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스토리

그 해, 우리는 ⑩

by 나춘봉씨

1.

이번 추석엔 시골에 내려가기가 망설여졌다. 할아버지 산소 앞에 형을 묻고 온 그날의 진흙탕 같은 기분들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탓일 게야..

그날 이후로, 겉으론 참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았다. 비록 몸이 아팠고 가끔씩 우울해지긴 했으나 일을 전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지만, 여전히 난 삶에 대해서 예전의 열렬함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사 하나가 빠져버려 덜컥 내려앉아버린 느낌..

이 세상에는 내 형처럼 불운하게 살았던 사람이 많긴 했을 거다. 그렇지만 불행한 사람이 많았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거랑 진짜 내 가족이 그런 삶을 살다 가는 걸 지켜보는 것은 분명 달랐다. 절박했고 너무나 비통했고 참으로 황망했었다.


내 형은, 나와 어머니가 달랐던 내 형은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었다. 내가 열세 살 되던 해 겨울밤이었을게다. 할머니가 나를 따로 불러 형이랑 같이 사는 게 어떠냐 물으시던 그날의 기억이 아프게 명치를 찔러왔다.

중학생 되던 해에 형은 그렇게 우리 집에 왔었다. 공부를 잘했고 딱 부러졌던 나와는 달리 형은 공부를 못했고 머리도 나빴다. 하지만 순박하고 친절한 성격 탓에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과 곧잘 어울렸었다.


형의 부재로 인해 긍정적으로 변한 한 가지는 남은 형제들의 우애가 더욱 깊어졌다는 거였다. 살아있을 때 충분하게 우애를 표현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죽기 전까지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지인들에게 비행기삯을 구하던 형.. 처음엔 가족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숨긴 형의 행동들이 미웠지만 지금은 그저 내가 잘못했다고, 내가 다정한 동생이 되어주지 못해서, 나 혼자 살기 바빠서 형의 괴로움과 곤란함을 미리 알아주지 못한 게 너무 많이 미안하고 후회스러웠다.


여전히 내게 형의 자살은 의문이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 안타깝고 괴롭기만 했다. 이번에 시골에 내려가면 형을 그토록 좋아하셨던 할머니 얼굴은 또 어찌 봐야 하나... 여전히 형의 소식을 궁금해하실 텐데 이번엔 뭐라고 거짓말을 해야 할지....



2.

귀향길 정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보은에 다녀오려면 오고 가는 시간 합해서 11시간 정도 예상해야 할 것이었다. 어머니는 몸도 안 좋은 데 가지 말라고 하신다. 혼자 사시는 아흔이 넘으신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모기가 너무 많아서 아이들 오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난 딸아이를 데리고 내려갈 참. 가슴을 앓게 되더라도 꼭 가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 내려가면 어쩌면 나는 속으로 두 번 울게 될지도 몰랐다. 형의 밥그릇이 빠져있을 제사상 앞에서, 할아버지 산소 앞에 남들 모르게 묻혀있는 형의 유골 앞에서 뼈저린 후회와 안타까움의 눈물을 쏟아내야 할지도 몰랐다. 형의 어릴 적 흔적들이 서린 시골집 앞마당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를 피해 한참을 혼자 서성거리다 잠들게 될지도 몰랐다.


이게 다 운명이겠지...


매번 그래 왔지만 오늘도 형 생각만 하면 그저 시선을 제대로 두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게 된다.


이런 게 체념이겠지...



3.

겉으론 꼭 가야 한다고 했지만 속마음은 참 많이 망설였던 길.. 어찌하다 보니 시골에 잘 다녀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잘 못 가게 될 것 같아서 카메라폰으로 먼지 같은 기억 몇 장을 담았다.

제사를 지내고 할아버지 산소에 갔었다. 처음부터 할아버지 산소 앞에 누운 형의 자리에 눈길이 갔다. 여섯 달 새에 이름 모를 보라색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사촌동생이 형 생각이 난다고 얘기했고, 숙부님이 형의 자리에 포도 몇 알을 던져주었다. 잠시동안 마음이 저려와서 돌아서서 다른 이들의 등만 쳐다보았다.


반나절 시간을 내어 속리산에도 다녀왔다. 말티재를 넘어야 하는데 새로 생긴 터널로 가다 보니 낯설었다. 속세와 떨어진 속리산 아랫자락 동네의 평온함이 연기처럼 사라짐을 느껴서 허전했다. 관광지답게 크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터미널은 빛바래고 너덜 해진 간판만큼이나 작고 보잘것 없어졌다. 돌아오는 내내 서글픔을 느꼈다.



4.

아내가 꿈에서 형과 전화통화를 했단다. 이미 죽은 사람과 전화통화라니.. 형이 아내에게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야"라고 말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10월 중에 아내랑 시골에 한번 더 다녀와야겠다.




[2007년 9월]


이전 09화네버엔딩스토리