이로 인해 서로 다툼이 있었다면 이 또한 규명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형이 소유했던 노트북을 돌려받지 못했고, 미스정과 타이사장은 이 노트북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이에 관해서도 확인과 반납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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